만난 사람 = 김종혁 정책사회 데스크
-어 총장은 대학 개혁의 상징인물처럼 돼 있다. 대학 개혁은 왜 필요한가. "과거엔 국제경쟁력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한국에서만 잘하면 됐다. 이젠 기업의 중역이 되려면 인도.중국.미국 공장에서 다른 나라 사람을 아우르고 관리하는 리더가 돼야 한다. 세계 환경이 요구하는 내용이 달라졌다. 대학 개혁은 국제 경쟁력을 갖춘 리더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1970년대 말 삼성전자는 금성사를 이길 방법을 고민했지만 이젠 소니나 인텔을 어떻게 꺾을지 고민한다. 국내 리더를 양성하는 데 만족해 온 서울대나 고려대도 이젠 예일대를 이기고 도쿄대를 이길 첫걸음을 시작했다."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0위 규모지만 전 세계 100대 안에 드는 대학이 없다. 대학이 책임의식을 느껴야 하는 게 아닌가. "책임의식은 느낀다. 그래도 단순 비교는 안 된다. 100대 대학은 미국에 집중돼 있다. 세계 3위 무역 규모의 독일도 100위 안에 1~2개 대학밖에 안 들어가 있다. 세계 인문 지성의 상징인 파리 4대학(소르본)도 100대 대학에 안 들어가 있다. 외국을 다녀보면 서울 주요 대학의 교수와 학생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물이 끓으려면 100도가 돼야 하는데 우리 대학은 지금 80도 정도다.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만큼만 대학을 지원하면 몇 년 내 한국에서 7~8개의 대학이 세계 100대 대학으로 도약할 것으로 확신한다." -한국 대학이 위기가 아니라는 것인가. "위기가 아니다. 정부의 대학 지원이 없다는 게 위기라면 위기다." -고려대는 글로벌 대학을 지향한다. 대학의 국제화가 이 시대에 얼마나 필요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오늘 파리 10대학 올리버 오뒤 총장과 점심을 같이했다. 파리 10대학이 고려대와 공동학위제를 하자고 제안했다. 자기네도 50%의 강의를 영어로 하고 고대도 영어로 가르치니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문화적 자존심이 엄청난 프랑스도 영어로 가르친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고대가 다른 대학보다 몇 년 앞서 그걸 감지했다는 게 다행이다." -하지만 어 총장이 떠나면 끝나는 게 아닌가. "이건 아직 비공개지만 말해주겠다. 고대가 입시생을 위한 홍보구호를 만들었는데 뭔지 아나. '고대의 개혁은 계속된다'다. 고대 개혁의 흐름은 총장 한 명이 바뀌었다고 중단되지 않는다. 영어강의? 파리 10대학에서 50%를 하는데 우리가 왜 안 하나. 고대에 오겠다는 학생들이 4~5배가 늘고 우리가 평가받는 이유가 뭔가. 반 이상이 국제화 때문이다." -재임 동안 외부 연구비를 포함해 4700억원이나 되는 대학발전기금을 모았는데 대학과 돈의 관계를 뭐라고 보나. "1890년 시카고대가 생길 때 하버드대의 엘리엇 총장을 불러다 일류대학의 길을 물어봤다. 엘리엇 총장의 대답은 '교육은 돈입니다'였다. 대학과 돈의 관계도 절대적이다. 중국의 푸단대와 칭화대, 싱가포르 국립대학 등이 세계적인 대학으로 도약한 비결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다." -기업과 동문으로부터 모금을 잘하는 비결이 뭔가. "기부하는 사람들에게 만족을 줘야 한다. 졸업생들에게는 모교가 발전하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고대는 애교심으로 유명하다. 기업들에는 고대가 학생들에게 수요자인 기업이 원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한다. 기업이 원하는 국제적 커뮤니케이션 능력, 창의력 교육을 하고 있는 걸 보여주고, 고대가 변하고 있다는 인식을 줘야 한다." -일부에선 어 총장이 지나친 시장주의와 국제주의, 신자유주의적 대학관을 가지고 기업을 경영하듯 학교를 운영했다고 비판한다. "시장주의.신자유주의라는 비판은 수용하겠다. 너무 빨리 움직인 것은 사실이다. 내가 처음 총장이 될 때 고대의 영어강의는 4% 정도였다. 이걸 6%까지로만 높여도 좋은데 34%까지 늘렸다. 하지만 기업을 경영하듯 학교를 운영한다는 게 도대체 왜 문제인가. 모든 조직은, 심지어 NGO 단체들까지 국제경쟁력과 합리성을 추구한다. 기업뿐 아니라 대학.국가도 마찬가지다. 중앙일보도 그럴 것이다. 대학에는 본질적으로 경쟁이 없어야 한다는 말인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하버드.스탠퍼드대 등 세계 일류대학들을 대략 다 돌아봤다. 어딜 가봐도 한국처럼 느슨한 대학이 없다. 우리 교수들 본인도 그런 대학에서 공부했고, 그 대학들이 돌아가는 시스템을 다 안다. 한데 귀국한 후에 안일한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까 그렇게(느슨하게) 된 것 아닌가." -교수들이 개혁 피로감을 느꼈다는 데 대해 동의하나. "그렇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하려다 보니 교수들이 힘들었던 것 같다. 학교가 정작 달라진 게 뭐냐는 지적도 일부에서 하는데…. 많이 달라졌다. 우선 그동안 학장은 교수를 아우르기만 하면 됐는데 이제 외부에 나가 기금도 모아야 한다. 의과대학 교수는 논문이 없어도 됐는데 이젠 그러면 채용이 안 된다. 하지만 스피드가 너무 빨랐던 게 사실이다." -하버드대는 총장을 10~20년씩 하는데 우린 연임도 어렵다. 교수들이 총장을 돌아가면서 나눠먹기로 하려는 것 아닌가. "솔직히 총장보다 더 심각한 건 학장이다. 임기가 2년이다. 과거에 단과대 교수가 한 20명쯤 될 때는 나이 들면 다 학장 한 번씩 했다. 학장 하면 연금도 많아지니까 한 번씩 시켜줬다. 단과대 교수가 200명씩 되면 그렇게 못한다. 나도 총장직 마치고 박수받을 때 떠나려고 했다. 하지만 못 끝낸 일들이 남아 있었고 (연임이 사실상 불가능한) 총장 선출 구도를 큰 대학에서 한번 깨보고 싶었다." -어 총장을 떨어뜨린 부적격 투표제는 좀 이상하다. 유력한 후보에 대한 다른 후보들의 견제로 재선은 무조건 불가능한 시스템 같다. "이 제도는 바뀔 것이다. 나 때문이 아니라 바뀔 예정이었다. 나는 일차투표에서 47%를 받았다. (씁쓸한 표정으로) 그래도 50%의 지지는 받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하지만 내가 덕망이 높았으면 이런 문제도 안 생기지 않았겠나." -교육부와 대학의 관계를 따져보자. 교육부가 입시 때마다 이런저런 문제를 내면 안 된다는 식의 간섭을 하는 게 옳은가. "당연히 옳지 않다. 대학 총장 중에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런데 대학들은 왜 교육부에 꼼짝 못하고 따라다니나. "(저항하면 받는) 벌칙이 너무 크다. 교육부의 권한이 워낙 세지 않나." -교육부의 보복이 두렵다는 건가. "내 개인 차원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조직의 책임자로선 그렇다. 그래서 총장들이 임기가 끝나고 나서야 말하지 않는가." -교육부가 그러는 이유는 뭔가. "외국 대학 총장들과 얘기하면 '한국에선 사립대학이 왜 그런 제재를 받느냐'고 아주 의아하게 생각한다. 과거에는 사학비리 때문에 관치행정의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이젠 사학도 투명해졌다. (관치행정은) 벌써 없어졌어야 했다." -교육부가 폐지돼야 한국 교육이 제대로 된다는 말도 있는데, 동의하나. "내가 참 이렇게까지 얘기하면 자꾸 청와대 비판하는 것 같아서 그런데…교육부는 이제 교육행정에선 손 떼고 인적자원 개발 쪽으로 가야 한다. 교육 시스템은 신경 안 써도 된다. 대학의 질이 나쁘면 학생이 안 오고, 그럼 대학이 스스로 망하는 게 아닌가. 대학들은 5년 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변했다. 그러나 교육부의 변화는 너무 늦다. 앞으로 학생들이 한국 대신 중국이나 홍콩의 대학으로 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교육부의 3불정책(기여입학.고교등급제.본고사 금지)에 대한 입장이 뭔가. "삼성이나 LG 입사시험을 보는데 정부가 간섭할 수 있겠는가. 대학도 알아서 학생을 뽑아야 한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립대학이라면 몰라도 사립대학에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족쇄를 채우는 것일 뿐이다. 또 고등학교들 간에 (실력의) 차이가 있다는 걸 어떻게 부인하겠는가. 하지만 기여입학제는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무슨 얘기를 해주고 싶은가. "나는 개혁의 촉매제일 뿐이었다. 내 개혁의 핵심은 항상 '모든 의사결정은 학생들에게서 나온다'는 거였다. 이제는 학생들이 바뀔 차례다. 단순히 명문대를 졸업했다고 미래를 약속하는 시대는 지났다. 글로벌 리더가 되도록 노력해 달라." 어윤대 총장은 1945년 경남 진해 출생. 경기고·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미시간주 앤아버대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79년부터 고대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해 왔다. 92~95년 한국은행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위원, 2001~2003년 공적자금관리위원 등을 거쳐 현재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다. 부인 정복주(58·이와여대 음대 학장)씨와 2남. 정리=이원진 기자<jealivre@joongang.co.kr> 사진=김형수 기자 <kimhs@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