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서 떡볶이 먹는 날 곧 옵니다”

 
‘떡볶이 세계화’ 이끄는 떡볶이연구소 이상효 소장


떡볶이를 수출한다는 것은
한국 식품을 세계에 알린다는 것 외에도
우리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수출하는 의미도 담겨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막 웃어요. 재밌다는 분들도 계시고…. 한 친구는 전화 와서 껄껄 웃더니 진짜냐며 확인까지 하지 뭡니까?”

국내 최초, 아니 세계 최초로 떡볶이연구소가 만들어졌다. 이 연구소의 수장을 맡게 된 이상효(48) 소장. 그는 요즘 하루하루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떡볶이를 연구한다는 소식이 주변에 알려지자 언론에서는 연일 취재요청이 쇄도하고 있고, 주변에서는 “떡볶이를 연구한다는 게 사실이냐?”며 장난반 진담반으로 이것저것 물어보는 바람에 일일이 해명(?)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떡볶이연구소. 지난 11일 공식 개소한 이 연구소는 쌀 소비 촉진과 떡볶이의 세계화를 위해 (사)한국쌀가공식품협회에서 8억원을 들여 설립한 떡볶이 전문 연구개발(R&D)센터다. 이름만 놓고 보면 누구든 호기심으로 웃음이 먼저 나올 수밖에 없을 터. 하지만 직접 떡볶이연구소를 찾아본 이들이라면 ‘장난스런’ 연구소가 절대 아니라는데 공감표를 던질 것이다.

우선 연구소 입구에 들어서기 전 100m 전방에서부터 ‘떡볶이연구소’라는 큼지막한 간판과 홍보문구가 여기저기 걸려져 있어 연구원들의 ‘거대한 출발과 각오’가 느껴진다. 여기에 중견기업 연구소 못지않게 건물 내외부의 규모와 레이아웃도 수준급이다.

부속건물(공장)이 2동이나 딸려 있고 본 건물 역시 2개 층에 걸쳐 연구 전문공간이, 연구소 밖에는 고급 리조트에서나 봄 직한 야외 카페도 마련돼 있다. 현재 6명의 연구원들이 연구진행을 위한 제반작업에 여념이 없는데, 5년 내 16명(박사급 5명, 보조 7명, 운영담당 4명)까지 연구인력을 늘린다는 게 이 소장의 목표치다.


20년 쌀 가공 연구 ‘외길’

“수년간의 땀에 의해 설립된 연구소입니다. ‘길거리 음식’이라는 오명을 받으며 비빔밥이나 불고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음식이 바로 떡볶이죠. 이 연구소의 설립목적은 이탈리아의 스파게티나 일본의 스시처럼 떡볶이를 세계적인 한국의 음식상품으로 만드는 겁니다.”

떡볶이연구소의 A에서 Z까지를 후원하는 한국쌀가공식품협회는 2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국내 쌀 가공산업 발전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해온 단체다. 회원사(쌀 가공기업)만 200여개사에 이른다. 수입 쌀 의무도입 제도에 따라 해마다 일정 부분 소진해야 하는 수입 쌀을 가공해 ‘쌀과자’나 ‘쌀빵’ 등으로 상품화하는 일이 이 협회의 주요 업무. 따라서 이번 떡볶이연구소 탄생 역시 쌀 가공식품에 수많은 연구를 해오던 협회내 인사들이 “떡볶이를 세계적인 상품으로 만들어보자”는 데 뜻을 뭉쳐 만든 결과물이다.

특히 이상효 소장은 수십 년간 쌀 연구에만 몰두해 온 자타공인 ‘쌀 전문가’로, 중앙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한 후 정부출연기관인 한국식품연구원에서만 20년을 몸담았다. 연구원에 입사하자마자 당시 수입쌀이 시중에 많이 남아돌아 이를 소진해야 하는 상황에서 ‘쌀라면’, ‘쌀국수’, ‘쌀빵’ 등 40여가지 쌀 가공식품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쌀 가공식품에서 밥이나 죽, 떡 등으로 쌀 가공사업의 포커스를 바꾸다 보니 ‘한식의 세계화’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정부 역시 2006년 11월께 한식의 세계화를 선포하기도 했죠. 이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이거구나. 떡볶이 정도면 한식의 세계화 상품에 첨병 역할을 할 수 있겠다’라고 말이죠.”

작년 11월11일 농림부와 농업인의 날 추진위원회가 주관한 ‘가래떡 데이’ 행사에 협회가 참가하면서 그는 떡볶이연구소 설립에 대한 각오를 되새겼다. 당시 청계천 광장에서부터 신당동 떡볶이 거리까지 행진하는 이벤트를 벌이면서 적지 않은 시민들이 ‘떡볶이’라는 상품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음을 포착해 떡볶이가 한식 세계화의 ‘효자상품’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을 얻었던 것.

따라서 ‘가래떡 데이’ 이후 이 소장은 협회 임원들과 함께 ‘떡볶이를 세계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농림부의 농산경영팀 측에 여러 차례 전달했다. 그리고 곧 결실을 맺었다. 최근 농림부가 향후 5년간 140억원을 국내 떡볶이 산업 활성화를 위해 투자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것이다. 물론 이 중 일정 금액을 지원받게 되지만 그래도 떡볶이연구소의 연구 프로젝트 비중에 따라 얼마든지 정부의 보조를 받을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이 소장에겐 ‘가뭄의 단비’가 아닐 수 없다.


세계 5만개 ‘떡볶이 프랜차이즈’ 목표

그러나 그는 ‘떡볶이 세계화’를 결코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차근차근 기본부터 밟아나갈 예정입니다. 우선 연구과제가 너무 많습니다. 떡볶이에 들어갈 떡의 품질을 향상시켜야 하고 다양한 소스도 개발해야 합니다.

또 각 나라가 선호하는 면에 대한 연구에서부터 ‘매운 맛’의 표준화·매뉴얼화 작업, 상품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마케팅 연구 등 머리 아픈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 부분들을 철저히 연구하지 않고서는 섣불리 세계화, 세계화를 외치진 않을 생각이에요.”

이 소장이 추구하는 떡볶이의 해외 성공안착을 위한 현실적 방법은 바로 프랜차이즈화다.
지금은 길거리의 노점상에서 주로 판매되는 탓에 ‘비위생적’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위생 부분과 냄새, 그리고 조리 과정 문제를 해결하고 테이크아웃 시스템 도입, 용기·포장 시스템 개선 등을 통해 거대 프랜차이즈점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복안이다. 나아가 호텔의 뷔페에서도 떡볶이를 볼 수 있게 한다는 게 이 소장의 장차 포부다.

이를 위해 그는 현재 확보된 떡 전문가와 소스 전문가, 요리 전문가 외에 향후 마케팅 전문가와 프랜차이즈 전문가도 연구원으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프랜차이즈화를 위한 선결 과제인 ‘떡볶이 표준화’ 작업에도 역점을 두기로 했다.

“나라마다 매운 맛의 정도가 다릅니다. 맛의 현지화를 위해 매운 맛의 표준을 우선 정한 후 면과 소스의 다양화를 꾀할 생각입니다. 면의 경우 국수처럼 긴 떡볶이나 컬러 떡볶이, 딱딱하거나 쫀득쫀득한 떡볶이 등 최대한 품종을 다양화하고 소스의 경우도 다른 나라의 프랜차이즈에서는 따라오지 못할 한국만의 소스를 만들어 ‘종주국’의 자존심을 지켜나갈 겁니다.”

이 소장은 세계화 추진의 ‘하드웨어’ 전략으로 스토리텔링과 네이밍 마케팅 작업에도 땀을 쏟고 있다.
우선 ‘떡볶이’에 대한 외국인들의 발음이 어렵고 영문 스펠링도 천차만별이어서 요리 전문가, 기업 전문가, 언어 전문가 등에게 조사를 의뢰해 ‘TOPOKKI(토포키)’로 명칭을 통일시켰다. 웹스터 사전에도 이 용어를 올리겠다는 각오다.

이와 함께 스토리텔링의 일환으로 떡볶이의 캐릭터화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떡볶이 종류나 재료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인 것인데 예를 들어 ‘길쭉한 떡볶이’는 토키(Tokki)로, 어묵은 토코(Tokko), ‘한입 떡볶이’는 포키(Pokki), 파는 포코(Pokko)와 같은 식으로 캐릭터에 명칭을 새겼다. 캐릭터를 제작한 사람은 88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를 디자인한 디자이너라는 게 이 소장의 전언.


‘TOPOKKI’로 통일…웹스터에 올릴 계획

“떡볶이를 수출한다는 것은 한국 식품을 세계에 알린다는 것 외에도 우리나라의 문화와 역사를 수출하는 의미도 담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떡볶이에 이야기를 입혀 애니메이션화하거나 캐릭터 상품을 만들어 세계인들이 재미와 함께 떡볶이를 먹을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쌀가공식품협회에 따르면 현재 국내 떡볶이 시장 규모는 대략 9000억원대로 적지 않은 규모라고 한다. 이 소장은 떡볶이 프랜차이즈 모델을 미국이나 일본, 러시아 등 해외 주요 국가에 안테나 숍 형태로 먼저 진출시킨 후 시행착오를 거쳐 전 세계 5만개의 체인점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우선 90만달러의 수출이 당면목표라고.

관심도 크고 흥미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경기도 용인의 떡볶이연구소. 과연 ‘떡볶이 한류’의 주역이 될 수 있을지 많은 ‘떡볶이 마니아들’은 이 연구소를 주시하고 있다.

김진욱 기자 action@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