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특별한 인터뷰]‘MB 경제 브레인’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 | ||||||||
2008 04/22 뉴스메이커 771호 | ||||||||
“대통령 소신과 철학 실현하는 역할해야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핵심은 기업들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어느 부처보다 관심이 집중된 곳이 바로 공정거래위원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말 그대로 기업 거래의 질서를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곳으로 ‘경제 검찰’로 불린다. “재벌회장도 벌벌 떤다”는 기관이다. 이 자리에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경제 브레인인 백용호(52) 공정거래위원장이 앉았다. 백 위원장은 현 정권의 장관급 인사 중 최연소 인사로 눈길을 끌었다. 또한 이 대통령과 쌓아온 인연은 10년 세월이 넘는 측근 중 측근이다. 지난 10여 년간 이 대통령 곁에서 정치적인 파란을 함께 겪어왔고, 경제정책에 관한 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눈높이도 맞췄다. 이런 그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뢰는 각별하다. 다른 참모들과는 달리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인데다가 외유내강의 강인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과 접촉을 달가워하지 않는 스타일이어서 외부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인 그를 만나기 위해 한 달이라는 시간을 기다렸다. “업무 파악도 안 된 상태에서 인터뷰부터 하지 않겠다”는 입장 때문이었다. 기자와 만난 그는 소박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지만 꼼꼼함과 명석함이 내재된 강단(剛斷)을 읽을 수 있었다. 소문대로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인 것이 분명했다.
4월 초순의 따뜻한 봄날. 거리에는 개나리, 목련, 벚꽃 등 형형색색의 꽃들이 수줍은 듯 방긋거린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가 들어선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옛 기획예산처 청사의 뒷동산에도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이 요즘 가끔 오르는 작은 동산이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바쁜 업무 속에서 유일하게 잠시나마 숨을 돌리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공간이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앉자마자 공정거래위원회와 관련된 질문부터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실용 정부의 경제정책을 집행해가는 데 ‘무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공정거래위원회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궁금해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다(관련 일문일답은 박스 안에 있음). 공정위의 역할에 대한 그의 소신은 분명해 보였다. 이런 신념은 그가 오랜 세월 이 대통령과 경제관을 조율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경제 살리기라는 큰 숙제를 안고 정권을 잡은 실용 정부 내에서 그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이 대통령이 그에 대해 갖고 있는 신뢰는 각별하다. 지방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기업가 출신인 이 대통령이 자신처럼 어려운 환경을 뛰어넘고 엘리트로 성장한 그의 투지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백 위원장은 1956년 가옥이 몇 채 안 되는 충남 보령의 한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장사를 해 근근이 먹고 살았지만 그가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오랫동안 심장병을 앓던 어머니가 세상을 떴다. 그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몸져누운 어머니 대신 그와 동생을 돌본 사람은 할머니였다. 지금도 그는 할머니와 손을 잡고 아랫마을 장에 갔다가 하루 서너 대밖에 오가지 않는 버스를 놓쳐, 어둑어둑한 산길을 두려움에 떨며 오르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그는 결혼한 고모가 있는 군산으로 갔다. 여기서 남성고등학교를 나왔다. 10대에 자취를 해야 하는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반드시 성공하겠다는 각오로 공부에 매진해 장학금을 받으며 졸업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아버지는 그가 안정적인 공무원 자리인 동네 면서기나 경찰이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넓은 세상에 나가겠다는 결심을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던 백 위원장은 대학 진학을 택했다. 마침 서울에 있는 중앙대학에서 전국의 우수한 학생을 선점하기 위해 내놓은 특차 전형에 합격해 학비는 물론 생활비 걱정 없이 대학생활을 할 수 있었다. 주식 가격 결정에 관한 이론을 주제로 한 그의 박사논문은 뉴욕주립대 최우수 논문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경제학 중에서도 금융 쪽에 치중해 공부한 것은 은행에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이쪽 분야에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은행을 중심으로 한 돈의 흐름과 증권을 중심으로 한 돈의 흐름이 어떻게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호기심이 컸기 때문에 자연히 그쪽으로 공부를 해나간 것이다. 학문으로는 더할 수 없는 결과를 얻었지만 그의 청춘기는 오로지 공부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아쉬운 유학 시절이다. 그는 “좀 더 시간적인 여유를 갖고 관심이 가는 과목을 다양하게 수강하고 여행도 다녔으면 좋았겠다 싶다”고 했다. 1985년 12월 귀국한 그는 이듬해 3월 이화여대 교수가 됐다. 당시 백 위원장의 나이가 만 서른이었으니, 이화여대의 최연소 남자교수였다. 젊은 남자가 수많은 여대생 앞에 서 있는 게 만만한 일은 아니었을 터. 짓궂은 질문을 던져봤다. 어여쁜 여학생들 앞에서 제대로 강의가 되더냐고. 그는 “교단 높이가 10~15㎝ 정도에 불과하지만, 일단 그 위에 서 있으니까 선생이 되더라”고 웃음으로 답했다. 당시 소장파 학자로 개혁적 성향이 강했던 그는 1989년 창립한 경실련에 참여했다. 우리나라가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역대 최고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호황을 누렸지만 부동산 투기의 기승으로 아파트값과 땅값이 폭등하고, 차명계좌 개설 등을 통한 음성적 돈의 흐름이 횡행하자 뜻있는 경제학과 교수들이 뭉친 것이다. 백 위원장은 경실련 상임집행위원 및 국제위원장을 맡으며 언론을 통해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다수의 성실한 사람에게 박탈감을 느끼게 하는 불로소득을 차단하고 금융 거래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가 절실했어요.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다른 분들과 함께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요. 김영삼 정부가 1993년 금융실명제를 전격 도입한 것은 우리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사건이었고, 경실련이 거둔 행복한 수확이기도 했어요.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국민이 정부정책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고 정보도 많이 알아야 해요. 경실련을 비롯한 초창기 시민단체가 이 역할을 함으로써 사회를 수평적으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확신합니다.” IMF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그는 대통령소속 자문기관인 21세기위원회(현 정책기획위원회) 정책개발위원장이었다. 그는 그러나 “당시 한국의 정치 상황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갔고, 관료 사회 속에서 자문 역인 내가 의견을 강력히 전달할 수 있는 채널이 제대로 구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가 자초한 IMF 외환위기의 수습을 떠안은 것은 김대중 정부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는 이후 우리나라의 중추 기업을 과도하게 팔아버렸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금융 전문가인 백 위원장의 견해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구멍난 배와 짐, 그리고 인간의 심리’로 이를 설명했다. “항해를 하다가 배에 구멍이 나 물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짐을 버려야 해요. 그런데 막상 짐을 버리고 무사히 육지에 다다르면 버린 짐이 아깝게 생각되는 게 사람 마음이지요. 전 김대중 정부의 선택이 당시로선 최선이었고 불가피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게 김대중 정부에 정치적 부담이 되는 부메랑이 된 것도 사실이에요. 많은 기업이 매각되는 과정과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길거리에 나앉았잖아요. 그런데 노동자들이야말로 김대중 정부의 기반이었으니,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일이었겠어요. 어쩌면 김대중 정부의 숙명이라고 봅니다.” 그는 정치권의 제의로 1996년 총선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서대문구에 출마했다가 국민회의 장재식 의원에게 패했다. 당시 신한국당은 젊은 피를 수혈하겠다며 홍준표, 맹형규, 이신범 등 새얼굴들을 대거 내세웠다. 정치에 뜻이 없었던 그는 마지막까지 출마를 고사하다가 막판에 선거전에 뛰어들었다. “21세기위원회 활동을 하고 라디오 진행은 물론 TV 출연이 잦으니까 당에서는 제가 꽤 정치적 성향이 있는 인물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결국 이대에 사표까지 쓰고 출마했는데 낙선하고 나니까 허망했죠. 두 달간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오기가 생겼어요. 이왕 나섰으니 제대로 뛰어들어보자 결심했지요. 지구당 위원장직을 그대로 갖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했어요.” 백 위원장이 이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도 이 즈음이다. 이 대통령은 종로에서 출마해 당선했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결국 국회의원직을 내놓고 낭인이 되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가장 어려웠던 이때 이 대통령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백 위원장이다. “전부터 이 대통령에게 호감이 있었기 때문에 도움이 되고 싶어 다가갔다”는 게 백 위원장의 설명. 당시는 모든 사람이 이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은 끝이라고 말하던 때다.
그는 동아시아연구원장으로 일하면서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출마 당시 내세운 공약을 주도적으로 생산해냈다. 2002년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취임하자 그는 핵심 브레인으로서 서울시정개발연구원장이 됐다. 그는 재임 당시 박사급 연구원을 대거 영입함으로써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을 명실상부한 서울시의 싱크탱크로 만들었다. 청계천 개발, 대중교통 개편, 시민의광장 조성, 뉴타운 개발 등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일군 굵직굵직한 업적이 시정개발연구원을 통해 세상에 공개됐다. “시정개발연구원장으로 일한 3년간 행복했어요. 다만 워낙 부지런한 시장 밑에서 일을 하다 보니 육체적으로는 좀 힘들더라고요(웃음). 하루 5~6시간 마라톤 회의는 다반사였어요. 어떤 사람은 청계천 복원사업이 날림이었다고 비난하지만, 이 대통령은 벽돌 한 장 쌓는 일에도 한 치의 오차가 없도록 치밀하고 꼼꼼하게 챙기셨습니다.” 이 대통령이 시장 임기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대선전에 뛰어든 2006년 6월부터는 바른정책연구원(BPI) 원장으로 학계의 MB맨들을 규합해 대선공약을 개발하며 뒷받침했다. 바른정책연구원은 유우익 청와대 대통령실장이 이끈 국제정책연구원(GSI)과 함께 이 대통령의 양대 정책자문 그룹으로 꼽힌다. 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도 경제1분과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런 경력 때문에 그가 현 정권의 경제팀에 주요한 일을 맡을 것이라는 예측은 인수위 시절부터 나왔다. 요즘 백 위원장의 하루 일과는 매일 아침 5시30분에 시작된다. 30분간 독서를 하고, 15분간 스스로 개발했다는 요가동작과 명상을 한다. 그는 “명상할 때는 눈을 감고 전날을 반성하고 오늘을 어떻게 살지 계획한다”고 말했다. 문득 정치인의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그의 처세에 대한 원칙은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그는 “살면서 가장 경계하는 것이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는 것이고, 내가 타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면 그 역시 내게 같은 감정을 갖는 게 인지상정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선(善)으로, 내 탓으로 보는 습관을 가지려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공직을 맡기 전에는 가끔 혼자서 하는 산행(山行)을 즐겼다. 혼자 산에 오르며 바람소리, 새소리, 흙 냄새, 나무 냄새와 같은 자연의 감촉을 온전히 느끼는 것이 행복하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럴 여유가 없어 아쉽단다. 그 대신 영화평론가인 아내 조혜정씨와 영화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움을 찾고 있다. 아내는 여운이 긴 작품성 있는 영화를, 그는 재미있게 보고 곧 잊을 수 있는 오락영화를 좋아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건 두 사람이 똑같다. 공정위 업무를 무사히 마치고 다시 여유가 있는 시절이 찾아오면 아내와 영화관 데이트로 휴일도 없이 집을 비우는 남편의 미안함을 달래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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