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자치통감 완역 권중달 교수 | ||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7-08-20 07:15 | 최종수정 2007-08-20 09:51 | ||
"2009년 32권으로 마무리..원고지 10만장 분량"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장마보다 더 지루한 '우기'가 끝나고 30도가 넘는 폭염이 기승을 부린 17일 오후 3시, 서울 관악구 봉천동 서울대입구역 근처 세종오피스텔 702호실 초인종을 눌렀더니 권중달(權重達.66) 중앙대 명예교수가 문을 열었다. 머리는 온통 백발이지만 환히 웃는 얼굴은 나이보단 젊게 보이게 한다. 반바지 차림으로 기자를 맞은 그는 작은 냉장고를 열어 주스 한 잔을 따라주면서 말했다. "이게 오디라는 걸로 만든 건데 김 기자는 오디를 압니까?" "압니다. 어릴 때 저희 집에서 누에를 쳤습니다. 오딘 질리도록 먹었습니다." "아! 그래요? 요즘은 오디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조조 군대가 강남으로 출정했다가 (식량이 다 떨어져) 이 오디로 식량을 삼아 연명했습니다. 자치통감(資治通鑒)에 나오지요, 조조 군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자치통감으로 옮겨갔다. 그가 평생을 투자해 이제 탐스런 결실을 보기 시작한 자치통감을 주제로 만나기로 했으니, 기자에게 일부러 오디 주스를 꺼냈는지도 모르겠다. 퇴임 이후를 대비해 퇴임 1년 전에 매입했다는 10평 남짓한 이 오피스텔 연구실 서가 한 켠에는 전통시대 중국인 초상화 1점과 중국 황제가 관리 임명장에 서명한 문서인 '제가'(制可) 문서가 나란히 걸려 있다. "저 초상화 주인공이 (북송) 황제 신종(神宗)이며 그 옆 문서는 신종 황제가 사마광을 재상으로 임명하는 것을 재가했다는 내용입니다." 신종 재위시대에 사마광은 자치통감을 완성해 황제에게 올렸다. 신종 초상화 맞은편 서가에는 일본에서 자치통감 일본어 완역사업을 시작한다는 사실을 공고한 인터넷 공지사항 프린트물이 걸려있다. "작년에 웹서핑하다가 발견한 건데, 학력 불문하고 누구나 자치통감 번역에 참여할 수 있다고 공고하고 있습니다. 뭐, 이런 얘긴 좀 그렇지만, 일본에서도 이뤄내지 못한 일(자치통감 완역)을 제가 먼저 착수하고 상당한 성과를 냈다는 게 솔직히 뿌듯합니다." 자치통감이란 북송시대를 대표하는 정치가이자 사상가이며 역사가인 사마광(司馬光.1019-1086)이 전국(戰國) 시대에 속하는 주(周) 위열왕(威烈王) 23년(기원전 403) 이후 당나라가 지리멸렬하고 송나라가 서기 직전인 오대(五代)까지 1천362년간의 역사를 편년체(編年體)로 기록한 전체 294권에 이르는 장대한 중국 통사. 중국인도 그 완독에는 3년이란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권 교수는 말했다. 석ㆍ박사 학위 논문 주제였고, 40년 이상 연구생활에서 한 순간도 놓은 적이 없는 자치통감을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번역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회갑을 목전에 둔 1999년 무렵. 나름의 계산도 있었다. 2006년 정년퇴임 때까지 박차를 가한다면 완역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2007년 현재까지 무려 20년 가량이나 제자들과 함께 운영하는 자치통감 윤독회가 든든한 밑바탕이 된다고 판단했다. "중간에 중단된 적도 있지만, 지금도 매주 수요일 오후 6-8시에는 윤독회를 합니다. 요즘은 평균 6-7명이 이 오피스텔에서 모입니다. 전공, 학력 등은 묻지 않습니다. 자치통감에 관심있는 분이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어떻든 권 교수는 자치통감 완역이란 큰 포부 아래 그것을 실행에 옮기기로 하고 2000년 3월에 마침내 그 첫 성과를 냈다. 하지만 기대보다 속도는 느렸다. 나아가 열정 하나로만 가능하리라 생각했으나 의외로 많은 복병이 나타났다. 이 문제는 자치통감 번역이 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사업으로 선정되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다. 이를 발판으로 2002년 8월에는 전한(前漢) 시대 편 3권을 추가로 발간했다. 그러나 재점화한 엔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해 두해가 흘러 권 교수는 정년퇴임을 맞게 됐다. 물론 이 기간에 사업은 중단되지 않았다. 결과물로 출판이 되지 않았을 뿐이지, 퇴직할 무렵에는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자치통감 초벌번역이 끝났다. 애초에 생각한 퇴임 이전 완역은 성사되지 않았으나, 준비가 착실했기에 퇴임 이후 작업은 가속도를 냈다. 그리하여 올 1월에는 후한시대와 삼국시대 편을 전 4권으로 완간한 데 이어 7월에는 진대(晉代) 편 4권을 추가했다. "완역본은 2009년에 전 31권으로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마지막 32권은 해설본으로 기획하고 있습니다. 번역 원고가 완성됐고, 또, 그것을 두 번씩이나 교정을 보았으니, 이젠 출간 일정을 확실하게 할 수 있습니다. 2009년이면 반드시 완역본이 완성됩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또 하나의 큰 난관을 만났다. 출판이 문제였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해서 출판사들이 난색을 표하는 바람에, 권 교수는 아예 '삼화'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등록했다. "출판사는 제 집사람 이름으로 했습니다. 그렇다고 저나 집사람이나 출판에 대해 아는 게 있나요? 중앙대 사학과 출신으로 출판 경험이 있는 조성일씨가 막대한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원고 분량에 대해 조씨는 "권당 본문만 따지면 200자 원고지 1천800장 가량인데 권당 2천 개에 이르는 각주까지 합친다면 3천장 안팎이 된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책이 31권이니 번역본 총분량은 10만장을 헤아리는 셈이다. 역사편찬 전통에서 편년체를 연 자치통감은 역사에 명멸한 인물들의 이상과 성공, 음모와 야망, 좌절과 패배를 한데 몰아 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서도 필독서가 됐다. 하지만 분량이 방대한 까닭에 중국이나 대만 역사연구자 중에서도 이를 완독한 사람은 드문 실정이라고 권 교수는 말했다. "내가 70년대 대만에 유학할 때 선생님 중 한 분이 한국에도 유명한 굴만리(屈萬里) 교수셨지요. 그 분이 사석에서 그러시더군요. '중국인으로 중국사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사람 중에 과연 몇 사람이 자치통감을 읽어봤는지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중국인 중국사 연구자가 이 모양인데 우리 역사학계는 어떻겠습니까?" 자치통감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권 교수는 중국사를 새롭게 보게 됐다고 말한다. "중국사 연구자들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춘추전국시대나 5호16국시대를 '분열기'로 간주합니다. 하지만 과연 분열기인가? 저는 외려 이런 시대가 중국 내의 국제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중국 땅덩어리가 오죽 큽니까? 기후와 지리, 풍토가 다른 저 넓은 곳을 하나의 국가, 하나의 법률을 강요하다니요? 이런 말 하면 중국사람들 굉장히 싫어할 테지만, 중국은 분열되어야 해요." 중국측이 추진하는 이른바 동북공정과 그에 격렬히 반발하는 한국사회에 대해서도 한마디를 붙였다.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그에 반발해 한국사를 지키자고 우리가 나선다는 것도 결국은 자신감 부재에서 나온 현상입니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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