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북쪽으로 2시간 거리인 모롱시 야나네스 학교에서 지난달 30일 만난 아그릴라(40)씨는 중앙대 의료진을 향해 연신 허리를 굽혔다. 아그릴라씨는 왼쪽팔에서 탁구공만한 종양을 제거하는 외과수술을 받았다.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는 아그릴라씨 뒤에는 약을 타기 위해 필리핀 현지인 40여명이 줄지어 서 있었다.
중앙대는 2000년 필리핀 보이스카우트연맹 초청으로 필리핀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올해로 8년째 필리핀 오지에 해외자원봉사단(단장 이무열 의학부 교수)을 파견해 병자들을 돌보고 있다. 중앙대 의료원 소속 전공의와 간호사 대학생으로 구성된 봉사단이 지난달 24일부터 지난 7일까지 보름 일정으로 필리핀 리잘 지역의 모롱시와 탈레이시의 띠알 섬 등 산간 벽지와 외딴 섬을 돌며 무료 진료와 봉사활동을 펼쳤다.
의료진은 모롱시에서 15분 정도 비포장 길을 달려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무료로 수술도 받고 약도 얻을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하루에 400명 가까운 환자가 몰렸다. 환자들은 췌장암, 결핵, 감기, 영양실조까지 다양한 질병을 앓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비싼 진료비 때문에 병원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극빈층이 대부분이었다.
이 교수는 “가격이 싼 국립병원에서조차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3000∼5000페소(6만∼10만원)가 드는데 이 마을 사람들은 하루 일당으로 100페소(2000원)정도 밖에 벌지 못한다”며 “작은 병도 뿌리가 깊어지고 상처가 커져 큰 병으로 발전된 사람들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1년 전쯤 등에 상처를 입은 발렌아데(33)씨는 치료시기를 놓쳤다. 상처부위에 종양이 생기는 바람에 1시간 정도 종양을 제거하고 10바늘을 꿰매는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의료진이 찾은 띠알 섬의 경우 여의도 면적의 10배 크기에 주민 1만여명이 거주하고 있지만 병원이 없다. 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뭍으로 나와 2∼3시간 이동해야 한다. 한 달 전부터 두통과 현기증에 시달려 왔다는 띠알섬 거주민 카카오(50·여)씨는 “병원이 너무 멀고 약값이 비싸 병을 치료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며 “먼 곳에서 일부러 찾아와줘 어떻게 고마움을 표시해야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봉사단은 의료활동 외에도 마을 곳곳을 돌며 방역활동을 펼쳤다. 주민들을 상대로 사물놀이와 태권도 시범 등 공연도 선보였다. 그러나 35도를 넘는 무더위 속에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계속되는 의료보조와 각종 공연에 봉사단원중 일부는 탈진해 쓰러지기도 했다. 전성윤(24·사회복지3)씨는 “끈적거리는 날씨와 모기 때문에 피곤하지만 병을 치료받고 기뻐하는 현지인들을 보면 힘이 솟는다”며 “우리가 한국에서 당연한 것처럼 누리는 의료혜택을 새삼 감사하게 생각하는 마음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모롱·탈레이(필리핀)=노용택 기자 nyt@kmib.co.kr
<갓 구워낸 바삭바삭한 뉴스 ⓒ 국민일보 쿠키뉴스(www.kuki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