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인터뷰는 2019년 1월 22일 중앙대학교 홍보대사 중앙사랑 인터뷰 '파워중앙인'에서 전재하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초콜릿 명장을 가리는 ‘월드 초콜릿 마스터즈 파이널 2018’에서 김은혜 셰프(조소과 05)가 한국 대표 최초로 최종 성적 5위를 달성했다. 한국 최초의 여성 대표로 대회에 출전한 김은혜 셰프는 2018년 1월에 치러진 국내 예선부터 파이널 본선 무대까지 언제나 한국 최고 성적을 거두며 누구보다 뜨거운 한 해를 보냈다.
조각가를 꿈꾸던 예술학도였지만 현재는 대한민국 최고의 초콜릿 명장으로 자리한 김은혜 셰프.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도전한 새로운 분야에서 그녀가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언제나 `불가능은 없다.`고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어보자.
Q. 김은혜 동문님 반갑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월드 초콜릿 마스터즈 2018’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 쇼콜라티에 김은혜(조소과 05)입니다.
Part 1. 젊은 조각가. 달콤한 예술에 빠지다.
Q. 동문님께서는 조소과를 졸업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이유로 쇼콜라티에를 꿈꾸게 되셨나요?
순수예술을 공부하고 졸업 작품을 준비하면서 제 전공과 진로에 대해서 다시 고민해보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내가 조각가가 되지 않으면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제가 찾은 결론이 ‘파티시에’였습니다. 쇼콜라티에라는 직업은 우리나라에서 생소하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파티시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호주에 있는 요리 학교에 들어가게 됐죠. 그런데 학교 수업 중에 초콜릿으로 조각을 하는 수업이 있더라고요. 원래 전공이 조소였으니까 그 수업은 정말 즐겁게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호주에서는 쇼콜라티에라는 직업이 파티시에랑 따로 분리되어 있는 꽤 인기 있는 직업이었어요. 그러면서 초콜릿, 그리고 쇼콜라티에라는 직업에 조금씩 꿈을 키우게 된 것 같습니다.
Q. 전공과 다른 진로를 선택하셨을 때, 주변 분들의 반응은 어떠셨나요?
조소과를 졸업하면 보통 무대나 촬영 연출가가 되는 친구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아니면 순수예술을 하는 조각가가 되는 방향도 있었는데 저는 갑자기 요리를 하게 되었으니까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조금 특이한 케이스였죠.(웃음) 그리고 제가 4학년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바꿨기 때문에 주변에서 더 말리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 길도 쉽지 않을 텐데 왜 굳이 낯설고 힘든 길을 가려고 하느냐고 걱정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꼭 파티시에로 성공하겠다는 오기가 더 생겼던 것 같아요.
Q. 초콜릿이라는 재료, 그리고 쇼콜라티에라는 직업이 가지는 매력이 있다면?
디저트류 중에서 설탕, 빵, 초콜릿 이 3가지로는 공예를 할 수 있어요. 단순히 먹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디저트를 작품으로도 만들 수 있는 재료 중 하나가 초콜릿이거든요. 그 점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초콜릿은 온도나 습도, 작업 환경에 매우 민감해요. 그게 사실 초콜릿을 다루는데 어려운 요소이면서 동시에 매력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예민한 재료이지만 우아한 색감을 가지고 있어서 결국은 아름다운 결과물을 보여준다는 것이 초콜릿의 매력이죠. 작업하기가 힘들고 예민하게 다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초콜릿을 여자에 비유하기도 해요.(웃음) 그리고 결정적으로 맛있잖아요.(웃음)
Q. 쇼콜라티에로서 식품 관련 전공이 아니라 예술대학을 먼저 전공했기 때문에 유리했던 점이 있다면?
조소를 전공했기 때문에 가장 도움이 된 점 중 첫째는 ‘체력’이에요. 조소과 학생들은 밤을 새우면서 작업을 해야 할 경우도 많고, 돌이나 철을 다루기 때문에 무거운 걸 옮길 일도 많아서 체력이 굉장히 좋아요. 막상 이 일을 해보니까 체력이라는 게 무시할 수 없는 요소더라고요. 그리고 두 번째는 ‘디자인’적인 면에서 더 유리했던 것 같아요. 제품이 소비자한테 팔리려면 맛도 좋아야겠지만 먼저 보이는 모양과 색이 매력적이어야 하잖아요. 아무래도 공예를 전공하면서 경험했던 것들이 제품의 색감이나 형태, 구도를 조금 더 매력적으로 풀어내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만든 디저트의 디테일이 고객들에게는 명품으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에 쇼콜라티에로서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Part 2. 쇼콜라티에 김은혜. 낯선 꿈이 현실이 되다.
Q. 처음 요리를 시작하셨을 때, 낯선 분야에 대한 어려움, 타지에서 겪는 외로움 등 힘든 점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제가 일을 처음 시작한 곳이 호주에 있는 이탈리안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었어요. 그런데 요리 경험도 없는 키 작은 여자 동양인이 주방일을 한다고 하니까 편견을 가지고 저를 보는 분들이 많았죠. 그래서 조금만 실수를 해도 많이 혼나고 그랬어요. 그럴 때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도 들고 많이 외롭기도 했는데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이미 학교도 졸업했고 다른 사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나라에 왔는데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돌아가면 패배한 사람이 될 것 같으니까. 그래서 마음을 좀 독하게 먹기로 했어요. 출근도 2시간 정도 일찍 와서 미리 일을 시작하고, 브레이크 타임에도 혼자 먼저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3개월 정도 지났는데 레스토랑 헤드 셰프가 회식자리에서 “너는 나중에 크게 될 거야.” 이렇게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가장 혼을 많이 내신 분이라서 그분에게 가장 인정받고 싶었는데 그 날 정말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Q. 호주에서 쇼콜라티에로 근무하신 이후에 한국에 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외국에서의 경험이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호주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쇼콜라티에라는 직업을 꿈꾸지도 못했을 거에요. 우리나라도 쇼콜라티에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 있지만 사실 공예를 직접 해보신 분들은 많지 않아요. 초콜릿과 관련해서는 한국보다 호주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니까 아무래도 그런 부분에서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리고 호주가 확실히 우리나라보다 디저트에 관련한 유행이 빨라요. 한 2~3년 정도 더 빠른 트렌드를 가지고 있어서 디저트 시장의 흐름을 공부하는 것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호주는 디저트와 관련된 니즈가 많으니까 디저트 문화나 제품이 더 빨리 발전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식재료도 다양한 열대 과일을 더 싼 값에 구할 수 있어서 재료를 활용하는 면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Q. 전공과 다른 진로로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원래 꿈이랑 현실은 다르잖아요. 그래서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꿈이 있다면 최대한 빨리 그 일을 경험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실제로 경험해보면 현실은 본인 생각이랑 다를 수도 있어요. “내가 상상하던 이상이 아니라 현실을 마주했을 때도 내가 계속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던졌을 때 스스로 “할 수 있어.”라고 답할 수 있다면 “그래 해보자.” 이렇게 되는 거죠. 저도 요리라는 분야에 도전하면서 가장 먼저 해본 것이 아르바이트였어요. 현실을 마주해보고, 스스로를 시험해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만약 스스로 확신을 가지고 답을 내렸다면, 이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결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선택지를 만들어버리면 대부분 사람들은 쉬운 길을 선택해요. 그래서 저는 억지로라도 이 직업과 저의 인연을 만들려고 했어요. 조금 무식하지만(웃음) “나는 파티시에가 천직이야.”라고 스스로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번 대회를 준비하기 전에 사실 저는 이렇게 큰 대회에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준비되어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존경하는 한 분이 저한테 이렇게 말씀해주시더라고요. “본인이 생각하기에 준비가 되어 있는 때는 언제죠? 완벽하게 준비된 때는 없어요.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세요. 대신 포기하지 마세요.” 그 말을 듣고 저도 용기를 얻어서 대회에 도전했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거죠. 그리고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고요. 그러니까 여러분들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주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사진제공 – 김은혜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