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가 만난 모교 총장]
"졸업 후 2~3년은 원하는 일 찾는 `新오디세이` 경험하라"
대학생들 취업에만 급급…
소통·교감 능력 키워야…
기업의 대학경영 참여 '긍정적'
일에서 행복 느껴야 혁신도 가능…
창업은 전문성 쌓은 뒤 도전…
6개월 인턴제 도입 바람직
안국신 중앙대 총장(왼쪽)과 박상환 하나투어 회장이 중앙대의 상징인 청룡상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 회장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돈보다는 즐길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자 안 총장은 "젊은이들이 대학 시절에 원하는 직업을 찾고 올바른 직업관을 세울 수 있는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화답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긴 인생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돈 많이 버는 일보다 즐길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대학도 학생이 진정 즐길 수 있는 일을 찾는 걸 도와주는 교육을 해주길 부탁합니다.”(박상환 하나투어 회장)
“대학 시절뿐 아니라 졸업 후 2~3년 정도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는 ‘신(新)오디세이’를 경험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율리시스처럼 세계를 누비며 다양한 경험을 해보세요.”(안국신 중앙대 총장)
지난 6일 서울 흑석동 중앙대 본관 총장실에서 만난 박 회장과 안 총장은 후배 대학생들에게 이처럼 ‘여유를 가질 것’을 주문했다. ‘혁신’을 키워드로 매일같이 숨가쁜 일정을 소화하는 두 사람의 조언으로는 조금 의외였다.
안 총장이 “가족들 모두 해외여행 갈 땐 하나투어를 이용하는데 그때마다 우리 동문 기업이라고 자랑한다”며 인사를 건네자 박 회장은 “두산의 경영 참여와 총장님의 활약으로 중앙대가 혁신해가는 모습에 동문들이 뿌듯해하고 있다”고 화답하는 등 대담은 편안한 분위기로 시작됐다. 하지만 ‘인재 육성’과 ‘혁신’으로 주제가 넘어가자 두 사람은 열띤 토론을 벌였다.
▶안국신 총장=대학의 임무는 소비자인 학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교육 서비스 사용자인 학생은 물론 서비스를 제공하는 교수와 교직원도 사람이라는 점에서 인적 역량을 최대한 개발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죠. 여행업 역시 사람의 역할이 절대적일 텐데요. 박 회장님의 인재 개발 노하우를 배우고 싶습니다.
▶박상환 회장=말씀대로 여행업도 사람 빼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직원들이 스스로 역량을 키우는 것은 주인의식을 갖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 여행업계 최초로 직원들에게 주식을 나눠주는 스톡옵션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상장을 추진하면서 여행도 엄연히 하나의 사업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했죠.
▶사회=두 분은 ‘혁신’에서도 각 분야를 대표하고 있죠.
▶박 회장=외부에선 여행상품에 B2B 모델을 도입한 것이나 온라인 예약 조회 시스템 등을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만 개인적으론 스톡옵션 도입이나 무기명 게시판 운영 등 내부적인 경영 방식을 개선한 것이 더 큰 성공 비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직원들에게 주인의식을 갖게 하고 직원들과 소통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입니다.
▶안 총장=우리 나라에서 대학이 가장 정체되고 비효율적인 조직이라고들 하죠. 중앙대는 2008년 두산그룹에서 인수한 이후 교수 연봉제, 계열별 부총장제 등 혁신을 추진해 왔습니다. 하지만 교수는 ‘1인 성주(城主)’라고 할 정도로 각자 지론이 있고 가치관도 분명해 반작용 역시 강합니다. ‘혁신은 필연적이다. 다만 우리 과(科)는 빼고’라고 하는 교수들도 상당수 있습니다. 그래서 작년 취임 때부터 혁신과 소통을 모토로 내걸었습니다. 그리고 아래에서부터 혁신이 가능해지도록 대학본부는 물론 상경계 이공계 등 계열별로 평교수들로 구성된 혁신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사회=두 분의 인재상을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박 회장=자기 일을 즐길줄 아는 인재를 최고로 꼽고 있습니다. 자신이 일하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껴야 혁신도 하고 새로운 아이템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의사 변호사는 돈 많이 벌어서 좋겠다고 하지만 실제 매일 접하는 상대는 환자나 법적으로 곤란한 사람들입니다. 반면 여행은 누구나 기쁜 마음으로 가는 행복을 파는 비즈니스입니다. 그런 면에서 여행업은 정말 좋은 산업이죠.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췄다면 이미 좋은 인재가 갖춰야 할 많은 조건을 갖춘 것이라고 봅니다.
▶안 총장=이 시대엔 비전과 감성을 가진 인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10년 후, 20년 후에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자기 발전도 이뤄지는 것이겠죠. 또 점점 자신만의 힘으로 성공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얘기죠.
▶사회=요즘 대학생들은 취업에 억눌려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얘기들도 합니다.
▶안 총장=일단 직장에 가고 보자고 생각하기보다는 여유를 좀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20세면 웬만하면 90세, 100세까지 살지 않겠습니까. 대학뿐 아니라 졸업 후 2~3년은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한 여러 경험을 해보는 시기로 활용하면 어떨까요. 율리시스가 세계를 누비며 갖가지 경험을 했던 것에 비춰 ‘신 오디세이’의 시기를 지내보자는 것이죠. 자기 적성이 무엇인지 충분히 파악해서 진정 미치고 싶은 일에 뛰어드는 겁니다.
▶박 회장=‘신 오디세이’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대학 때 적어도 6개월가량 연속성 있는 인턴십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주셨으면 합니다. 방학을 이용해 잠시 하는 인턴은 단순히 하나의 스펙 이상이 되기 힘듭니다. 한학기 동안 인턴을 하면 9학점가량 인정해 주시면 어떨까요.
▶안 총장=장기 인턴을 활성화할 수 있는 길을 찾아보겠습니다. 다만 대학 시기는 실용 지식 자체도 중요하지만 지식을 습득하는 자세와 능력을 익히는 시기로서의 중요성도 큽니다. 또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 해외에도 많이 나가봐야죠. 다양한 사람과 문화를 접해본 경험은 평생 큰 재산이 됩니다. ‘갔노라, 보았노라, 경험했노라’ 이 말을 꼭 가슴속에 담아두길 바랍니다.
▶박 회장=맞습니다. 인성이 우선이죠. 보석의 원석 같은 인재라면 기업은 1년이든 2년이든 투자할 자세가 충분히 돼 있습니다. 학생들이 사회를 보는 시각이나 글로벌 감각을 더 키우면 좋겠습니다. 요즘 해외에 나가볼 기회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쉬운 것은 대학 때 많이 다녀본 청년들이 막상 회사에 들어오면 시야가 국내로 좁아진다는 겁니다. 세계를 무대로 뛰겠다는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생각보다 적어요.
▶사회=청년들에게 기업가 정신에 대해 들려준다면.
▶안 총장=기업가 정신은 좁게는 창업이지만 넓게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혁신과도 연결되죠. 구상한 아이템을 구체적으로 디자인해서 실행하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돌파력과 통찰력을 동시에 갖춰야 하죠. ‘신 오디세이’는 이런 능력을 갖추는 시기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박 회장=제 경험에 비춰 보면 도전 정신보다 더 중요한 건 비전에 대한 확신과 전문성인 것 같습니다. 주식 배분과 상장을 통해 기업의 가치를 직원들과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성공하기 어려웠겠죠. 직장생활을 하면서 경험을 쌓은 덕에 그런 생각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 사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해당 분야에서 몇 년간 경험을 쌓아보길 바랍니다. 기업가 정신을 이루는 또 하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입니다. 우리 회사는 소외계층에 대한 무료 여행 사업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자세가 기업 경영을 진지하게 해주는 힘이 됩니다.
▶사회=중앙대는 기업 경영 기법을 도입한 혁신 모델로 꼽힙니다.
▶안 총장=대학을 사회와 담쌓고 연구만 하는 상아탑이라고 보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사회 발전에 기여하려면 사회와 교류하면서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야죠. 일부에선 기업이 대학 경영에 시시콜콜 간섭한다고 하는데 대학은 필요한 건 받아들이고 안되는 건 안된다고 분명히 얘기합니다. 실무자 간에는 목소리도 커지고 합니다만 건설적인 토론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발전하는 것이죠.
▶박 회장=기업이 투자하면서 간섭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본분을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두산의 투자로 대학이 발전하는 데 대해 동문들은 굉장히 고맙고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안국신 총장은…
안국신 중앙대 총장(65)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부터 중앙대 교수로 재직해왔고 작년 2월 13대 총장에 선임됐다. 그의 책 현대경제학원론(김대식·노영기 공저)은 1985년 출판 이후 30년 가까이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보는 경제학 기본서 가운데 하나로 자리를 지켜왔다. 그는 인세 전액을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있다.
박상환 회장은…
박상환 하나투어 회장(55)은 중앙대 영어교육학과(78학번)를 졸업하고 곧바로 고려여행사에 취업했다. 1989년 모두투어(옛 국일여행사)를 창업한 데 이어 1993년에는 하나투어를 설립해 국내 1위(시장점유율 18%대) 여행사로 성장시켰다. ‘모두’와 ‘하나’라는 이름에는 회사를 임직원과 공유하겠다는 그의 경영 철학이 담겨 있다.
정리=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