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업계에서 3세 경영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다. 100년이라는 짧지 않은 업력을 지니고 있는 국내 제약 산업은 토대를 닦아놓았던 선대 창업주들이 물러나고, 후대 경영인들이 사업전면에 나서며 본격적인 텃밭 가꾸기에 착수했다. 특히 최근 부각되는 3세 경영인들은 오랫동안 제약사 경영을 위한 준비를 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부분 3세 경영인들은 경영대학원(MBA)이나 제약관련 학과를 전공하는 등 어릴 적부터 경영수업을 착실히 밟아 왔기 때문에 보다 체계적으로 회사를 성장시킬 것이란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그 중심에는 강정석 동문이 서 있다.
강정석 동문은 1998년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국내 제약업계 1위 동아제약에 입사하며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밟아왔다. 강정석 동문은 창업주인 고(故) 강중희 회장, 서울의대 출신에 전경련 회장을 지낸 아버지 강신호 회장에 이어 2005년 영업본부장을 거쳐 2007년부터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지난해 11월에는 운영총괄은 물론 연구·개발 부문까지 총괄하면서 3세 경영인으로 경영전반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특히 이번 R&D 총괄사업 역할은 그의 우수한 경영성과가 인정을 받았다는 평가다. 강정석 동문은 2006년 계열사인 동아오츠카 사장을 역임하며 간판 제품인 포카리 스웨트를 이을 후속 신제품인 블랙빈 테라피 및 녹차음료 등을 출시했다. 그 결과, 지난 2007년 음료업계의 전반적인 부진에도 불구하고 전년대비 10.5% 성장한 매출을 올려 음료업체 중 유일하게 두 자리수의 성장을 기록했다.
또한, 2005년 동아제약 영업본부장을 맡은 이후 부가가치가 높은 전문의약품의 매출비중을 꾸준히 확대, 제약업계 최초로 8000억원을 돌파하는 등 뛰어난 경영성과를 보였다.
최근에는 다국적 제약사 GSK와의 전략적 제휴와 대규모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다시 한번 경영능력을 확인시켰다.
동아제약은 올해 매출목표를 9000억원으로 잡았다. 이로 인해 동아제약이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하는데, 강정석 동문의 경영능력에 다시금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강정석 동문의 경영철학는 '고객과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는 기업,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윤리적인 기업'이다. 기업 내에서도 소통과 활기를 중시한다. 또한 평소 경영자라면 직원을 감싸 안을 줄 아는 덕을 갖춰야 한다며 직원들이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경청하고 해결하려고 애쓴다. 특히 활기찬 소통 통해 행복한 일터 만들기를 위해 평소에도 직원들을 위한 콘서트, 영화 관람 등 감성경영을 실천하고 있다.
‘호시우보(虎視牛步)’. 김윤섭 동문이 항상 강조하는 말이다. 호랑이가 먹이를 노리는 것처럼 날카롭게 상황을 판단하고, 황소처럼 우직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자는 의미의 사자성어다.
76년 공채로 유한양행에 입사한 김윤섭 동문은 30년 넘게 영업과 마케팅 분야를 오가며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다. 2009년 CEO 자리에 오른 이후, 유한양행을 1등 보건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김윤섭 동문은 직원들에게 항상 ‘일등이 되라’고 주문한다. 그냥 막연한 일등이 아니다. 임직원 개개인이 크게는 한 분야에서, 작게는 한 지역에서 일등이 되면 회사는 당연히 일등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최선을 다해라’라는 말보다 ‘혼신을 다해라’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혼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일등이 되기 위한 방법이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취임 후 그는 실적 위주의 숫자경영보다 유한양행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가를 먼저 생각했다. 한마디로 큰 그림을 그린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윤리경영을 선언한 것도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국내 제약사들이 공격적이고 단기적인 성과 위주의 영업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제네릭(복제약) 위주의 과당 경쟁이 불공정행위를 양산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는 과감하게 제약업체의 선도 기업으로, 그동안의 관행을 타파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윤섭 동문이 평소 강조하는 경영철학은 미래와 실행, 그리고 책임이다. 특히 책임경영의 경우 목표 달성을 위한 강한 의지와 투철한 책임의식 고취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공정한 평가와 합리적인 보상체계 구축은 물론 결과에 책임지는 기업문화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한편 김윤섭 동문은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계층의 정보를 듣고 경영에 필요한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인적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경영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김윤섭 동문의 ‘발로 뛰는 경영’ 실천은 회사 내에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영업 출신답게 탁상공론이 아닌 발로 뛰는 경영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녹십자 조순태 동문(57)은 입사 28년 만에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1981년 당시 故 목암 허영섭 사장 앞에서 "(사장님이) 후회하지 않는 선택의 증거가 되겠습니다"고 호기를 부렸던 27세의 젊은이는 그 약속을 지켰고, 높아진 자리만큼 약속의 몸집은 부풀려져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의 부담도 늘어났을 터이다.
영업인생에서 늘 1등을 했던 그는 회사가 전략적으로 투입하는 곳에서 어김없이 승전고를 울렸고 덕분에 9번의 승진을 모두 특진으로 이뤄냈다. 그는 저돌적 열정으로 무장한 전사 같은 삶을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여년 전 경기도 과천의 13평 아파트에 거주할 때의 일이다. 이른 새벽 출근하려고 나섰는데 현관문이 고장 나 열리지 않았다.
경비가 따로 있을 리 없는 소형아파트에다, 요즘처럼 119 출동도 갖춰져 있지 않은 시절 그가 문제해결을 위해 선택한 것은 망치였다. 문을 부숴버리고서야 그는 출근에 성공했다. 매우 과격해 보인다. 그렇지만 그 문은 누군가 열지 않으면 안 될 문이자, 수리를 해야 할 문이었다. 콜럼버스 달걀 세우기와 같은 이 문제 앞에서 '장삼이사'들은 과연 망치를 들 수 있을까?
대부분, 집과 현관을 오가며 종종걸음 치다가 회사에 전화를 걸어 '오늘 좀 늦을 것 같습니다'라 하지 않았을까. 뚜렷한 목표의식에다 망치로 상징되는 열정으로 똘똘 무장한 그였지만, 그 역시도 갈등하는 인간이었다.
"우연히 대학 써클 후배가 운영하는 약국에 들렀는데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실연은 또 다른 사랑에 빠짐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고 했던가. 그에게 힘을 준 것은 또 다른 갑, 약사였다. "회사 뱃지를 떼고 다른 약국에 들어갔어요. 10만원 짜리 수표 내고 박카스 한 병을 산거죠. 그런데 그 약사님 표정하나 안 바뀌며 9만9천 몇 백원을 거슬러 주는 겁니다. 그러면서 잘 가라고 인사까지 하더군요. 무릎을 쳤어요. 이런게 프로정신이구나. 더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녹십자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조순태 동문은 “올해, 3년 후, 5년 후, 10년 후 회사의 지속성장일 따름입니다. 국내 빗장이 다 풀린 상황에서 국내 기업 간 순위경쟁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순위보다 더 중요시하는 것은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입사하고 싶은 기업 1위에 오르는 겁니다. 입사하고 싶은 기업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일본 소니를 앞설 것으로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세계의 문턱을 한번 넘기가 어렵지 넘기만 한다면 봇물 터지는 현상이 국내 제약업계에도 나타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롤 모델을 제시하는 기업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결국 세계 속의 그린 크로스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라고 당차게 말했다.
한미약품은 국내 4위(2009년 기준) 제약업체로 약사 출신이 세운 제약사라는 이력을 갖고 있다. 한미약품은 지난 1973년 임성기 동문이 제약 사업을 위해 창업하면서 ‘한미약품’이라는 회사를 인수한 데서 시작됐다.
중앙대학교 약학과를 졸업한 임성기 동문은 1966년 27세 나이로 ‘임성기 약국’을 개업했다. 개업 1년 뒤인 1967년 후 임질·매독 전문약국 즉, 성병전문약국으로 번창했다. 이 약국은 당시 월남전이 한창인 베트남 현지로 약을 보낼 정도였다. 약국 경영으로 돈을 번 임 회장은 1973년 한미약품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제약 사업에 발을 들여놓았다. 같은 해 10월 한미약품의 최초약품인 광범위 항균제 티에스파우더(T.S.Powder) 생산 및 판매를 시작했다. 이후 1984년 팔탄GMP 공장을 신축하고 1986년 한미약품 연구센터가 과학기술부로부터 정식 기업부설 연구소로 인가받아 설립됐다.
임성기 동문의 한미약품은 최근 리베이트 파동 등으로 제약업계의 영업환경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R&D 투자 확대라는 정공법으로 위기탈출에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한미약품을 창업해 국내 굴지의 제약사로 키워온 임성기 동문은 만 70세의 나이에 '신약개발'이라는 제약업계의 오랜 꿈에 도전장을 던졌다.
외국 기업이 개발한 신약을 바탕으로 한 제너릭 의약품(복제약)으로 회사를 일궈냈지만 앞으로는 독자적인 신약을 개발해 해외 시장을 두드리겠다는 야심찬 포부다. 또한 임성기 동문은 글로벌 제약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최근 몇 년 사이 공격적인 R&D 투자로 한미약품을 제약업계를 대표하는 연구개발 기업으로 부상시켰다. 그는 대다수 기업들이 구조조정에 여념이 없었던 IMF 당시에도 오히려 기술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를 밑거름으로 인력확충과 R&D투자를 전년보다 강화할 것을 주문하며 공격경영을 펼쳤다. 나아가 오는 2015년에는 해외매출 10억달러, 2020년에는 30억달러를 달성함으로써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의 입지를 굳히겠다는 게 그의 비전이다.
중외제약의 박구서 동문 역시 작년 2월 대표이사에 선임 되면서 중앙대 제약회사 CEO천하에 합류했다.
박구서 동문은 1976년 중앙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후 78년 중외제약에 입사한 후 97년 홍보실장, 2004년 경영지원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박구서 동문은 홍보실 출신으로 이례적으로 대표이사에 선임돼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현재 중외제약은 박구서 동문 등 3인의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중외제약은 고지혈증치료제 리바로, 수액제 등 기존 대형품목과 함께 지난해 출시한 전립선비대증치료제 트루패스를 새로운 블록버스터 품목으로 육성하고 있고, 지난 3년간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헬스케어 분야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CWP231A’라는 현재 시판되고 있는 항암제와는 다른 치료 원리를 갖고 있는 ‘표적항암제’ 개발에 힘써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로 입지를 굳힐 계획을 가지고 있다.
취재 : 홍보대사 배성현 (경영학부)
편집 : 홍보대사 서상희 (문예창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