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입력시간 : 2010-02-22 오전 1:23:30
해방기 지식의 윤곽, 이 한 권에 압축했다
『해방기 간행도서 총목록』 펴낸 보성고 오영식 교사
국어교사와 서지연구. 오영식씨는 이 두 가지 일을 뚜벅뚜벅 해왔다. 우리 학계에 밑거름을 대온 ‘작은 영웅’이라 할 만하다.
이 책에는 1945년 해방 직후부터 1950년 6월까지 5년여 동안 나온 출판물 목록이 담겨있다. 해방기는 한국 출판의 역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일제 치하에서 억눌렸던 출판계가 화산처럼 분출하며 책을 쏟아냈다. 무려 1000여 개의 출판사가 새로 생겨났다. 해방기 폭발적인 출판은 국가 재건의 토대가 됐다. 그러나 해방기 출판의 역사는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 살아남아 자신들의 역사를 정리해 놓은 출판사는 을유문화사 외에는 없었다. 당시 어떤 책이 나왔는지 정확히 알 도리가 없었던 게다.

오씨는 “해방기는 20세기 후반 한국사회를 결정지은 중요한 시기인데 주요 자료가 거의 정리되지 않았다는 점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중앙대 국문과 재학시절부터 고서를 수집하기 시작한 그는 15년 전부터 해방기 자료를 하나 둘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의 초점이 해방기에 맞춰 있는 걸 눈 여겨 본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며 서지 정리를 권했다.

신간은 두툼하다. 총 695쪽에 이른다. 모두 1000여 출판사, 5200여 종의 책 정보가 들어있다. 일례로 『건국과 국민 경제-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문맹퇴치 인민독본』 『조선의 토지제도와 북조선 토지개혁의 의의』 『위대한 쏘베트국가』 『왜놈이 민비 죽인 이야기』 등은 제목만으로도 당시의 시대상을 가늠케 한다. 그 혼란기에도 두 달 만에 5판을 찍은 『내가 넘은 삼팔선』, 20판을 찍은 김내성의 탐정소설 『마인-범죄편』, 수십 만 부를 찍은 『한글 첫걸음』 같은 베스트셀러가 나왔단다. 『경찰관, 형무관, 소방관수험준비서』 류의 수험서, 『조선의 유우모아』 류의 가벼운 읽을거리 등 다양한 책이 출간됐다. 해방기 출판사 관계자들의 생생한 증언, 저자 인지와 책표지 등의 자료도 흥미롭다.

오씨는 해방기 특징을 유형별로 정리해 머리말에 적었다. 종이와 한글 활자, 한글에 능한 필자가 부족해 난맥상을 겪었던 당시이기에 옛 책을 복간하는 것이 가장 흔한 유형이었단다. 한국 필자 부족, 미군정으로 인한 영어의 유행은 번역서가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배경이 됐다. 용지가 부족해 종이가 덜 드는 문고본(해방기에만 34종이 나왔다) 바람도 불었다. 책이 나오고 보니 사실 학계나 문화계가 먼저 나서서 해야 했을 일로 보인다. 해방기의 문화사·문학사·사상사·출판문화사의 든든한 기초 자료가 이 한 권에 담긴 셈이다.

정 교수는 오 교사를 학계의 ‘숨은 공로자’라고 인정했다. 서양에서는 한 권의 책에 대한 인덱스만 만들어도 ‘인덱서(Indexer)’ 라는 명칭으로 전문성을 인정하는데, 우리에겐 그런 풍토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오 교사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우리 근대사에서 가장 복잡했던 한 시대의 책들에 대한 인덱스를 만들었다.”

오씨의 작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해방기 정기간행물의 기사 색인 작업도 이미 시작했다. 그는 “해방기 지식의 총체를 가늠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살아있는 한 멈추지 않을 것 같은 그의 오랜 꿈이다.

글·사진=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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