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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고위급 회담이 열린 지난 9일, 정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후속조치를 위한 기본방향’을 발표했다. 남북 및 한·일 관계는 우리의 운명같은 것인데 이 둘이 한 날 화제에 올랐다는 점이 기묘하다.

그 둘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는 알 수 없지만 긍정적으로 진행됐으면 좋겠다. 그런 기대가 있어선지 남·북·일 3국을 둘러싼 20년 전의 전개과정이 떠오른다. 그 시작은 1998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채택한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문’이었다.

공동선언문은 일본의 통절한 반성과 사죄를 바탕으로 양국의 대대적인 협력 확대를 밝힌 것이다.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위한 기본지침이나 다름없었다. 이로써 구축된 한·일 협력관계는 2년 후인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동력으로, 나아가 2002년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평양 방문, 즉 북·일 교섭으로 펼쳐졌다.

98년-2000년-2002년으로 이어졌던 남·북·일의 모습을 앞으로 다시 볼 수 있을까. 현 3국 지도자가 당시와 직간접으로 연계돼 있음은 고무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선을 잇고 있고, 김정일과 김정은은 부자지간인 데다, 아베 신조 총리는 2002년 내각관방부 장관으로서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을 수행했었다.

그러나 기대는 바로 벽에 부닥친다. 첫 번째 고리인 한·일 관계가 심상치 않다.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이해가 꼬여 있어서다. 위안부 문제가 이토록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은 피해 당사자에 대한 관점을 놓쳐 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간 한·일 양국은 그들을 감싸기보다 회피하거나 반일 내지 혐한의 상징으로만 삼았다.

지난해 9월 나온 영화 ‘아이 캔 스피크’에서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이 살짝 드러난다. 위안부 할머니 옥분은 친구 대신 미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을 하기로 했는데 늘 그의 마음을 옥죄던 것은 일본에 대한 분노 이상으로 자신에 대한 가족들의 냉대였다. 어머니는 인연을 끊자고 했고, 미국에 사는 동생 정남은 모른 체하며 연락하지 말라고 다그쳤다.

정부는 93년과 98년 1, 2차에 걸쳐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자체 지원을 해 왔지만 일본에 대해 배상을 요구하거나 외교 현안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적어도 2011년 8월 헌법재판소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하지 않은 정부의 부작위(不作爲)에 대해 위헌을 판시할 때까지는 그랬다. 이후의 대응도 소극적이었지만.

시민사회는 어땠나. 일부 시민단체들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앞세워 대일 압박을 강화하는 데만 열심이었다. 사람들은 위안부 문제를 반일감정의 키워드로, 일본 비판의 재료로 삼아 왔을 뿐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생, 그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공분만 앞세웠을 뿐 할머니들의 현실에 대한 이해는 모자란 듯했다.

일본 정부는 더 말할 나위 없다. 그들은 위안부 문제가 65년 청구권협정으로 완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유엔의 권고안이 나오고 인권과 진실과 정의를 거론해도 형식논리에만 매달려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압박 끝에 나온 2015년 합의는 그나마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정부 예산으로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위로금 제공, 위로사업 추진 등을 거론함으로써 이전보다 나아진 것이었지만 역시나 할머니들의 마음을 사지는 못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참에 정부가 2015년 합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런데도 합의 폐기나 재교섭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문재인정부가 공약을 파기하면서까지 시민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전략적으로 임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다만 일본은 앞으로 어떤 사태가 펼쳐질지 매우 모호해하면서 우려하고 있다.

결국 해법은 놓쳐 왔던 문제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스테레오타입의 반일 재료로만 삼아 왔던 위안부 문제를 할머니들이 겪고 있는 구체적인 삶의 문제로서 접근해야 한다. 우리는 그간 어떤 해법이 좋을 것인지 논의조차 하지 않았었고, 그저 일본을 윽박지르는 데 초점을 맞춰 왔다. 이건 아니다. 할머니들을 감싸안는 게 먼저라야 했다.

소녀상도 신중하게 다뤘으면 싶다. 위안부 소녀상은 기림비로서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일본에 대한 조롱거리로서 활용되고 있는가. 기림비로서 존재한다면 소녀상이 있어야 할 장소는 일본 대사관이나 영사관 앞이 아니라 역사박물관이나 우리 모두가 드나드는 공원 같은 곳이 적절할 것이다.

우리의 위안부 문제 인식이 내부합의를 이뤄 제대로 방향을 잡아간다면 일본과의 해법도 자연스럽게 조율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사람이 먼저다, 사랑이 먼저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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