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한국의 무역액이 1조 달러를 다시 돌파했다. 3년 만이다. 무역 1조 달러 국가는 전 세계적으로 9개국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내외 환경 변화를 감안하여 정부가 양적 수출확대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그 이유는 먼저 향후 세계무역이 크게 증가할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보호무역주의가 강화하고, 후진국과 선진국 간 글로벌 분업체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함에 따라 세계무역 증가율은 눈에 띄게 낮아진 상태다. 국가 간 무역분쟁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수출주도형 성장 전략을 채택해왔던 중국과 한국이 반덤핑 등 무역구제 피제소국 1·2위를 나란히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예전처럼 양적 수출확대 정책을 유지할 경우 수입국 혹은 경쟁국들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우리 수출산업이 미래에 대한 대비가 부족하다는 데 있다. 세계는 4차 산업혁명이 산업과 사회에 미칠 영향 계산에 분주하다. 특히 중국은 대학을 중심으로 한 벤처 창업 열풍 속에 국가와 선도 정보기술(IT)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이미 드론, 전기차, 모바일 결제 등 일부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정부와 산업계, 학계의 밀접한 연계와 13억 인구가 쏟아내는 빅데이터 등 자국의 강점을 잘 활용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반면 한국 기업들의 명확한 미래 먹거리와 가시적 성과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일부 대기업들이 바이오, 수소차 등에 투자하고 있지만, 글로벌 선도기업을 따라가기에 벅찬 느낌이다. 또한 창의성을 요구하는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등 경쟁력도 많이 부족한 실정이다. 과거 우리 정부와 대기업은 양산기술에 연구개발(R&D)을 집중해 범용품 수출에 주력해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부품 소재를 포함한 고부가 품목으로 수출산업 포트폴리오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를 위해 잠재력이 높은 산업군, 역량 있는 기업에 대한 차별적이고 명확한 핀포인트(pinpoint)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 정부는 ‘새 정부의 산업정책방향’을 발표했다. ‘혁신성장’을 통해 2022년까지 30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주력산업을 고도화하고, 신산업 선도 프로젝트를 통해 새 성장동력을 육성하겠다고 한다. 방향성은 타당해 보이지만 정책 간 우선순위 조정, 구체적인 정책실현 방법 등 디테일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무역보험 등 정책금융 지원도 단순한 확대가 아닌, 신규 수출동력 확충과 일자리 창출에 어떻게 밀접하게 연계시킬지 질적 차원의 고민이 필요하다.
지난 11월 청년실업률이 역대 최고인 9.2%를 기록했다. 한국은 1990년대 호황에 취한 대기업들의 ‘선단식 경영’과 정부의 구조조정 타이밍 실기로 혹독한 외환위기를 경험한 바 있다. 무역 1조 달러 회복을 우리 수출산업의 체질 개선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김창봉 중앙대 산업창업경영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