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구치소에서 한 작별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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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운을 뗐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부모형제는 물론 누군가의 도움을 적지 않게 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은혜는 제대로 갚지 않고 누구한테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여기에 와서 푸른 수의를 입고 있습니다. "
말을 하다 보니 재소자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말이 입 밖으로 거침없이 나왔다. 한쪽 팔에 온통 문신이 그려져 있는 20대 청년과 도박벽을 못 버려 교도소에 10여년에 걸쳐 네 차례나 들어온 40대 아저씨도 나의 입을 쳐다보고 있었다.
"제가 부탁하고 싶은 한 가지는 이제부터는 여러분도 남들한테 베풀면서 살아보라는 것입니다. 주변의 친구도 좋고 어린 조카한테도 좋습니다. 서점에 가서 살펴보면 정말 좋은 책들이 많습니다. 감동을 주는 책,깨달음을 주는 책,지혜를 가르쳐주는 책을 고르는 시간에만도 여러분은 마음이 푸근해질 것입니다. "
나의 작별인사는 어느새 독서 캠페인으로 내용이 바뀌고 있었다. 교정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집에 도통 안 쓰던 편지를 썼다는 이들이 있어 나는 글쓰기의 보람에 이어 책읽기의 즐거움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책 한 권 값이 비싸면 얼마나 비싸겠습니까. 여러분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책 선물을 받아본 적도 책 선물을 해본 적도 별로 없지요?"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책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책을 통해 스승도 만날 수 있고 은인도 만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책을 통해 인생의 스승이나 은인을 못 만났었나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앞으로 그 역할을 해보십시오.어린 조카가 삼촌이 사준 동화책을 받고 감동하고 읽고 감동하면 여러분은 범죄자가 아닙니다. "이들의 눈빛이 반짝인다고 느낀 것은 나의 착각이었을까.
6주 동안 만난 재소자들이 내게 한 마지막 질문은 주소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학교 주소를 가르쳐주었다. 이들은 내게 시를 보내겠다고 약속했고,그 약속은 이행이 되었다. 나의 답장 약속도 이행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3일'2008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3명은 1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인의 연평균 일반도서(만화,잡지,참고서를 제외한 책) 구입비는 9600원으로,2007년 1만1500원보다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 기사를 보면서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독서인구가 늘면 범죄율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나를 만난 재소자 10여명은 내가 사인해서 준 책 2권을 오래오래 간직해줄까?
이승하 <시인ㆍ중앙대 교수>
입력: 2009-07-10 17:16 / 수정: 2009-07-10 1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