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재형(회화73) 작가가 2010년 이후 7년 만에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
황재형 작가가 2010년 이후 7년 만에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 ‘십만 개의 머리카락’을 2018년 1월 28일까지 연다. 멀리서 그림을 봤을 땐 수묵화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 다가서니 그림의 선 하나하나를 이룬 것은 모두 새까만 머리카락. 순간 자신도 모르게 머리에 머리카락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 손을 가져간다. 다소 경악스럽지만 그럼에도 그림이 주는 독특함과 힘에 압도되는 현장.
본래 작가는 ‘머리카락 화가’가 아닌 ‘광부 화가’로 알려졌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1952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1981년 중앙대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1982년 이종구, 송창 등과 함께 조직한 ‘임술년(壬戌年)’의 창립 동인으로 활동했다. 임술년은 1970년대 중반부터 등장한 모노크롬 경향에서 탈피해, 모순된 사회 현실에 저항하는 리얼리즘 정신에 입각한 민중 미술 운동이다.
작가는 이런 임술년의 정신을 이어받아 겪어보지 않은 것을 상상으로 어림짐작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노동자의 생활 현장을 생생하게 겪고 이를 그림으로 그리고자 했다. 그래서 대학 졸업 이후 광산촌에서 살면서 직접 광부의 일을 경험했다. 광산이 없어진 이후에도 광산촌의 자연과 인물을 꾸준히 그렸다. 아직도 탄광에서 일하던 기억이 생생하단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가 선택한 재료가 주목 받았다. 흙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 것. 이는 혁신적인 시도로 인정받았지만 정작 작가가 애초에 흙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돈이 없어서였다.
“처음 탄광촌에 들어갔을 땐 물감을 살 돈이 없었어요. 지독한 가난에 흙을 사용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그런데 시간이 점차 흐르고 탄광에 가득한 흙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모든 색은 자연으로부터 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엔 돈이 없어서 사용한 흙이었지만, 이렇게 흙을 직접 만지고 겪으면서 점차 흙의 물성을 이해하게 됐고, 작업에 응용하게 됐죠.”
햇볕 하나 들어오지 않는 깜깜한 지하 막장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모습을 담은 작가의 그림에서는 어려운 시절 노동자의 삶이 느껴졌다. 작가는 “당시 탄광촌은 자신의 자리를 잃은 도시 빈민들이 떠밀려온 곳이었다. 본래의 자리에서 떠나오고, 또 떠나오는 과정을 반복해 온 가운데 또 떠나가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힘든 현실을 딛고 이겨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장이었다”고 회상했다.
주체와 객체 사이에서 갈등하던 작가
머리카락으로 주체의 삶을 이해하다
하지만 작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광부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단다. 현장에서 광부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함께 일하고 저항도 했지만, 본인은 완전한 광부는 아니기에 100% 노동자로서의 그들의 삶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것. 그리고 이것은 온전한 주체와 객체 사이 존재하는 갭의 문제이기도 했다. 이때 작가가 주목하게 된 재료가 바로 이번 전시의 주재료인 머리카락이다. 작가에게 머리카락은 단순히 머리를 장식하는 용도가 아니라, 개개인의 삶이 기록되는 필름과 같이 느껴졌다고.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보면 어떤 환경에서 살았는지를 알 수 있어요. 모낭에 겹겹이 쌓인 세포에 그 사람이 어떤 온도 환경에 있었고, 어떤 심리 상태를 가졌었는지 등이 다 기록되죠. 하나의 지표라고 볼 수 있어요. 세상에 수많은 사람이 존재하는데 머리카락이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인간이 최초이자 최후로 입는 자신만의 옷이죠. 광부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스며든 땀을 통해서도 그 사람의 삶을 읽을 수 있었어요. 머리카락이야말로 인간의 본성과 생명력을 담은 중요한 존재이자 또 하나의 자신이라고 느꼈고, 이번엔 이 머리카락으로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작가가 머리카락으로 그린 첫 작품은 ‘볕바라기’(2016)다. 갱도 앞에서 지친 몸을 쉬고 있는 광부들의 모습을 담았다. 객체로서의 한계를 느꼈던 작가는 광산촌의 삶을 담은 머리카락을 사용해 주체의 이야기를 담는 시도를 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머리카락을 제공받아 커다란 캔버스 위에 펼친 뒤 형상을 만들고 접착제로 고정시켰다. 붓을 들고 물감을 칠할 땐 작가가 의도한 대로 선이 그어지지만, 수만 개의 머리카락은 자체에 독자적인 곡선이 있었다. 머리카락이 지닌 힘을 인위적으로 변형시키지 않고 자연스럽게 담기 위해 집중력을 쏟다가 작가의 눈 실핏줄이 터지기도 했다고. 유화를 그릴 때보다 3배의 시간이 소요됐다. 하지만 그 결과 완성된 화면에서는 큰 울림이 느껴졌다. 재료 자체에 담긴 힘 덕분.
앞서 언급된 이응태 부인의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미투리도 작가에게 영감을 줬다. ‘원이 엄마 편지’(2016)라는 작품으로 전시에 선보인다. 이 사연에서 작가는 머리카락으로 만들어진 미투리에서 원이 엄마의 남편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느꼈다고 한다.
“30살에 요절한 남편을 위해 미망인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신발을 만들었고, 이를 편지와 함께 무덤에 넣었죠. 즉 머리카락은 부인의 사랑의 징표였어요. 자신의 삶을 오롯이 담고 있는 머리카락을 통해 남편과 함께 있기를 바랐던 거죠. 제 작업 또한 주변 사람들의 신뢰와 애정이 있어서 이뤄질 수 있었어요. 제 작업에 대한 관심과 믿음이 있었기에 머리카락을 제공해줄 수 있었죠. 결국 머리카락으로 그린 제 그림은 ‘우리에게 보내는 뜨거운 연서(戀書)’와도 같습니다.”
이밖에 조선 인조가 청나라 황제에게 항복하면서 치른 의식을 담은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일제의 자본 수탈로 지은 사택 풍경을 담은 ‘하모니카 나고야’, 일제 치하의 노동 환경을 고발하는 ‘강주룡, 을밀대에 오르다’, 기생 신분임에도 독립운동에 앞장 선 여성을 담은 ‘변매화’, 광부의 초상을 담은 ‘드러난 얼굴’, 세월호에 자식을 떠나보낸 어머니를 그린 ‘새벽에 홀로 깨어’ 등을 전시에 선보인다. 그림 속 시대적 배경과 이야기는 모두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우리의 현실에 집중했다는 것. 그리고 이 풍경은 머리카락으로 그려지며 당시대의 한(恨)부터 사랑, 미래에 대한 의지와 꿈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읽는 시도를 한다.
“고대 사회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머리카락은 생명의 순환 과정 그 자체로 간주돼 왔죠. 머리카락으로 작업을 하면서 타인의 생명성을 느꼈고, 이에 대한 배려와 존중,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머리카락으로 그려진 그림을 섬뜩하다고 느끼는 것은 머리카락의 생명력이 아닌 배타성을 지닌 마음 때문입니다. 살았던, 살아간 인간의 몸에서 비롯된 머리카락에서 강렬한 인간의 본성을 느껴보기를 바랍니다.”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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