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권정생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겨울에 생쥐가 몸속으로 파고들어 처음엔 기겁을 했다가 얼마나 추웠으면 그랬을까 하고 가슴에 품고 잤다고요. 제 소설도 그처럼 오갈 데 없는 이들의 사소한 쉼터라도 되면 좋겠습니다.”
제14회 한무숙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정지아(44)동문은 과작(寡作)의 작가지만, 그의 작품들은 한 땀 한 땀 정성 들인 바느질처럼 단아하고 품위가 있다. 정씨는 이번에 11편의 작품이 들어 있는 작품집 ‘봄빛’으로 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집이 “전통적인 리얼리즘 기법으로 비극적 현대사와 그로 인해 뒤틀려버린 개개인의 운명, 아직도 내면 깊숙이에서 피 흘리고 있거나 상흔을 남긴 상처들을 소설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상금은 1000만원.
정 동문은 무엇보다 실제 빨치산이었던 부모의 삶을 그린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은 빨치산들이 마지막으로 항전했던 지리산과 백아산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그의 이름에 그대로 깃들여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 이미지 안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 마치 ‘어디 한번 덤벼봐라, 얼마든지 상대해주마,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 할지라도 고분고분 져주지는 않겠다’라며 결사 항전의 의지를 내보이는 그의 소설 ‘운명’의 주인공 같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강사로 일하고 있는 정 동문은 2007년 이효석문학상, 2008년 문화예술위원회 선정 ‘올해의 소설’상을 받는 등 요즘 부쩍 문학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아버지 장례식 때 빨치산 전력의 수많은 노인이 다녀갔어요. 젊은 사람들은 그 장례식을 비디오로 일일이 찍기도 했고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문상을 와서 남겨놓은 그 3일간의 인상을 그린 장편소설을 쓰려고 해요.”
정 동문은 또 자신에게 박힌 ‘빨치산의 딸’이미지와는 다른 소설도 구상 중이다. 그는 “원래 사람의 이미지는 삶의 총체적 결과물인데, 요즘엔 돈만 있으면 그와는 무관하게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세태를 꼬집는 작품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