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장내 아나운서 함석훈(연영 42) 동문-동아일보
시즌엔 농구장에 평소엔 촬영장에
“코트의 요리사라고 생각합니다. 선수들이 펼쳐내는 싱싱한 재료에 갖은 양념을 넣어 관중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역할이지요.”
전자랜드 장내 아나운서 함석훈(42) 씨. 프로농구가 출범한 1997년부터 마이크를 잡고 있는 그는 요즘 경기 때마다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린다. 최근 KCC에서 서장훈을 영입하면서 홈 관중이 경기당 5000명 이상으로 늘어 열기가 뜨거워져서다.
전자랜드는 최근 4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고 대형 스타가 없었기에 ‘서장훈 효과’에 대한 기대감은 크다.
며칠 전 함 씨는 경기 후 서장훈을 코트로 불러내 팬들 앞에서 손으로 하트 모양을 그리도록 유도해 박수를 받았다. 무뚝뚝한 성격으로 유명한 서장훈의 ‘하트’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선수와 팬들을 하나로 묶는 가교 역할을 하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원조 장내 아나운서인 그의 본업은 탤런트다. 서울고교 재학 시절 전국 청소년 연극제에서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뒤 1991년 KBS 탤런트 공채 14기로 뽑혔다.
이병헌, 김호진, 손현주, 노현희 등이 그의 동기생들이다. KBS 드라마 ‘TV 손자병법’, ‘딸 부잣집’ ‘무인시대’, ‘대왕 세종’, SBS ‘야인시대’ 등에서 개성 있는 연기를 펼쳤다.
그런 그가 장내 아나운서를 선택한 건 응원단장을 하던 아는 후배의 권유 때문이었다.
“농구와는 이런저런 인연이 많아요. 고교 때 아마추어 농구대회에 나가 우승하기도 했어요. 대학 때는 수업 땡땡이 치고 허재, 강동희를 보러 다녔죠.”
함 씨의 아나운서 경력은 1997시즌 나래 구단의 장내 아나운서를 시작으로 신세기를 거쳐 10년을 넘고 있다.
그동안 300경기도 넘게 진행하다 보니 농구 야사를 쓸 수 있을 정도다. 그의 눈에 비친 경기장 풍경도 세월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다.
우선 응원 문화의 성숙이 두드러진다.
“심판 판정이 이상하면 코트에 쓰레기통이 날아들고 2층 난간에서 뛰어내리는 극성팬도 있었어요. 아나운서의 멘트가 이상하다고 물병 세례를 당하기도 했죠.”
남학생, 아저씨 위주의 관람에서 가족 단위 팬들이 많아진 것도 달라진 문화다.
“온 가족이 집에서 함께 응원 도구를 만들며 화목을 다진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참 바람직한 모습 같아요. 예전의 수동적인 응원이 아니라 젊은 팬들은 자기표현에 상당히 적극적이에요.”
경기 중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설명도 함 씨의 몫이다. 그래서 바뀐 규칙을 달달 외우고 신인, 외국인 선수에 대한 공부에도 늘 열심이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각본 없는 농구 경기를 오래도록 지키다 보니 연기할 때 순발력을 키우는 데도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시즌이 끝나면 연기자로 카메라 앞에 설 겁니다. 투잡족인 셈이죠. 주위에서 한눈팔지 말고 탤런트로 한 우물 파래요. 전 그래도 농구가 너무 좋아요.(웃음)”
인천=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