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두드리는 것은 ‘세상의 편견’이다 [중앙일보]
학력·악기·변방의 설움 이겨낸 김미연(관현 54)동문
마림바 하고 싶어 고적대 있는 여상에 진학
타악기 첫 독주회 … 보조악기 인식 깨기 도전 타악기 연주자 김미연(28·서울시향 단원)씨가 두드리는 것은 악기가 아니다. 세상의 모든 편견이다. 학력과, 콩쿠르와, 그리고 음악에 대한 세간의 관행에 그는 온몸으로 맞선다. 그리고 자신의 소리를 들려준다.
#편견1=학교
김씨는 염광여상(현 염광여자메디텍고등학교)을 졸업했다. 클래식 악기 연주자의 출신학교로는 쉽게 찾기 힘든 기록이다. 본인 말마따나 “연주자 엘리트 코스는 아니”다. 이 학교를 택한 것은 음악 때문이다.
1995년 겨울. “어려서부터 피아노치고 노래하면서 음악을 평생하고 싶었는데 뭘 해야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던 중학교 3학년생은 우연히 염광여상 고적대의 연주를 보게 됐다. 각종 관악기, 타악기가 함께하는 마칭 밴드였다.
“타악기, 그 중에서도 마림바(큰 실로폰 모양의 악기)가 특히 좋은 ‘도구’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생소리’에 가까운 솔직함에 확 빠져버렸거든요.”
입시를 앞둔 중상위권 여중생이 갑자기 여상 고적대 이야기를 하자 주위에서는 걱정이 컸다. “선생님들이 원서도 안 써주시겠다고 했어요. 적응하지 못할 거라고.” 그는 어머니부터 차근차근 설득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음악을 위해서는 이 학교에 가야겠다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부모님이 선생님을 설득했다.
결국 마감 한 시간 전에야 원서를 받아냈다. 이렇게 들어간 학교에서 그는 마림바를 비롯한 각종 타악기를 접했다. 타악기와 음악에 대한 ‘소신’은 점점 ‘열정’으로 바뀌어갔다.
2004년 겨울. 중앙대 음대를 졸업한 그가 프랑스로 떠날 수 있었던 데는 이 ‘열정’의 힘이 컸다.
“편안한 마음으로 이런저런 음반을 듣고 있었는데 음악 하나가 마음을 건드렸어요. 타악기 연주자이자 작곡가인 에릭 사뮤의 ‘로테이션’라는 곡이었죠.” 파리국립음악원의 교수로 있던 사뮤에게 그는 “배우고 싶다”는 e-메일을 무작정 띄웠다. 며칠 후 거짓말처럼 “오디션 보러오라”는 답이 왔다.
“당시만 해도 프랑스는 타악기를 공부하러 많이 가지 않는 곳이었어요. 미국·독일에 비해 출신 연주자들이 많지 않았죠.” 김씨는 고등학교를 선택할 때와 마찬가지로 ‘음악을 위해 필요하다면 한다’는 신념으로 홀연히 유학을 떠났다.
#편견2=콩쿠르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걸으며 쌓은 ‘내공’이 세상에 첫 공개된 것은 지난해였다. 그는 벨기에에서 열린 ‘국제 마림바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콩쿠르에서 ‘독창성상’과 ‘관객상’을 휩쓸었다. 피아노·바이올린 등과 달리 한국이 변방에 머물렀던 타악기 분야에서 울린 승전보였다.
콩쿠르 수상이 더욱 화제가 된 이유는 그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2005년 서울시향의 단원이 된 김씨는 학위(벨기에 왕립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와 콩쿠르 준비를 동시에 하면서 ‘합주 연주자’와 ‘독주자’의 기계적인 경계를 무색하게 했다.
“1년 반 동안 콩쿠르 준비를 했어요. 오케스트라에 있으면 안주하기 쉽다는 생각에 도전거리로 삼은 거죠. 다른 사람 모르게 혼자서 연습했어요. 자칫 직장 이름에 먹칠을 할까봐 참 조마조마 했어요. 하하.”
#편견3=악기
김씨는 26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첫 국내 독주회를 연다. 이번 독주회에서 그는 ‘타악기=보조 악기’라는 편견에 도전한다. “타악기로만 이뤄진 연주회가 사실 상당히 많아요. 이블린 글레니 같은 마림바 연주자는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죠.”
이번 독주회에서는 그는 마림바는 물론 마라카스(작은 알갱이를 넣어 흔드는 악기), 톰톰(음정이 있는 작은 북) 등을 연주하며 알바레즈의 ‘테마즈칼’ 등 다섯 곡을 통해 타악기의 다양한 모습을 소개할 예정이다.
프로그램 노트는 직접 썼다. 동양의 신비한 이미지, 낭만적인 감정을 모두 담아내는 타악기의 풍부함이 그의 글 속에 들어있다. “타악기는 단순히 리듬이나 악센트를 주는 역할에 그치지 않습니다. 다이내믹한 비트로 폭발하는 열정은 음악의 진정한 심장박동이지요.”
서울시향이 연주를 쉴 때마다 외국 무대의 타악기 연주를 찾아다니는 부지런함까지, 이번 무대에서는 그녀의 열정이 한꺼번에 터질 듯 하다.
김호정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