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인터뷰는 2017년 10월 12일 중앙대학교 홍보대사 중앙사랑 인터뷰 '파워중앙인'에서 전재하였습니다.]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날, 연남동의 작은 카페에서 신간『아내들의 학교』로 화려하게 돌아온 박민정 작가(문예창작 04)를 만났습니다.
Part 1. 작가 박민정으로의 삶
Q. 안녕하세요! 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이 글을 읽고 계신 중앙인 여러분께 간단한 자기소개 먼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소설 쓰는 박민정입니다. 문예창작과 04학번이고 대학원 문화연구학과를 졸업했습니다. 2009년에 「생시몽 백작의 사생활」이라는 소설로 데뷔했고,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아내들의 학교』라는 두 권의 소설집을 출간했습니다.
Q. 작가님은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셨는데 중앙대학교에 재학하던 시절에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 어떠한 공부와 경험들이 도움이 되었나요?
- 문예창작과에는 순수문학 생산자가 되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진학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입학 당시부터 소설가가 되고자 생각하고 끝없이 습작했죠. 단편소설만 30편 넘게 썼던 것 같습니다. 다양한 작품을 읽었고요. 여전히 소설 쓰는 사람들에겐 모든 것이 소설 공부라고 생각하는데, 대학 시절의 여러 여러움(가난, 연애, 가족사……)이 전부 소설 쓰는 데 도움이 되었죠.
Q. 소설가가 되기까지의 어려움이나 에피소드가 있나요? 어려움이 있었다면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던 비결이 무엇인가요?
- 저는 비교적 이르게 데뷔한 편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1년 정도 회사를 다니다가 데뷔를 하게 되었죠. 그 1년 동안 작가가 되는 일은 까마득하게 멀어 보였고 직장 생활에 적응하며 미래의 안정적인 생활을 도모하는 것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해 혼란스러웠고 방황했던 것 같습니다. 몸은 사무실에 출근하지만 마음은 늘 ‘이래서는 안 되는데…’ 생각하는 나날들이었어요. 부자가 아닌 이상 창작, 예술을 하는 일이 자기에게 가장 잘 맞는 일이라고 확신을 얻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는요. 예술대를 졸업한 수많은 동문들에게 당면한 문제이리라고 생각합니다. 데뷔 전 시간이 짧았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영웅서사를 쓰기는 어렵고요. 다만 소설가가 된 이후에도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고민은 이어졌고, 더불어 ‘나는 어떤 작가로 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더해져 여전히 암중모색 중입니다. 다만 내게 어울리는 일이 이 일밖에 도무지 없다는 것을 이제 겨우 인정하게 된 정도랄까요.
Q. “지금 한국의 극우주의와 여성 혐오를 탐구하는 소설의 최전선에 박민정이 있다.”라는 평가를 받으시는데 본인은 이러한 평가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어떤 소설가든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 할 것입니다. 저 역시 소설가의 눈으로 본 세상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하는데요. 사회인으로서 예술가로서 관심이 그 쪽에 있다 보니 제 작품을 읽으시는 분들이 ‘극우주의 비판’과 ‘여성혐오 비판’을 함께 읽어내실 수 있겠죠. 평가는 언제나 읽는 분들의 몫이고, 저는 다른 누구도 할 수 없는 저만의 목소리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를 열심히 고민합니다. 최전선이라는 평가는 과분하죠.
Q. 독자들이 한 말 중에 가장 인상적인 피드백이나 서평은 무엇인가요?
- 『아내들의 학교』출간 이후에, 어떤 분이 본인의 2000년대 초반 고교시절을 반추하게 되어 매우 괴로웠다고 남긴 글이 있었는데 저로서는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수록된 작품 중 「버드아이즈 뷰」라는 작품은 강남 한복판 고교 문예부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 시절 그 공간을 경험하신 분이 읽는다면 어떨까, 계속 상상했거든요. 생각보다 이르게 그런 피드백을 보게 되어 놀랐습니다. 역시 쓰는 일은 혼자서 해도 읽는 일은 다 함께 하는 것이구나, 생각합니다.
Part 2. ‘소설’을 통해서 보는 세상
Q. 이번에 집필하신 작품 ‘아내들의 학교’를 소개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 소설집 『아내들의 학교』는 중단편소설 7편을 묶은 작품집이고요. 수록작 중 두 작품은 연작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표제작 「아내들의 학교」는 동성혼 합법화가 이루어진 근미래사회의 레즈비언 부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Q. 선배님께서는 'A코에게 보낸 유서', '당신의 나라에서' 등의 작품에서도 그렇고 데뷔 초기부터 여성 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오셨습니다. 우리가 성 불평등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젠더 문제는 진보의 가장 강력한 화두입니다. 문학으로서 젠더 문제에 가장 깊은 관심을 기울여온 까닭도 그러합니다. 제가 문학에 매료된 까닭은 그것이 언제나 약자의 언어였기 때문이에요. 가난한 자, 못 가진 자, 소외된 자……그런데 거기서 여성은 제외되어 있다는 걸 언젠가 알게 되었죠. 그렇다면 그것은 텅 빈 언어입니다. 일단 이 말을 하고 있는 나도 여성인데, 대부분의 문학 작품에서 수신자는 남성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독자로서의 나는 여성인 나를 지우고 남성의 눈과 귀를 가져야만 제대로 고전을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학생산자를 꿈꾸는 이런 나조차 실제의 나를 버려야만 가능한 소외를 경험했다면 당연히 젠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그것이 자신의 작가적 자의식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지 않았겠어요? 저에게는 필연적인 문제였고 문학을 넘어선 모든 분야에서 투철한 젠더의식이 필요합니다. 강한 자, 가진 자에게만 관심 두는 것이 아니라면요.
Q. ‘아내들의 학교’에 포함된 소설, 「A코에게 보낸 유서」에 나오는 표현 중에 “그러나 이제는 알고 있다. 그곳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나를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고, 그들은 나를 망칠 수 없다는 것도”와 같은 좋은 표현이나 멋진 명언들은 어떻게 쓸 수 있었나요?
- 소설은 어떤 인물의 이야기라서, 그 부분도 주인공의 절박한 상황 속에서 얻어진 목소리입니다. 좋은 표현과 멋진 말…그것을 자기가 처음부터 온전히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앞선 문학 작품들을 읽고 언어에 대한 감각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고요. 내가 만든 인물의 마음에 귀 기울이면서 썼던 것 같습니다.
Q. 작가 박민정이 생각하는 좋은 소설가의 자세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러한 좋은 소설가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 많이 공부하고, 많이 배우고요. 소설은 현대적인 장르이고 여러 텍스트를 고루 접하면서 테크닉을 익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군가 내 이야기에 일단 귀를 기울이게 하거나, 준비된 반전이나 이상한 결말을 위해 지루하게 이어지는 서브플롯을 참고 견디게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내 느낌이나 내 마음을 주장하는 것이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게 행복하고 유쾌한 이야기라는 뜻은 아닙니다. 들을 만한 이야기를 꾸며내기 위해 다른 소설을 끝없이 참고하고, 세상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Part 3. 소설 밖 작가의 이야기
Q. 글을 쓰는 일은 작품 활동뿐만 아니라 정말 다양한 상황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글을 쓰게 되는 현대사회에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 소설이나 여타 문학 작품을 창작하는 진로를 꿈꾸지 않는다 해도 글쓰기 능력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계시겠죠. 우리가 한국어나 한글을 쉽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좋은 한국어를 구사하고, 수준 높은 한글을 사용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모국어라고 해도 아주 기초적인 부분에서부터 진지한 자세로 접근하는 게 중요해요. 내 생각을 정확한 한 줄로 표현한다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어요. 다른 사람이 잘 쓴 문장을 많이 읽는 것입니다. 짧은 쪽글이나 레포트를 낼 때도 한글 정서법을 꼼꼼하게 유의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Q. 소설가의 삶을 꿈꾸는 많은 후배가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소설가로서의 삶은 경제적인 어려움과 작품에 대한 부담감 등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기 때문에 쉽게 진로를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적인 작가의 삶은 어떤가요?
- 예상하셨겠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이 상당합니다. 소설가로 데뷔하고 나서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해소되는 건 아니에요. 대부분의 작가들이 투잡, 쓰리잡을 합니다. 예술가들에 대한 기본적인 보장은 세계 공동 복지로 명문화되어 있는데 한국에서는 어려운 처지이지요. 도서, 출판 상황도 어렵고….그러나 그래도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이 일을 합니다. 제가 데뷔했을 때 한 선생님께서 ‘꾹 참고 십 년만 버텨라, 십 년 후엔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다’라고 하셨는데 8년째가 되어가는 지금 그 말이 조금 실감되네요. 적응되다 보니 현실적인 어려움도 그다지 크지는 않아요. 무슨 직업을 갖든, 현대사회에서는 불안하리라고 생각해요. 소설가도 이 풍진 한국사회의 직업 중 하나일 뿐이고요.
Q. 그렇다면 작가님처럼 글을 쓰고 싶어하는 중앙대학교 후배들에게 조언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작가가 된다는 건 너무 멋진 일이겠죠. 경제적인 어려움이 크다고 해도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정말 큽니다. 물론 개인의 이 행복이 ‘열정페이’ 의 종류로 후려쳐져서는 안되겠지만…. 데뷔를 하고 작가가 된다는 건 결코 목표의 완결이 아니라 겨우 시작일 뿐이고, 더욱이 단 한 사람의 작가가 된다는 건 끝없는 노력이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힘들지만 같이 해봅시다.
Q. 마지막으로 중앙대학교에 재학 중인 후배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중앙대, 좋은 학교입니다. 현직에 계시는 선생님들이 교육 현장에서 학생들과 함께 뛰고 계신다는 사실이 증명하는 바는 매우 엄청나죠. 학부와 대학원을 중앙대에서 보내면서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풍부해서 행복했습니다. 선생님들을 졸라서 배움을 더 많이 뜯어내세요
중앙대학교 NEWS TODAY에서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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