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1만6000㎡의 밭에 고추·콩 등을 재배하며 수묵화를 그리는 차일환(50)씨가 주인공이다. 그는 요즘 낮에는 고추밭의 풀을 뽑고 밤에는 전시 작품 마무리로 눈코 뜰 새 없다. 오는 10~17일 서울 창덕궁 앞 갤러리 눈(Eye)에서, 18~25일 영양 문화의 집에서 전시회를 열기 때문이다.
전시 작품은 22점. 모두 영양의 사계(四季), 이웃과 자신, 동물과 주변 풍경을 보고 느낀 대로 그렸다. 그는 “고추밭에서 일하다 영감이 떠오르면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을 훔칠 새도 없이 집으로 달려가 붓과 먹을 들곤 했다”고 말했다. 이웃은 그의 작품을 “농민의 삶과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민중미술이다.
전공이 서양화이지만 수묵화로 바꾼 건 농촌에 적응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서양화는 바쁜 일상에 쫓기는 농촌에서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물감을 짜서 색을 맞추는 등 유화를 그릴 만큼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80학번으로 386세대인 그는 중앙대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1987년 이곳에서 농촌 봉사를 한 것이 인연이 돼 91년 이곳에 정착했다.
그는 “신념이었던 현장 중심 미술을 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재학 시절 민중미술을 한다고 큰 소리쳐 놓고 민중이 있는 농촌을 외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80년대 후반에 미술운동 집단인 ‘가는 패’와 ‘민족민중미술운동연합’에서 활동하다 두 차례 구속된 전력이 있다. 92년 가을에는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서화전을 전국을 돌며 열기도 했다.
차씨는 그러나 지금의 자신에 대해서는 “이념과 신념에 맞게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스스로 민중(농민)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암울했던 80년대는 미술이 정치·이념에 치우칠 수밖에 없었다”며 “이제 미술은 많은 사람이 이해하고 정서상 감동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