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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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록달록한 배경색에 나의 개성을 담은 증명사진으로 화제가 된 증명사진관 ‘시현하다’. 나에 대한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친숙한 공간인 사진관을 운영하고 싶다는 꿈을 가진 ‘시현하다’의 포토그래퍼 김시현 학우를 만났습니다.
Q. ‘시현하다’에서 하고 있는 1000명 증명사진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 저는 증명사진을 전문으로 찍고 싶었고, 증명사진으로 어떤 작업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그리고 작은 만원짜리 사진 속에도 이 시대의 모습이 녹아있고, ‘이 사진은 그렇게 작은 사진이 아니다’라는 것을 작업을 통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한 장 한 장의 사진작품보다는 1000장이 모였을 때 시대의 트렌드, 헤어스타일 등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해 1000명의 증명사진을 찍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어요.
[‘시현하다’의 증명사진]
사진제공 – 김시현학우
Q. 지금까지 몇 명 정도 찍었나요?
- 600명정도 찍었어요. 학교 생활을 병행하면서 2년정도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병행이 힘들어서 중도휴학하고 여기에 매진하게 되었어요. 올해 안으로 끝낼 계획입니다.
Q. 다양한 증명사진 배경색은 어떻게 시도하게 되었나요?
- 증명사진의 배경색에 흔히 쓰이던 파란색 그라데이션 등을 보며, 증명사진 배경색이 누군가의 개성을 표현해주는 하나의 수단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색은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으니까 여러가지 색을 사용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2015년에 증명사진 규정이 바뀌었어요. ‘무배경 또는 흰 배경’이라는 제한이 생겨서 다양한 배경색을 쓸 수 없게 된 건 줄 알고 좌절했죠. 그런데 흰 배경은 알겠는데 무배경은 무슨 뜻일까 생각해보니 그라데이션이 아닌 단색 배경은 가능하다는 뜻 같았어요. 그래서 시도해 보았는데, 다양한 색 배경에서 찍은 사진으로 주민등록증 발급을 거절당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이렇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사소한 생각이 큰 성공을 거뒀네요.
- 저는 한 지역에서 유명한, 가장 잘 찍는 사진관을 차리는 걸 꿈꿨고, 그러면 먹고살 정도는 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프로젝트가 이 시대의 트렌드와 요구에 잘 맞아떨어진 것 같아요..
Q. 대학 와서 배운 것 중 실제로 증명사진을 찍는 데 도움이 된 것이 있나요?
- 만약 대학에 가지 않고 사진관에서 일을 배웠다면, 지금처럼 증명사진으로 작업을 할 생각을 못 했을 것 같아요.대학에 진학해서 양질의 사진도 보고, 잘 찍는 친구들도 만나고, 많은 걸 접하면서 작업이라는 개념으로서 사진을 어떻게 해석할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어요.
[‘시현하다’ 작업실 풍경]
Q. 인물사진을 찍는 이유는?
- 저는 사진관이 하고 싶어서 인물사진을 열심히 찍었어요. 모델을 찍을 땐 전문가의 메이크업, 좋은 장비, 예쁜 로케이션이 있으니 사진이 다 잘 나오지만, 일반인을 찍는 건 정말 어려워요. 처음 보는 사람을 찍고 30분내로 그 사람의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 사진을 찍을 때 웃는 걸 어려워하는 분들도 있지 않나요?
- 이가 못생겼다는 등의 다양한 이유로 못 웃겠다는 분들이 많은데, 그 사람이 사진작가를 믿게 되는 순간 웃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진짜 저를 믿고 가자고, 치열이든 뭐든 다 보정해줄 테니 믿고 웃어보자고 말해요. 그렇게 찍은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업로드 되면서 사람들이 저를 신뢰하고 예약하게 된 것 같습니다.
Q. 사진의 배경색은 어떻게 정하나요?
- 증명사진이, 증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그런데 사진작가가 꾸며주고 찍은 사진은 작가의 컨셉사진이지, 사진을 찍으러 온 사람의 사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손님들이 직접 배경색을 골라 오게 하고, 그들의 평소 모습대로 찍는 방식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람마다 자신만의 색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 색이 여러 가지인 사람도 있고 하나인 있는 사람도 있어요. 초반에는 최대한 손님이 원하는 대로 색을 정했지만, 이제는 손님의 분위기와 원하는 색의 이미지가 많이 다르다면 제 생각을 말해드려요. 많은 분을 만나고 이미지에 맞춰 촬영하다 보니, 보는 눈이 조금은 생긴 것 같습니다. 직접 고른 색에 제 의견을 더해서 만든 결과물을 손님이 더 좋아하기도 해요.
Q. 요즘은 어떤 걸 하고 지내나요?
- 자고, 푹 쉬고, 운동하고, 컬러리스트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고 있어요. 컬러리스트 자격증은 증명사진의 배경 색을 제시할 때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공부 중이에요.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에 따라 색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지고, 같은 색이어도 그 의미를 지역마다 다르게 인식한다고 해요. 노란색 같은 경우 서양에서는 어리고 미숙한 색인데, 요즘 우리에게는 슬픈 의미로 다가오잖아요. 그 색에 대해 제가 어떻게 말하는지에 따라서도 느낌이 달라지죠. 예를 들면, 무채색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무채색은 모든 색을 품고 있지만, 아무 색도 아니기도 하다. 누구랑도 잘 어울리지만 자기 존재가 있는 색이다.’ 라고 말씀드리면 오신 분들이 ‘아 그런 의미도 있구나’ 하세요.
세상에 같은 파랑은 없다고 하잖아요. 같은 색의 립스틱도 이름을 다르게 붙이면 더 잘팔리기도 해요. 색에는 고르는 사람의 심리가 반영되고, 색을 고르면서 자신을 고찰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빨간색은 열정, 강렬함, 분홍색은 사랑스럽고, 같은 빨간색이어도 버건디면 더 차갑고 섹시한데 그런 걸 고르는 심리를 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Q. 사진에는 찍을 당시의 상황이 담기는 것 같아요.
- 요즘 어떤 게 진짜 내 얼굴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어요. 우리는 사람 얼굴을 볼 때 구체적으로 ‘여드름이 있네’ 이런 것보다 눈매, 코와 같은 전체적인 모습을 보잖아요. 얼굴은 빛의 방향, 조명에 따라 달라지기도 해서 보정을 거치지 않은 원본이 진짜 내 얼굴인가 싶어요. 남자친구 얼굴이 콩깍지가 씌어서 더 잘 생겨 보이기도 하는데, 이것도 그 사람의 얼굴이죠. 또, 자기 얼굴은 항상 거울로 보니까 다른 사람들이 보는 얼굴과 반대로 알고 있어요. 그렇다면 내 얼굴은 도대체 뭘지, 나를 증명하는 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게 돼요. 손님들이 사진 원본을 보고 이게 제 얼굴이 맞나면서 놀라는데, 저는 아니라고, 이렇게 생기지 않았다고 말해요. 각자 얼굴에 맞는 빛이 있는데, 스튜디오 안에서의 빛도 제가 정해준 거니까 자연광 아래에서 보면 또 다른 사람인거죠.
Q. 사진 속의 이미지보다 실제 그 사람의 이미지가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드나요?
- 실물이 훨씬 낫죠. 누군가를 볼 때는 아우라, 분위기, 말투, 웃을 때, 무표정일 때의 인상이 다 느껴지지만, 사진에서는 딱 한가지 모습만 느껴지잖아요. 이게 사진의 재미이기도 해요. 그래서 보정하면서 이런 그 사람의 느낌을 담으려고 해요.
Q. ‘최소한에서 최대한으로 시현하다’는 문구는 어떻게 정했나요?
-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이라는 만화가 있는데, 여주인공의 좌우명이 ‘최소한에서 최대한으로’였어요. 유복하지 않은 집안에 많은 형제 사이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며 살아가는 캐릭터였거든요. 이걸 보고 감명을 받아서 좌우명으로 삼았죠. 또, 저도 멋진 예명을 갖고 싶어서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마음에 드는 게 없었어요. 그러다가 예전부터 친구들이 ‘너 참 네 이름같이 생겼다’라고 말하던 게 생각났어요. 시현이라는 이름의 뜻을 찾아봤는데, ‘시현하다’라는 동사의 뜻이 ‘무언가를 보여주다’여서 내 좌우명과 결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현하다’라는 이름, ‘최소한에서 최대한으로 시현하다’라는 문구를 지었습니다.
Q. 프로젝트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 과 동기들이 제일 뿌듯해 하고 저를 많이 도와줘요. 수업에서조차 사진으로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제가 사진으로 돈을 벌고 있으니 자극을 받는다고 했어요. 어머니는 처음 프로젝트 시작할 때는 모르셨는데, 사진관 차리기 전에 배우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니까 크게 반대하시지 않았습니다.
Q. 점점 일이 바빠지고, 카피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 처음에는 카피에 대해서 많이 불안했어요. 증명사진이 틈새시장이라고 생각했는데, 거대자본이 제 작업을 따라 할 수도 있고,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도 증명사진을 찍을 때 소비자와 소통하는 문화가 많이 퍼진 것 같아 좋아요. 저도 더 발전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고, 누군가를 기록하는 사진을 남겨주는, 상대방을 진심으로 대하는 사진가가 되고 싶습니다.
Q.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 저는 가족사진을 잘 찍는 사람이 정말 실력있는 사진작가라고 생각해요. 가족사진을 찍을 때는 그들이 가장 예쁜 표정인 순간을 잡고, 모두의 연령대를 아우르는 느낌을 담아야 해요. 얼마 전에 제 가족을 작업실에 데려와서 7살 동생의 사진을 찍고 보정했는데, 그 사진에서 동생이 중학생처럼 보인다는 말을 들었어요. 아이한테 어울리는 보정 기준은 따로 있는데, 제가 동생의 젖살을 건드려서 그런 느낌의 사진이 된 거예요. 부모님의 경우도 제가 부모님의 나이까지 살아보지 않았으니 그 나이에 필요한 주름 같은 걸 모르고 지울 것 같아서 초상화를 배우게 되었어요. 최근에는 사람들의 사연을 받아서 부모님 사진을 찍어드리겠다고 했는데, 사연이 정말 슬펐어요. 부모님 사진이 20년 전에 멈춘 것 같다는 분도 있었죠. 사진이라는 매체는 기록성이 큰데, 웹하드에 저장하고 끝나는 사진이 아닌 오래도록 간직할만한 사진을 찍고 싶어요.
Q. 앞으로 찍고 싶은 가족사진은 다 같이 모여서 찍는 일반적인 형태인가요, 다른 모습인가요?
- 고민해보려고요. 뻔하게 찍고 싶지는 않아요. 가족사진도 모아보면 그 가족의 형태에 관한 역사 공부가 돼요. 예전에는 아버지가 항상 가운데 의자에 근엄하게 앉아있었다면, 요즘은 아이들이 가운데 앉고 부모님은 뒤에서 웃고 있는 등의 형태로 변했어요. 이런 변화가 사진에 기록된다는 게 신기하고, 우선은 이것저것 생각해보려고요.
Q. 증명사진을 찍은 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요?
- 자기 얼굴에 당당하신 분들이 정말 멋져요. 예전에 집에 불이 나서 눈 아래에 흉터가 생긴 분이 오셨어요. 그래서 흉터를 지워드릴지 물어보니 ‘아니요, 제 얼굴이에요. 영광의 상처예요!’라고 하셨던 게 인상깊어요. 저도 제 얼굴에 콤플렉스가 많았지만, 이 작업을 하면서 저도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기존의 사진관들은 손님이 바라는 획일화된 모습으로 사진을 보정해주었지만, 저는 눈도 예쁘고, 주근깨도 매력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어요.
Q. 증명사진의 개성을 위해 배경색 외에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 평소에 찍는 방향에 맞는 조명, 눈썹이 보이게 하되 예쁘게 만져주는 머리, 가장 자연스러운 표정입니다.
Q. 보정은 어디에 중점을 두나요?
- 얼굴의 균형에 가장 신경 써요. 저는 사진에 보정을 많이 하는 편인데, 포토샵을 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보정합니다. 얼굴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보정하는 것과 무조건 눈을 키우고 턱을 깎는 것은 달라요. 턱을 깎으면서 광대를 만지지 않으면 얼굴이 이상해지죠.
Q. 증명사진을 찍으러 갈 때, 어떻게 준비하면 좋을까요?
- 본인 스타일대로 메이크업 하고, 옷을 입고 와도 되는데, 머리는 예쁘게 세팅 받고 올수록 좋아요. 뿌리염색을 한다든가, 투블럭이면 머리 안쪽을 정리한다든가 말이죠.
Q. 사진 찍는 걸 직업으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고등학생 때부터 어디를 가든지 사진을 찍고 보정을 하는 건 제 역할이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건 사진 외에 그림 그리기와 여행가기도 있지만, 사진을 택한 건 내가 평생 해도 질리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고등학교에서 길 찾기 수업(진로 탐색 수업)을 들었는데, 선생님이 남들이 시키지 않아도 내가 하던 일을 쭉 나열해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사람 만나는 것, 사진 보정, 여행, 인테리어 등을 썼는데 모든 게 사진관으로 귀결되었어요. 이렇게 진로를 결정했습니다.
Q. 사진관련 전공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해주세요.
- 사진은 종합예술입니다. 무용가를 찍으려면 무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음식 사진을 찍으려면 요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해요. 이처럼 다양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찍는 사진과 단순히 기술이 좋은 사람이 찍는 사진은 다르다고 생각헤요. 이런 쪽으로도 많이 공부하길 바랍니다.
Q. 나에게 사진이란?
- 순간을 기록하는 매체입니다. 사진의 기록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누군가의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좋은 매체라고 생각해요.
Q. 나만의 사진관은 어떤 방향으로 운영하고 싶나요?
- 스튜디오라는 이름은 어렵고 멀게 느껴지는데, 제 사진관은 누구에게나 친숙한 공간이면 좋겠어요. 사진을 찍고 그냥 가는 곳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기록을 만드는 재밌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