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님 그리며 삶 마감…비련의 기생役
전공은 미술…연기 시작한지 2년 채 안 돼
‘밀양’ 보며 연습…“이제 한고비 넘긴 기분”
입력 : 2007.07.18 00:13
- 경기도립극단에 무서운 신인이 나타났다. 입단 2개월 여 만에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상설극 ‘눈물꽃기생’의 주연으로 발탁된 우정원(24)씨. 지난 14일 객석을 꽉 채운 560여 명의 관객이 무대 위를 주시하는 가운데 열연했던 우씨는 16일 “한 고비 넘겼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며 “앞으로 더 심도 있는 연기 주문이 들어올 것 같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167㎝의 훤칠한 키에 53㎏의 늘씬한 체격, 갸름한 얼굴에 웃을 때면 눈꼬리가 길게 올라가는 눈매가 전형적인 한국형 미인이다. 그가 이번에 맡은 역은 18세기 말, 청나라로 향하던 연행사(燕行使) 일행 중 한 명과 맺은 하룻밤 슬픈 인연의 결실로 생긴 아이를 결국 아이의 친부(親父)에게로 돌려보내고 평생 아이와 그 아버지를 그리워하다가 삶을 마감하는 비련의 해주 기생 ‘진원’이다. “커튼콜이 끝나고 나니 몸이 떨리고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어요. 긴장을 많이 했었죠.”
- ▲ 경기도립극단의‘눈물꽃기생’서 주연으로 열연한 우정원씨가 극단 연습실에서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다. 우씨는“현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곽아람 기자
지난 3월 오디션을 통해 경기도립극단에 입단한 그가 ‘눈물꽃기생’의 주연으로 뽑혔다는 통보를 받은 것은 5월 중순, 그는 “당황스럽고 많이 부담스러웠다”고 했다. 당시 그는 안데르센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 ‘미운 오리새끼’에서 야생오리 무리 중 하나를 맡는 등 차근차근 연기 공부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번 연극을 총지휘했던 경기도립극단 전무송 예술감독은 “야생오리 코러스 중에서도 유독 정원이가 눈에 띄더라”며 “연기 경력과 상관없이 작품이 요구하는 모습과 정서를 표현해낼 수 있는 능력과 연기력을 갖춘 배우라고 생각해 낙점했다”고 밝혔다.
중앙대에서 미술을 전공한 그가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1월이다. 한 뮤지컬 컴퍼니에서 기획한 가족뮤지컬 ‘피노키오’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막연히 연극을 동경해왔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 못했죠. 대학 재학중이던 지난 2005년 여름, 영화과 친구들의 졸업작품에서 주인공 친구 역을 맡게 됐어요. 이후 소개로 영화과 사람들과 작업을 몇 번 했었죠. 그러다 보니 이 일에 도전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피노키오’ 역을 하며 각 지방을 떠돌며 노래하고 춤 추는 일이 그저 즐겁기만 했다는 그는 그 해 4월 대학로의 극단 ‘사조’에 입단해 연기경력을 쌓았다. 같은 해 10월 인천에 있는 ‘십년후’로 옮겼다. 그 극단의 대표작 ‘사슴아 사슴아’에서 그는 주인공인 고려 제 7대 왕 목종(穆宗)의 비(妃) 역을 맡았다. 그해 전국 연극제에서 이 작품이 대상을 받게 되면서 배우로서의 우정원도 한 걸음 성큼 성장했다. “’십년후’의 선배가 도립극단에 계셨는데 그 분이 공부하는 셈 치고 여기 오디션을 한 번 봐 보라고 권유하셨어요.”
그는 ‘눈물꽃기생’의 주연을 맡게 되면서 두 시간 동안의 공연을 위해 두 달간 연습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5시까지 이어지는 전체 연습이 끝나고 나면 밤 9시가 넘도록 개인 연습을 했다. 맡은 역이 기생이니만큼 춤, 장구, 거문고, 소리 등 배워야 할 게 많았다. “노래를 배우느라 많이 힘들었어요. 전문적으로 노래를 배운 적이 없는데 솔로 곡이 네 곡이나 됐었거든요. 아이를 빼앗긴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기 위해 영화 ‘밀양’을 두 번이나 봤지요. 하지원씨가 주연한 TV 드라마 ‘황진이’도 유심히 보면서 연습했어요.”
우씨는 “입단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너무 많은 일들이 빨리 다가왔다”고 했다. “때로는 심적으로 감당이 되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렇지만 잘 적응하고 소화해내서 극단 내에서의 막내라는 위치와 본분을 지켜나가려 합니다. 제 자리에서 맡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충실히 일해나가는 것이 제게 주어진 과제이자 목표라고 생각해요.”
배우 예수정의 자연스러운 연기력을 닮고 싶고, 춤 추는 걸 좋아한다는 이 젊은 여배우는 오는 9월 중순 ‘눈물꽃기생’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의 무대에 서기 위해 러시아로 떠난다. 떨림과 설렘이 교차하는 목소리로, 그는 말했다. “첫 해외여행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