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인터뷰는 2017년 5월 중대신문 인터뷰 '중대신문이 만난 사람'에서 전재하였습니다.]
설도원 홈플러스 前 부사장/한국체인스토어협회 現 상근부회장(경영학과 76학번)
마냥 친구 사귀는 걸 좋아하던 활발한 청년이 있었다. 특유의 붙임성과 활동성을 살려 경영학과에 입학했지만 진짜 경영인이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청년은 훗날 갓 태어난 ‘신상 기업’을 대한민국 대표 대형마트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수년간 현장에서 쌓은 실무경험으로 반평생 기업의 발전을 위해 살았던 그가 이젠 한국 경제 발전을 선도하고자 한다.
4차 산업혁명의 중심
유통산업의 미래를 그린다
“홈플러스,
한국 대형마트의
기준을 제시해”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누가 시키지 않아도 물건을 사고팔며 시장을 형성했다. 각종 교통수단이 만들어지면서부터는 국가 간의 무역을 하게 됐다. 자연스럽게 ‘유통’을 해온 것이다. 이렇듯 유통업은 개인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산업이다.
-서울경제신문의 자문 역할인 ‘서경 펠로(Fellow)’에 합류했다고.
“네. 지난 대선 때부터 한국 유통산업의 발전을 위한 아젠다를 제시하고자 참여했어요. 5월에는 각 후보의 유통 관련 공약을 점검했었고 이젠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으니 새 정책을 검토하고 더 좋은 유통산업 환경을 위해 의견을 개진할 계획입니다.”
-유통업계에 몸담은 지 얼마나 됐나.
“1998년에 삼성물산 유통부서에 근무하면서 유통산업에 첫발을 내디뎠죠. 그런데 유통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서에서도 경험을 쌓았어요. 80년도에는 해외수출업무를 주로 맡아서 봉제, 의류 등을 유럽에 수출하는 일을 했죠. 국제 교육부서에서 잠깐 일하기도 했고요. 마케팅 부서에서도 오랫동안 일했답니다.”
-국제 교육부서는 생소하다.
“한창 삼성에서 ‘신경영’을 강조하던 시절이었는데, 당시 인력을 매우 중요시했어요. 이건희 회장이 ‘처자식 빼고 다 바꿔라’라는 말을 할 정도로 국제화 교육, 이문화 교육 등 인재교육에 힘을 뒀었죠. 그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삼성의 ‘스마트한 인재’ 이미지가 구축된 거라 생각해요.”
-80년대 삼성그룹은 어떤 곳이었나.
“그 시절 삼성은 위계질서가 뚜렷했어요. 조직의 결속력이 매우 강했지만 굉장히 정적이었죠. 모든 삼성의 직원들이 같은 방향과 비전을 가지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거 같아요. 물론 옛날에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사원들로 모여 있었죠.”
“80년대 샐러리맨들이 모두 그렇듯 저와 동료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오전 8시에 출근하면 오후 9시에 퇴근했죠. 주말 없이 일하는 것은 기본이고, 주5일 근무라는 개념도 없었던 것 같아요. 특히나 제가 근무하던 해외수출업무부서에서는 대리 직급만 돼도 발주부터 검사, 수출까지 모든 걸 다 담당해야 했죠. 그래도 구성원들이 모두 ‘으샤! 으샤!’하면서 일했기 때문에 분위기는 참 좋았어요. 앞만 보고 달리다가 퇴근 후 생맥주 한잔하는 게 ‘삼성맨’들의 낭만이었죠.”
-1999년부터는 삼성테스코에서 근무했다.
“기존에 두 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던 삼성물산하고 영국의 테스코(TESCO)가 합작사를 만들었어요. 그래서 본사에 있던 사원들 약 200명 이상이 전근하게 됐죠. 삼성 계열사는 아니지만 삼성이 투자한 회사이기에 삼성에서 근무하던 사원들이 단체로 이동하게 됐거든요. 그런데 대기업을 떠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냥 삼성에 남겠다고 한 사람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새로운 유통과 성장 사업을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었죠.”
-어쩌면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었다.
“그러게요. 삼성테스코가 지속적으로 성장해서 다행이었죠.(웃음) 지금은 홈플러스가 대표 대형마트로서 입지가 잡혀있지만 삼성테스코가 처음 출범했을 때는 동종업계에서 후발주자에 속했기 때문에 차별화가 필요했어요. 그 방법 중 하나가 점포의 새로운 컨셉을 제시하는 거였어요.”
-어떤 컨셉이었나.
“까르푸, 월마트 등의 기존의 대형마트들은 대부분 큰 창고형식이었어요. 그래서 물건을 구매한 뒤에 즐길 수 있는 다른 편의시설이 없는 거죠. 그런데 저희가 조사해 보니까 고객들은 물건 구매 그 이상을 원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푸드코트, 병원, 약국 등 각종 편의시설을 입점시켰죠. 파격적인 변화 덕분에 많은 고객을 유치할 수 있었어요. 이후로 경쟁사들도 따라서 편의시설을 입점시키고 깨끗하게 천장도 만들고 하더라고요.(웃음)”
-홈플러스의 시작을 함께 했기에 성장기를 모두 파악하고 있는 건가.
“그렇기도 하고, 제가 부사장을 역임하던 당시 홈플러스의 역사책을 만들었거든요.”
-역사책이라니.
“회사가 설립되고부터 성장기를 거쳐 고속 성장을 이룰 때까지 이 모든 과정을 다 봐왔잖아요. 그리고 이 회사를 성공으로 이끈 경영자 중에 한 사람으로서 자부심과 보람도 느꼈고요. 그래서 이를 역사에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한 홈플러스의 성장 과정을 담은 책이라면 경영학 교재로 사용될 수도 있겠다는 발상에 기업의 운영·성장 전략과 경영학의 이론을 접목해 출판했죠. 꼬박 3년을 투자해 만드느라 정말 힘들었답니다.”
설도원 회장은 성장기의 리더십과 성숙 후의 리더십에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전쟁할 때와 평화 시기 지도자의 리더십이 다르듯이 기업의 리더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홈플러스가 고속 성장기를 달리고 있던 때에 저는 전무, 이사를 역임하고 있었죠. 한참 회사가 성장하고 있는 시기에 임원이라고 해서 실무에 참여하지 않고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사원들과 함께 몸으로, 발로 뛰어다녔던 거 같아요. 어떻게 하면 직원들과 함께 홈플러스를 더 좋은 기업으로 일궈낼 수 있을까가 가장 큰 고민이자 과제였어요.”
-경영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우선 진정성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야 합니다. 기업은 진정으로 커뮤니케이션하려는 태도를 보여야 하고 그 후에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해요.”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라면?
“사회의 트렌트를 읽어내는 거죠. 기업은 다수의 소비자가 원하는 방향이 뭔지 읽어내야 해요.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적당한 타이밍에 메시지를 던지는 것, 이게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이죠.”
-성공사례를 듣고 싶다.
“2010년대 홈플러스는 친환경 사업에 주력했어요.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도 이미지이지만 기업이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기획한 프로젝트였죠. 사실 유통은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사업일 수밖에 없잖아요. 물건을 소비하면 각종 포장지, 음식물 쓰레기가 발생하기 마련이고 이산화탄소도 많이 발생하죠. 그래서 유통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지고 오히려 친환경 사업을 하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예시로 마트에 올 때 자전거를 타면 마일리지를 부여한다든지, 에너지 절감을 위해 냉동·냉장 설비에 슬라이딩도어를 달기도 했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인 친환경 점포를 건축하기도 했어요. 처음엔 대다수 고객이 불편해하셨죠. 실제로 매출도 떨어졌어요. 그러다 차츰 친환경 사업의 중요성이 부각됐고 자연스레 매출도 다시 원상복귀 됐죠.”
재작년 홈플러스 부사장직을 내려놓은 그는 한국 유통업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특정 기업의 사장은 그 기업만을 위해 일하잖아요. 그런데 한국체인스토어협회에서는 유통산업 전체를 위해 일할 수 있어 의미가 있는 거 같아요. 이전에는 경쟁사였던 기업들과 함께 협력한다는 점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이 일을 맡게 된 것 자체가 정말 큰 행운입니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한국 유통산업을 근대화한다는 취지에서 1975년도에 설립된 비영리 단체랍니다. 대형마트, 슈퍼마켓 등의 유통기업과 유통 협력업체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고요. 가장 주력하고 있는 활동은 유통산업과 관련된 정책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또 유통 전문 교육, 유통 전문 월간지 발행 등 유통산업 발전을 위해 모든 일을 하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 곧 4차 산업의 시대가 도래하면 유통업이 더 중요해지잖아요.(웃음)”
-4차 산업의 핵심에 유통산업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뭔가.
“유통산업이 우리나라 국가 경제 GDP 7.3%, 고용 인구의 15%를 차지해요. 통계 비중으로만 봐도 유통이 우리나라에서 아주 중요한 산업인 것을 알 수 있죠. 이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유통 산업은 우리의 생활과 아주 밀접한 산업이에요. 생활 자체가 유통업이죠. 좋은 상품을 싸게, 편리하게 판매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대표적 산업이잖아요. 더불어 농업인들과의 협력을 통해 내수 경제를 활성화하고 국가의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기에 4차 혁명의 핵심 산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통경영인 대상’, ‘유통전문경영인 공로상’ 등 그의 경영능력은 화려한 수상내역이 방증한다. “제가 대단히 실적이나 서비스가 우수하다기보단 경영을 하면서 시장과 고객의 관점에서 비즈니스를 하려고 했다는 점을 높이 사주신 거 같아요. 다양한점포 컨셉을 제시하거나 새로운 기업의 이미지를 형성했던 게 좋은 평가를 받은 거죠. 올해 중앙대에서도 ‘자랑스런 중경인 상’을 주셨어요. 너무 감사하죠.”
-대학 시절 경영학을 전공하면서 더 경영에 관심을 두게 됐나.
“딱히 꼭 그렇건 아니지만 워낙에 제 성격이 외향적, 사회적이라 사람을 사귀는 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경영에 더 관심을 두게 된 거 같아요. 회계보단 마케팅·유통 부문에 더 특화된 이유도 그 까닭이겠죠.”
-중앙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작년부터 중앙대 지식경영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하게 됐어요. 1학기에는 판매유통관리, 2학기에는 촉진관리를 강의해요.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건 정말 뿌듯하고 보람찬 일이죠. 그래서 더 꼼꼼히 준비하고 제가 현장에서 경험한 것들을 모두 알려주고 싶어요. 더군다나 지식경영학부 학생들은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잖아요. 힘들어도 열심히 강의를 듣는 모습에 더 책임감을 느껴요.”
-졸업 후 선생으로서 강단에 선다는 건 감회가 남다르겠다.
“그렇죠. 매주 중앙대에 강의하러 올 때마다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면 대학 시절 추억이 많이 생각나요. 다시 돌아간다면 정말 멋진 대학 생활을 보낼 텐데….(웃음)”
-아쉬운가.
“다시 돌아가면 큰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요. 전공 공부뿐만 아니라 사회란 무엇인지, 세상은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 이런 철학적 고민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단순히 어디에 취업해야겠다가 아니라 큰 꿈을 꾸고 싶고요. 아, 그리고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꼭 할 거예요.”
-영어가 걸림돌이었나.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유창하게할 만큼 능숙하진 못하죠. 홈플러스 부사장이 되기 위해선 18개월 동안 ‘ALP(Advance Leadership Program)’라는 교육과정을 수료해야 해요. 영국, 호주, 한국 등 각 나라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인데 저를 제외하곤 모든 참석자가 영어권 국가의 경영자들이었어요. 교육, 회의, 심지어 게임까지 모두 영어로 진행하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임직원이 되는 길은 멀고 험하다.
“그렇게 ALP를 수료하고 나면 당시 테스코 대표 CEO와 영어로 1:1 면접을 하게 돼요. 첫 번째 면접 장소는 카페였는데 한국사회에 대해서, 경영에 대해서 등 거시적인 질문을 하더라고요. 그 후에는 점포를 돌며 이 매장은 어떤 점이 특화돼 있는지, 부족한지 등을 묻고요. 인터뷰 내내 긴장되는 시간의 연속이었죠. 면접이 끝난 후 서로 악수를 하는데 그분이 제게 ‘Give good news to your family’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제 인생에 잊히지 않는 장면 중 하나랍니다.”
-오랜만의 면접이었겠다.
“면접자의 입장으로선 오랜만이었죠. 상무, 전무 시절 신입사원을 뽑는 면접엔 많이 참여했었고 1:1 면접도 진행했었으니까요.”
-면접관으로선 어떤 지원자를 선호했나.
“면접시험을 앞둔 지원자라면 스펙, 학벌 이런 사안들에 대한 평가는 다 끝난 거예요. 면접장에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주안점으로 두죠. 그런데 그런 부분이 미흡한 지원자가 많아요. 단순히 꿈에 대해 질문해도 대부분 답을 못하더라고요. 거창한 꿈이나 계획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분명히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면 면접에 도움이 될 겁니다.”
-앞으로의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이때까지 경영자까지 되어 한 기업을 위해 노력했어요. 좋은 동료들을 만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경제발전을 위해 일할 수 있음에 또 감사하고요. 앞으로 제 인생의 3라운드가 펼쳐진다면 제가 가진 모든 역량과 지식을 활용해서 유통 회사를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무료로 강의와 정보를 제공하고 싶어요. 척박한 취업 시장에서 고생하는 우리 후배들을 위해 도움을 주고 싶네요.”
당신에게 중앙대란?
“학교를 졸업하고 한동안 학교와 관계를 맺을 시간도 기회도 없었어요. 그 대신 시간이 흘러 중앙대 후배들을 가르치면서 다시 중앙대와 깊은 인연을 맺게 돼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총동창회에서도 꾸준히 활동하며 학교의 발전을 함께 도모하고 싶어요. 우리 자랑스러운 중앙인 후배들의 선배로서 말이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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