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1996 농구대잔치에서 우승한 뒤 기쁨을 나누고 있는 기아농구단(위). 그때 허재-강동희-김영만 트리오는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13일 김영만의 은퇴식에 앞서 포즈를 취한 허재 김영만 강동희(왼쪽부터). 동아일보 자료 사진·전주=이승건 기자 |
선수 생활을 마감하는 KCC 김영만(35)을 위해 KCC 허재(42) 감독과 동부 강동희(41) 코치가 13일 오후 자리를 함께했다. 김영만은 이날 저녁 전주 실내체육관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1995~96 농구대잔치-프로농구 원년 우승 주역
농구팬이라면 1990년대 후반 농구 기사에 자주 등장했던 ‘허-동-만 트리오’를 기억한다. ‘허’재, 강‘동’희, 김영‘만’ 세 선수의 이름 한 자씩을 따서 만든 그 ‘허-동-만’은 1995∼1996 시즌 실업팀 기아를 농구대잔치 정상에 올려놨고 프로 원년인 1997년에도 기아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한때는 김유택(44) Xports 해설위원을 포함한 ‘허-동-택’이었지만 김영만의 가세 이후 ‘허-동-만’이 돼버렸다.
“농구대잔치 1995∼1996시즌이었어요. 기아가 초반에 성적이 안 좋았어요. (김)유택, 허재, 동희 형이랑 술 한잔 마시다 허재 형이 ‘혈서라도 쓰자’고 하더라고요. 뭐라고 쓴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여하튼 그 이후 승승장구해 우승까지 했어요. 하하.”
○‘우승 다짐 혈서’ 등 에피소드 끝없어
‘허-동-만’의 막내 김영만은 술을 잘 못마신다. 강동희 코치가 “술 좀 했으면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았을 텐데…”라며 아쉬워할 정도. ‘혈서 사건’은 그런 김영만이 거의 유일하게 기억하는 술에 얽힌 추억이다.
세 사람은 중앙대 선후배 사이다. 허 감독이 84학번, 강 코치가 86학번, 김영만이 91학번. 허 감독과 강 코치는 대학 때부터 함께 선수로 뛰었지만 김영만은 기아에 입단해서야 하늘 같은 두 선배를 만날 수 있었다.
“허재 형은 후배들한테 참 잘해 줬어요. 남들은 엄하지 않았느냐고 그러던데 글쎄요, 별로 못 느꼈어요. 동희 형은 성격이 참 순하고 좋았지요.”
허 감독과 강 코치는 철저한 자기 관리로 코트 안팎에서 ‘모범생’으로 불린 김영만을 친동생처럼 아꼈다. 특히 강 코치는 기아, 모비스, LG, 동부에서 10년 넘게 한솥밥을 먹은 김영만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김영만도 모교 중앙대 코치로 새 인생
지난 시즌 LG에서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뒤 강 코치가 있던 동부에서 올 시즌을 시작한 김영만은 1월에는 KCC로 팀을 옮겼다. 평균 득점 20점을 넘기던 최고의 슈터이자 최강의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던 그였지만 2005년부터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끼는 후배를 데려왔던 허 감독은 “더 힘들어지기 전에 은퇴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시즌 중에 은퇴식을 할 수 있는 선수는 운이 좋은 편이다. 게다가 동부전이 고별 경기가 된 덕분에 허 감독과 강 코치가 지켜보는 가운데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허 감독은 “일정을 잡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얘기했지만 동부 전창진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은퇴식 협조를 부탁해 동부에서도 김영만에게 꽃다발을 전달할 정도로 떠나는 후배를 챙겼다. 강 코치는 “나는 비시즌 중에 별로 관심도 못 받고 은퇴했는데 영만이는 복도 많은 놈”이라고 부러워했다.
두 선배의 배려 속에 화려한 은퇴식을 가진 김영만은 모교 중앙대의 코치로 ‘제2의 농구인생’을 시작한다.
동부, 적지서 KCC 격파
한편 이날 경기는 동부가 KCC를 79-72로 꺾었다. 김영만은 4쿼터 후반에 출전해 1분 31초를 뛰며 2득점, 1리바운드로 ‘마지막 경기’를 마쳤다.
전주=이승건 기자 w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