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인터뷰는 2017년 3월 중대신문 인터뷰 '중대신문이 만난 사람'에서 전재하였습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인용되고 국민은 만세를 외쳤다. 그동안 많은 국민은 허탈감과 분노를 느껴야 했다. 특히나 국정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치다 못해 땅속으로 꺼져든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탄핵이 되기까지 수많은 불안감에 휩싸였었다. 마침내 기다려왔던 그 날이 왔고 우리는 이제 새 시대를 열고자 한다.    

 
 

권성동 동문.jpg

 

  탄핵 만장일치 확신해

  국민주권주의와 법치주의
  살아있음을 증명했다
 
  당장의 지지와 관심 위한
  포퓰리즘적 정치 그만해야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결코 부끄러운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십시오.” 권성동 법사위원장이 헌재에서 최후 변론을 마쳤다. 그 진술을 하기까지, 분명 쉽지 않은 길이었다. 간간히 마찰도 있었고 탄핵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많은 질타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굳건하게 소신을 지켜나갔다.
 
 
  -지난 10일 탄핵이 인용됐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탄핵 인용이라는 결과는 국민주권주의와 법 앞에선 누구든 평등하다는 법치주의를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저지른 행위들에 마땅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그렇다. 하지만 탄핵 인용이 발표 나기 전까지 긴장을 늦출 순 없었다.
  “네. ‘6:2로 인용된다’, ‘5:3으로 기각된다’ 등 여러 가지 설들이 많이 나돌았잖아요. 그 이야기의 진원지가 어딘지 모르겠지만 많은 국민이 불안해하셨죠. 하지만 전 탄핵이 만장일치로 인용될 것이라 확신했어요.”
 
 
  -확신한 이유는 뭔가.
  “저는 그동안 헌법재판소의 모든 변론과정을 쭉 지켜봐 왔어요. 사건 증인들의 증언과 증거 그리고 관련 자료를 토대론 기각이라는 판결이 나올 수가 없죠. 30년 이상 재판을 진행하며 옳고 그름을 판단해온 재판관들도 당연히 저와 같은 생각일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죠.”
 
 
  -부담감이 엄청났을 것 같다.
  “국정 농단 사태 이후 국민은 허탈을 넘어서 분노했습니다. 저 또한 우리가 모두 피땀 흘려 쌓아온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듯해 자괴감이 많이 들었어요. 물론 부담감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탄핵 소추위원장으로서 국회를 대표해 탄핵 소추 의결을 진행해야 했고 굳건한 태도를 보여야 했죠.”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나.
  “시간이 흐를수록 탄핵에 반대하는 국민의 목소리도 커지며 국론 분열 양상이 나타났어요. 일부는 제게 나서지 말라며 비난하기도 했죠. 그렇게 탄핵 인용과 기각의 대립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대담한 행동을 취하기 위해 노력해야 했어요. 아무리 대통령이더라도 잘못을 했다면 상응하는 벌을 받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제 소신이거든요.”
 
 
  탄핵이 인용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들의 거센 반발이 이슈였다. 특히나 권성동 위원장에게 돌아오는 화살과 폭언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으로서 국민 여론을 무시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이 사안은 국민 여론에 치우친 불공정한 판단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박 전 대통령의 부정부패와 비상식적 태도들은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있을 수 없는 행위였죠. 국민 여론에 따라 좌지우지된 것이 아닌 법적으로 위반되는 행위가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고 확인됐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였어요.”
 
 
 
 
  -그렇다. 당연한 결과다.
  “양쪽 진영에서 수없이 비난과 부탁을 받다 보니까. 마치 샌드위치가 된 기분이었어요.(웃음) 저 또한 이때만큼 공정한 판결이 간절했던 적도 없었던 것 같네요.”
 
 
  -전 새누리당 소속위원 시절부터 탄핵에 앞장섰다고.
  “박 전 대통령의 당선과 전 정부의 성공을 바라왔던 정치인 중 하나로서 국회에서 많은 갈등이 있었던 건 사실이죠. 하지만 이번 사안의 진위여부를 따지고도 그를 옹호한다는 건 말이 안되죠. 그건 공과 사를 구분 못 하는 행위이자 국민에게 지탄받을 행동이에요. 탄핵의 불가피성과 당위성을 동료 의원들에게 강조하고 그 길로 가야 한다고 호소했어요.”
 
 
  -그런데 ‘특검 연장’ 사안을 다룬 ‘특검법 개정안’에 반대했던 이유는 뭔가.
  “특검법 연장에 관한 일은 국회 시스템에 따른 결정이었어요. 제 개인의 선택만으로 이뤄진 결과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모든 법사위원장은 여야 합의를 조건으로 법안을 승인해왔죠. 그 당시 특검법 연장에 관해 원활한 합의가 없었고 위원장으로서 전 관행을 존중해야 했어요.”
 
 
  -그런가.
  “네. 전 법사위원장으로서 모든 국회의원의 의견을 포용하고 존중할 의무가 있어요.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을 밝히고 싶네요.”
 
 
  -세월호, 언론 자유 등의 탄핵사유 기각이 논란이다.
  “안타깝지만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확정이에요. 사실 확정을 위해선 확실한 증거가 필요해요. 기각된 부분에서는 완벽한 증거를 갖추지 못했고 그렇기에 탄핵사유가 될 수 없었죠.”
 
 
  -탄핵 이후 대한민국은 어떻게 될 것이라 생각하나.
  “이번 탄핵 심판은 국민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커요. 먼저 차기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정치인에게 행동 준칙을 만들어줬잖아요. 그간 개인의 이득을 위해 공공연히 행해지던 일들에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밀면 문제가 된다는 걸 다시 한번 깨우치게 한 거죠. 또한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권한과 위치가 너무 지나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어요.”
 
 
  -현 대통령제의 문제가 있다는 말인가.
  “그렇죠. 전 진영논리는 그만하고 이젠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대통령의 부정부패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민주화 운동 이후 헌법 체제가 설립된 후에도 여태껏 계속된 논란이죠. 이는 곧 대통령의 지나친 권한이 원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분권형 개헌’을 주장하는 건가.
  “네. 구중궁궐(九重宮闕) 같은 태도를 일삼는 청와대에 국민은 이미 신뢰를 잃었어요. 국가를 운영하는 힘을 나눠서 언론과 국민의 감시가 용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개인의 이권을 추구하는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자에게 회유하려 하죠. 이를 막고 깨끗한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분권형 개헌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은 국회에서 법사위원장으로서 적극적인 역할을 도모하는 그이지만 처음부터 정치인이 되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검사생활하는 동안 국회에 대한 불신이 아주 강했어요. 그래서 30대에는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전혀 없었답니다. 검사생활을 하는 동안 국회의원들이 일을 잘한다고 칭찬받는 걸 본 적이 없었거든요.(웃음) 그러다 96년도에 법무부에 발령을 받으면서 그러한 인식이 피상적 측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검사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처벌하며 사회에 경각심을 주는 역할만 하잖아요. 그런데 정치는 모든 경제·문화·사회를 개선할 수 있는 일을 아우르더라고요. 국민의 뜻에 따라 선출돼 나라를 위해 힘쓴다는 것은 아주 영광스러운 거죠.”
 
 
  -정치계에 입문 후 달라진 점이 있나.
  “음. 생각보다 제 뜻대로 되는 것들이 많이 없더라고요.(웃음) 여야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았어요. 협치를 잘해나가야 할 텐데….”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삼권 분립 제도는 서로 견제하고 감시하며 균형이 이뤄져야 권력 남용을 예방하잖아요. 물론 그 운영 과정에 있어 항상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은 동의하지만 공수처 같은 제2의 검찰을 만드는 주장에는 반대합니다. 어떤 기관에 문제가 있다면 구성원과 내부체제의 변화를 이뤄야죠. 이는 광화문에 제1 국회, 제2 국회를 만들자는 말과 같은 맥락이에요.”
 
 
  -하지만 당장 내부체제의 변화를 꾀하긴 어렵지 않나.
  “지금 검찰이 기소권과 수사권을 모두 독점하고 있는데 일부 수사권을 경찰과 나눠 가지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특히 논란된 판·검사의 비리수사권을 경찰이 가지고 있다면 서로 견제가 될 거라 생각해요. 그렇다면 도덕성, 청렴성을 보장하고 검찰수사의 타당성 또한 확보할 수 있죠. 이렇듯 포퓰리즘적 검찰 개혁이 아닌 ‘검찰 민주화’가 이뤄져야 해요.”
 
 
  -소신이 뚜렷하다.
  “칭찬 고맙습니다.(웃음) 정치는 국가를 표방하고 국민의 행복을 높이기 위해 하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나’가 아닌 ‘국민’이 먼저예요. 이러한 생각은 확고한 국가관, 역사관 그리고 원칙과 소신이 있어야 가능하죠. 당장 국민의 기대에 모두 부응하기는 어렵겠지만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담대하게 밀고 나가는 자세가 필요해요.”
 
 
  -어린 시절 모범생이었을 것 같은데.
  “모범생이라면 모범생이었죠.(웃음) 고등학교 내내 전교 일등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공부만 했으니까요.”
 
 
  -자부심이 엄청나겠다.
  “아버지께서 항상 교만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음에도 치기 어린 마음에 뿌듯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매번 제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순 없더라고요. 첫 입시에서 쓰디쓴 불합격을 맛봐야 했거든요. 집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재수했고 부모님께 정말 죄송했어요. 그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뿐이었죠.”
 
 
  -중앙대 재학시절은 어땠나.
  “제가 입학할 당시는 그 유명한 ‘서울의 봄’이 시작된 시기에요. 대학가는 민주화 운동의 열기와 최루탄 가스로 가득 차 있었죠. 저 또한 그 역사의 흐름에 서 있었고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죠. 흑석동에서 출발해 ‘독재 타도!’를 외치며 한강 다리를 건너던 기억이 있어요.”
 
 
  -고시공부는 벅차지 않았나.
  “주로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했었어요. 고시공부를 할 당시 지금 아내와 만나고 있었는데 선배들이 사법고시 2차 시험에 합격하기 전에 연애하면 실패한다고 경고하곤 했어요.(웃음) 그런데 전 그런 징크스 때문에 아내와 헤어지는 건 못 하겠더라고요. 그 대신 따뜻한 미소와 격려를 보내는 아내에게 꼭 합격으로 보답하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속속히 알려지면서 정치계에도 변화의 큰바람이 불었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전 새누리당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지 갑론을박을 다퉜죠. 저를 비롯한 지금의 바른정당 소속위원들은 국민에게 석고대죄가 불가피할 정도로 사과하고 반성하며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당권을 쥐고 있던 친박 세력의 반발과 고집이 엄청났죠. 책임성을 회피하는 이들과 함께할 수 없었고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새로운 보수를 지향하는 당을 창당하겠다는 중대한 결론을 내렸어요.” 
 
 
  -생각보다 바른정당의 지지율이 저조하다.
  “정의로운 길, 옳은 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앞날에 박수를 쳐주는 이들이 꽤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네요.(웃음) 하지만 지금은 지지율에 연연하는 것은 이르다고 봅니다. 아무래도 바른정당의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과 시간이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진정성 있게 계속해서 다가간다면 알아주고 인정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곧 조기 대선이 치러지는데.
  “‘난세에 영웅이 탄생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 반대로 평화 시기에는 영웅이 ‘만들어져야’ 하죠. 이렇듯 현재 전 정권의 야당에선 다양한 이들이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지만 바른정당을 포함한 여당이었던 정당 출신의 대권 주자는 비교적 지지율이 낮은 게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다음 대선을 준비하는 과정이 미흡했던 탓이겠죠. 무엇보다 이번 일로 인해 국민이 구 여권에 대한 마음이 많이 떠났습니다. 그러나 아직 충분히 시간이 남았고 열심히 한다면 기회가 있을 것이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요.”
 
 
  -어떤 국회의원으로 기억되고 싶나.
  “국민이 스스로 영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과 여건을 건설하고 싶어요. 당장 관심과 지지를 위해서 포퓰리즘적으로 정치하는 건 안 된다고 봐요. 그런 정책이 통과되는 걸 막는 게 제 의무이고요.”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고리타분한 얘기일지도 모르겠어요.(웃음) 대학 시절 여러 가지 경험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가지의 일에 정성을 들이면 좋겠어요. 전공 공부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 해당하는 말인데요. 무엇이든 자신이 한 분야에 전문가가 된다면 거기서 오는 자신감은 사회에 나가서도 당당하게 활동할 수 있는 좋은 양분이 되니까요.”
 
 
  당신에게 중앙대란?
  “4년 장학생으로 중앙대에 입학해 장학금은 물론 매달 소정의 지원금을 받았어요. 그 덕에 공부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죠. 당시 연년생이었던 동생도 대학에 가면서 경제적으로 많이 부담될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저의 모교에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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