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인터뷰는 2012년 1월 중앙대학교 홍보대사 중앙사랑 인터뷰 '파워중앙인'에서 전재하였습니다.]
팝 칼럼니스트.
책상에 앉아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평가하고 글을 쓰며,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살 것 같다. 하지만 대중에게 너무나 친숙하게 다가오는 팝 칼럼니스트가 있다. 바로 김태훈 동문(불어불문학 89)의 이야기다.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청취자들의 고민을 상담해주기도 하고, TV에 나와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한다. 2011년 가장 '핫'한 프로그램이었던 '나는 가수다'에서는 자문위원을 맡아 출연 가수들에게 신랄한 평가를 쏟아내기도 했다.
'나는 가수다' 뿐 아니라 예능,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종횡무진하고 있는 김태훈 동문을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전날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는 그는 해장을 하고 싶다며 필자를 분식집으로 데려가 라면을 함께 먹자고 제안했다. 커피향을 음미하고 팝을 들으며 평가할 것 같았던 그에게서 소탈한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 김태훈, 불어학과를 선택하다
준비해간 첫 질문은 불어학과를 선택한 이유였다. 불어학과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김태훈 동문은 "여자들이 예쁘기 때문"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실 재수를 해서 중앙대학교 불어학과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원래는 영화 연출을 공부하고 싶어 영화학과를 지망했었죠. 그 당시 영화계에는 '까이에 뒤 시네마(Cahiers du Cinema: 프랑스의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이 1947년 창간한 영화전문지. 1950년대 장 뤽 고다르, 프랑소와 트뤼포 등이 주요 필자로 활동하며 '작가주의' 영화 이론을 세웠으며 이들은 '새로운 물결'을 의미하는 프랑스적 영화 사조인 '누벨바그' 운동의 주역이 됨)'라는 프랑스적 영화 사조가 유행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어를 공부해서 프랑스로 유학을 가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불어학과를 선택하게 된 것이죠." 하지만 그는 프랑스로 유학을 가지 못했다. 그가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故이내창 열사(조소 86)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
"당시 총학생회장이었던 이내창 열사가 거문도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 당시에 이내창 열사의 죽음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젊은 혈기에 스스로 운동권 선배를 찾아갔죠. 그 이후에도 외국어대 사회부장 이라든지, 불어학과 과회장 등 많이 활동했어요. 덕분에 제 때 졸업하지 못했죠. 하하하." 필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포털사이트 프로필에는 분명히 학사 학위를 받은 것으로 게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1995년에 학점이 부족해서 졸업하지 못했어요. 이후 시간이 많이 흘러서 2008년에 복학했죠. 그리고 서울캠퍼스 불어불문학과에서 모자란 12학점을 채워 넣고, 2009년에 졸업했죠. 다행히 학교에서 배려해 준 덕분에 학위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20년 만에 우리 학교를 졸업한 후 현재는 동덕여대 대학원 문학창작과에서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경마장 가는 길」을 썼던 하일지 선생님께서 저를 좋게 봐주셨어요. 어느 날 저에게 와서 글공부를 더하자고 하셨죠. 저 역시 칼럼니스트로서의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 김태훈, 칼럼니스트가 되다
우리가 아는 김태훈 동문의 모습은 음악 뿐 아니라 영화, 연애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뛰어나다. 그는 왜 팝 칼럼니스트가 되기로 한 것일까?
"학교를 나온 후 졸업장이 없었기 때문에 딱히 갈 곳이 없었어요. 당시 음악계는 매니아층이 두터웠기 때문에 학력보다는 음악적 지식을 존중해주었었거든요. 그래서 잡지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앨범 리뷰라든지 칼럼을 쓰면서 글 실력을 높게 평가 받았습니다. 그리고 업계 선배들에게 커리어를 인정받아서 MCA 뮤직(현 유니버셜 뮤직)에 지원할 수 있었고 합격했죠. 이후 EMI 뮤직을 거쳐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2010년 김태훈 동문은 영화 잡지 ‘무비위크’에서 자신이 썼던 칼럼들을 모은 「랜덤워크」라는 책을 출간했다. 책의 뒷표지에는 가수 배철수의 아주 재밌는 추천사가 있다. 김태훈은 내가 아는 사람 중 쓸데없는 것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친구라고. 우리가 가진 김태훈 동문의 이미지도 그렇다. 그는 어디서 이렇게 다양한 지식을 얻는 것일까? 김태훈 동문은 살짝 미소 지으며 답해주었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잖아요. 자신이 정한 한 분야를 깊게 파는 것도 좋지만 소위 말하는 응용물리학이라든지 인문학과 결합된 디지털 같이 여러 분야가 융합되는 경우도 많죠. 저 역시도 여러 분야의 호기심 때문에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본 것이니까요. 여러분들이 앞으로 100년쯤 더 산다고 가정했을 때, 분명히 하나의 직업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가진 여러 분야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 해보세요."
그렇다면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이 좋아하는 뮤지션은 누구일까. 비틀즈? 롤링스톤즈? 너바나?
"좋아하는 뮤지션이라고 하면, 한 백만명쯤 될거에요. 하하하." 이어 그는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어 저장된 곡 리스트를 보여주었다.
"비틀즈나 롤링스톤즈는 이미 전설이죠. 요즘에는 제임스 블레이크, 커티스 메이필드, 휴고 디아즈, 소울 다이브 등 다양한 분야의 음악을 듣고 있어요. 국내 뮤지션 중에는 윤상씨와 ‘어어부 프로젝트’의 백현진씨 노래를 많이 듣고요."
#. 연애카운슬러, 김태훈
김태훈 동문에게는 팝 칼럼니스트 외에도 독특한 직함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연애 카운슬러. 라디오나 TV 프로그램에 나와 솔직담백하게 연애 이야기와 상담을 해주는 그를 보며 대중은 그를 연애 카운슬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그는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할 수 있었다.
"제가 방송에서 했던 연애 이야기나 상담은 실패한 연애에 대한 복기였어요. 살면서 무수히 많은 연애를 해봤고 무수히 많이 실패를 해봤죠. 연애를 성공한 사람은 특별히 고민하지는 않거든요. 내가 왜 실패했는지 끊임없이 생각해보니 책도 써지고, 방송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2010년 10월 김태훈 동문은 7살 연하의 신부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에게 결혼 이야기를 묻자, 껄껄 웃어보였다.
"결혼 당시 언론에서는 '7년간의 열애'라고 표현하더군요. 처음 만난 것이 7년 전이었지, 7년 동안 열애를 한 것은 아니었어요. 처음 만난 것은, 제가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데, 그곳에서 처음 만났죠. 와이프도 스쿠버다이빙을 즐겼거든요."
연애카운슬러 김태훈 동문과 결혼하다니, 그의 와이프도 내공이 만만치 않은 듯 보였다.
"제가 웬만큼 사람을 잘 파악하는데 아직도 제 와이프는 파악이 안되네요. 가끔 보면 저보다 저에 대해서 더 잘 아는 것 같으니까요. 지금은 사랑에 신뢰가 더해진 '동지적 관계'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하하."
#. 김태훈, '나는 가수다'의 자문위원이 되다
지난 2011년 가장 '핫'한 프로그램이라고 하면 단연 '나는 가수다'일 것이다. 경연 직후 공개되는 7곡의 음원은 차트를 휩쓸었고, 사람들의 입에서는 '나는 가수다'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2011년 8월, 김태훈 동문은 '나는 가수다'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장기호 서울예술대학 교수, 안혜란 PD, 장소영 감독 등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 틈 사이에서 그는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직설적이고 신랄한 평가를 통해 시청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아무래도 기가 센 사람들이 함께 있으니 재밌었던 일도 있었을 터. 김태훈 동문에게 ‘나는 가수다’의 뒷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특별히 트러블 같은 것은 없었어요. 기본적으로 서로가 가진 음악적 취향을 존중해주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의 의견이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문위원단에서 음악평론가는 저 밖에 없어요. 그래서 더 직설적으로 평가하는 부분이 있죠. 분명 저하고 같은 관점을 가진 시청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들의 편에 서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는 자신의 직설적인 평가에 대한 이유를 계속 설명했다.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이 하잖아요. '슈퍼스타K'나 '위대한 탄생' 같은. 사람들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는 참가자들을 혹독하게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프로'가 아닙니다. 하지만 '나는 가수다'는 다릅니다. 여기에 나오는 가수들은 모두 프로에요. 대중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그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경연을 펼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혹독하게 지적하는 겁니다. 대중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어야 하는 것은 가수들의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나는 가수다'의 포맷이 경연 형식이잖아요. 자문위원간 의견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누가 붙고 누가 떨어졌는지에 대한 이유가 분명하게 시청자들에게 전달되어야 하거든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김태훈 동문은 단순한 '독설가'가 아니었다. 자신의 직설적인 언변에 소신을 담는 '비평가'였다.
김태훈 동문은 ‘나는 가수다’에서 직설적이고 신랄한 평가를 통해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사진: MBC '우리들의 일밤 - 나는 가수다' 캡쳐화면)
#. 김태훈, 대중문화를 이야기하다
일각에서는 김태훈 동문을 김정운 명지대 교수, 가수 호란 등과 함께 '코멘테이터'라고 평가한다. 코멘테이터란, 문제나 사건의 내용을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하는 사람, 즉 해설자를 의미한다. 세간에 이런 평가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제 직업이 꼭 팝 칼럼니스트 하나로 고정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제가 방송이나 칼럼 등에서 일정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면 진작 하차를 했을 것입니다. 꼭 직업이 하나, 명확한 정체가 있어야 한다는 틀에 갇힐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영화도 액션 영화만 보는 것이 아니라 코미디나 멜로 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즐기듯이 말이죠."
최근 한 언론사에 개제한 칼럼에서 그는 숫자로 표현되는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을 한 적이 있다. 김태훈 동문에게 대중문화가 가져야할 방향성을 물어보았다.
"대량생산 시대가 되고, 디지털 시대로 넘어오면서 우리는 굉장히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습니다. 이 속에서 영화나 음악이 줄 수 있는 추상적 만족감을 점점 수치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음원이 발표되면 100만명이 다운로드 받고, 어떤 영화가 개봉하면 1,000만 관객이 들었다며 숫자를 강조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중문화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이런 숫자들이 깔려있어요. 행복의 기준 역시 몇 평 아파트에 얼마짜리 자동차를 운전하느냐 등 숫자로 바뀌었죠. 지극히 은밀하고 사적이어야 하는 대중문화가 숫자로 바뀌어간다는 것은 비극적인 이야기 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음악을 들으며 웃고 있다' 이 문장을 숫자로 바꿀 수 있을까요?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며 대중문화를 즐기는 추상적‧미적 체험이 숫자가 아닌 미적 감각세포를 계속해서 복원해 나가는 방향으로 갔으면 합니다."
김태훈 동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 김태훈, 중앙인에게 이야기하다
대한민국 대학생들의 공통된 고민이 하나 있다. 바로 자기소개서.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면 자기소개서는 더욱 큰 고민으로 다가온다. 아무래도 계속해서 글을 써왔던 김태훈 동문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 그에게 자기소개서를 쓰는 팁을 물어보았다. 시종일관 여유 있게 답하던 그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자기소개서는 특별한 '재주'가 아닙니다. 나 자신을 파악하는 과정입니다. 대학생들이 자기소개서에 고민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한 채 일정한 틀 안에 자신을 밀어 넣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빈 노트를 하나 꺼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잘하는 것, 못하는 것 등을 자유롭게 적어나가 보세요. 꼭 문장일 필요는 없습니다. 말이 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니까요. 그리고 자기소개서를 쓰기 전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먼저 물어보세요. 인터넷 등에서 떠도는 일정한 틀에 자신을 밀어 넣지 말고 그 안에 담길 내용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김태훈 동문은 이내 질문을 하나 던졌다.
"세상에서 가장 바보같은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필자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김태훈 동문이 껄껄 웃어보였다.
"바로 남들과 똑같이 살면서 '나는 남들과 다르게 살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살면 남들과 다른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진지하게 돌아보고, 독특한 것을 찾아보세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영어 점수를 필요로 하지는 안잖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패러다임은 과거 세대부터 이어져 온 과거의 유산일 뿐입니다. 시대는 계속해서 변하고 있는데 과거에 갇혀버리면 안되잖아요. 생각은 여러분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여러분이 누구인지 돌아보고,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세요."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고, 틀을 깨라. 명쾌한 해답이었다. 자기소개서를 쓰지 못해 며칠 밤을 지새웠던 필자의 모습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김태훈 동문과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유쾌한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준비해간 질문지의 마지막에 이르렀다. 그에게 현재를 살고 있는 중앙인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인생을 길게 보라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여러분의 세대는 평균수명이 더 길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직업이 100만개쯤은 더 생길 것입니다. 20대를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승부처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인생을 길게 보고 즐겁게 살아보세요. 열정이라는 것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비로소 생기는 것입니다. 먼 미래의 일에 저당 잡혀 현재를 괴롭히며 살지 마시길 바랍니다. 길게 남은 여러분의 인생을 재밌게, 그리고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십시오. 여러분이 가질 직업을 데코레이션 하지 말고, 인생 자체를 데코레이션 하도록 노력해보세요."
최근 김태훈 동문은 인터넷‧모바일 방송 '손바닥TV'에서 'This Man Life'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았다. 김태훈 동문은 '김태훈 이라는 사람이 한 주간 어떻게 살아왔을까를 보여주는 사적인 통로'라고 프로그램을 정의 내렸다. 팝 칼럼니스트로, 때로는 연애 카운슬러, 방송인으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김태훈 동문. 그의 또 다른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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