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인터뷰는 2014년 12월 중대신문 인터뷰 '중대신문이 만난 사람'에서 전재하였습니다.]

 

*김미랑 중령은 국군춘천병원장 임기(2013년 12월 ~ 2015년 12월)를 마치고, 현재 국군의무사령부 예방의학과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여성, 군인, 의사 어울릴 것 같지 않던 세 단어가 김미랑 동문(의학과 95학번)의 답변에 하나로 합쳐졌다. “권위의식을 버리고 기본과 원칙을 지켜야죠.” 정의, 행복과 같이 대수로운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김미랑 동문은 말하는 내내 편한 미소를 짓곤 했지만, 그녀가 말한 말들의 의미는 진중하기 그지없었다. 환자의 몸과 마음 그리고 나라를 지키는 김미랑 국군춘천병원장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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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위주 사회의 가부장적 관행에 경종을 울리다

사시로 고생하던 장병들 치료했을 때 가장 큰 보람 느껴

 

  여군 1만 명 시대에 돌입한 요즘, 그 선두에서 달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 최초 여자 군의관으로 입대해 최초 여자 병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그녀는 개척자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녀의 개척에는 어떤 원동력이 있었을까. 국군춘천병원장 김미랑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여자 군의관으로 입대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의대 4학년 때 의사면허를 준비하던 시기에 군의관 모집 포스터가 의대 건물 현관 게시판에 붙어 있는 걸 발견했어요. 포스터를 보니 ‘한번 지원이나 해볼까 일단 체력검정만 받아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그전까지는 군의관 지원에 대한 생각이 없었나.
“전혀 생각해본 적 없었어요. 다만 학교에 다닐 당시 교수님이나 선배들이 다양한 진로를 생각해보라는 충고를 자주 했어요. 의학 전문기자, 다국적 제약회사 연구원 등 다양한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죠. 그래서 여자 군의관을 모집한다는 포스터를 봤을 때 이게 새로운 길이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나 봐요.”

 


-가족들이 만류하기도 했을 텐데.
“부모님은 오히려 좋아하셨어요. 우리 가족이 딸만 여섯이에요. 제가 막내딸이죠. 아들을 군대 보내는 경험이 없어서인지 딸이라도 군대에 한번 보내보고 싶으셨나 봐요. 제가 입대해서 사복을 소포상자에 담아보내니까 굉장히 신선해하시더라고요. 군인이란 직업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편이셨죠. 장교를 일종의 공무원처럼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군대라는 조직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는지.
“별로 걱정되지 않았어요. 인턴과 레지던트 시절부터 힘든 건 단련이 돼 있었고 각오도 단단히 하고 있었거든요. 무엇보다 애초에 편하기 위해 도전한 것이 아니잖아요. 수류탄 던지는 훈련을 할 때는 혹시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하긴 했지만요. 그래도 막상 할 때는 잘했어요.(웃음)”

 


-다른 훈련들은 어땠나.
“유격훈련이 유독 기억나네요. 요새 TV에서 <진짜사나이>를 보면 화산 유격장에서 훈련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방송에서는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데 우리는 그 길을 전부 걸어갔어요. 50km를 행군해서 산 정상의 유격장에 도착했죠. 일주일간 훈련을 받았는데 그 때가 정말 힘들더라고요.”

 


-여자 군의관이라 고생했던 점은.
“개인적으로 힘든 일에 대한 역치가 높아 잘 견디는 편이에요. 뭐 일이 고되고 잠을 못 자서 살이 죽죽 빠질 때도 있었지만 그런 것들은 당연하다고 생각을 했죠. 어렸을 적 의학 드라마를 보면 의사들이 곧 죽을 것처럼 힘들게 일을 하잖아요. 드라마를 보고 나서 군의관은 훨씬 더 힘들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 예상에 못 미쳤나 봐요.(웃음)”

 


-훈련에 있어 남성과 체력의 차이가 있었는지.
“남자들에게 밀리는 편은 아니었어요. 저는 의대를 졸업하고 바로 입대했기 때문에 나이가 젊은 축에 속했거든요. 오히려 전문의를 따고 온 30대나, 오래 공부를 하느라 체중이 나가는 남자들보다 체력적으로 많이 뒤지지 않았죠. 그래도 훈련하면서 여군이기에 어려웠던 적도 있었어요. 예를 들면 행군을 할 때 남자는 그냥 수풀에서 볼일을 보곤 하지만 여자들은 그렇게 할 수 없잖아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죠.”

 


-남성이 많은 군대에서 의견 피력이 어렵지는 않나.
“할 말은 꼭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기 때문에 여자라고 위축된 적은 없어요. 잘못된 규정이 있다면 개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건의하곤 했거든요. 저는 여성이 필요한 말을 하는 것이 어떤 조직을 남성 위주의 분위기에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봐요. 실제로 여성이 사회에 많이 진출하면서 기존의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가 개선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하고요. 예전에는 남성들 사이에서 관행적으로 행해졌던 관습들이 여성들의 진출로 쇄신되는 거죠.”

 


-민간 의사의 진료와 군의관의 진료가 많이 다르던가.
“군 병원은 의무, 작전, 훈련 등 진료 외적인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차이점이 있어요. 민간 병원은 예약 손님을 10분 간격으로 잡아 여유 있게 진료하잖아요. 우리는 버스 여러 대가 한꺼번에 와서 장병 몇 백 명이 정기진료를 받아요. 때문에 한 사람씩 여유 있게 진찰하는 것이 어려워요.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진료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할 수밖에 없죠.”

 


-인상 깊었던 환자가 있는지.
“입대하기 싫어 용을 쓰는 사람도 있지만 입대하지 않아도 되는 신체조건을 갖고 군대에 오는 경우가 있었어요. 심한 약시로 인해 사시가 된 몇몇 장병들이 진료를 받으러 왔죠. 그 정도면 군대를 면제받을 수 있는 수준인데 말이에요. 수술로 눈을 교정해 줬는데 결과가 좋았을 뿐더러 본인들이 굉장히 고마워해서 큰 보람을 느꼈어요.”

 

 

  의사와 군의관의 직업적 차이가 크다고 대답하는 김미랑 동문은 군 생활에 있어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테지만 스스로 내린 결정에 후회한 적 없다는 그녀는 인생을 최대한 즐겁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모토를 갖고 있었다.

 


-‘최초’라는 수식어를 어떻게 체감하나.
“책임감을 많이 느끼죠. 최초의 여군의관이지만 한편으로 업무상 여자와 남자의 차이가 거의 없다는 생각을 해요. 병원장으로 근무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가장 중요한 것은 능력이지 성별이 아니니까요. 병원장이라는 직급도 중령 계급에 해당하는 직위를 부여받은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군 생활이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하나.
“원래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니나 그럭저럭 잘 맞아요. 군대에서는 지속적으로 근무지를 옮기는 중간에도 일을 쉴 수가 없어요. 노는 걸 좋아하는 체질이라 평범한 직장인으로 생활했다면 이직하는 기간마다 여기저기 배낭여행을 다녔을 것 같아요. 아마 저는 군대에서 고삐를 놓지 않게 스스로 강제해야 하는 운명인가 봐요.(웃음)”

 


-어렸을 때 성격이 궁금하다.
“정신없는 여섯 자매의 가정에서 명랑한 아이로 자랐어요. 장난기도 많고 말괄량이어서 매일 펄쩍펄쩍 뛰어다니곤 했죠. 지금이야 어렸을 때와 성격이 많이 다르긴 해도 움직이기 좋아하는 성격이 어딜 가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의대 진학에 관심이 있었는지.
“원래는 관심이 없었어요. 혹시 신은경 주연의 의학드라마 <종합병원>를 아시나요.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유행했던 드라마예요. 꼭 드라마 때문은 아니지만 드라마 속 의사들을 보면서 의대에 가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공부는 뭐 남들이 하는 만큼 하지 않았나 싶어요. 적성검사를 하면 문·이과 적성이 골고루 잘 나와서 이과였는데도 언어영역이 나름의 강점이었어요.”

 


-책과 친한 편인가.
“발령 때문에 여기저기 근무지를 옮기며 이사를 다니곤 하는데 짐을 풀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동네 도서관에서 대출증을 만드는 일이에요. 평소에 책을 좋아하는 남편과 함께 도서관에 자주 가거든요. 책을 편식하지 않는 경향이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탐독하죠. 만화책도 자주 읽어요. 어렸을 때부터 순정만화나 명랑만화를 즐겨 읽었어요.(웃음)”

 


-학부생 시절 스스로 어떤 학생이었다고 여기나.
“다방면으로 두루두루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어요.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학교 행사에도 열심히 참여했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해 의대 합창반 활동에 특히 열심이었어요. 매년 봄에 열리는 서울시 8개 의과대학 연합 합창대회에 한번도 빠진 적이 없으니까요. 신입생 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몸을 담고 있던 터라 애정이 깊은 동아리에요. 지금은 바빠서 챙기지 못하고 있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공연을 자주 보러가곤 했어요.”

 


-학업면에서는 어땠는지.
“졸업할 때 종합 성적이 상위 15%이내였어요. 이 정도면 괜찮은 성적인지 모르겠네요. 벼락치기로 시험을 보는 스타일이라 더 열심히 했으면 보다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쉬워요.”

 


-캠퍼스에서 기억에 남는 공간이 있다면.
“정문의 잔디밭이요. 신입생 때 선배들이 3차로 잔디밭에서 술을 마신다고 해서 처음에는 ‘잔디밭’이라는 술집이 있다고 착각했어요. 또 시험기간 청룡연못 쪽에 벚꽃이 핀 모습도 인상적이었어요. 의대는 다른 학과와 시험기간이 달랐거든요. 우리의 중간고사 기간에는 꼭 벚꽃이 예쁘게 피고 대학 축제가 열리더라고요. 그래서 동기들과 벚꽃을 ‘중간고사의 꽃’이라며 한탄을 하곤 했죠. 그때의 아쉬운 마음이 기억에 남아요.”

 


-잔디밭에서 술을 자주 마셨나.
“학생 때는 멋모르고 마시곤 했지만 술을 잘하지 못해요. 당시에는 분위기 때문에 마셨죠. 조금만 먹어도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빨리 뛰어요.”

 

 

  군의관으로 임관 이후 다양한 부대에서 경험을 쌓은 그녀는 지난해 12월 국군춘천병원장으로 취임했다. 병원의 미래와 자신의 삶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으로 직무에 임하는 그녀는 한 명의 여성이 아닌 완성된 군인이었다.

 


-여성 최초 병원장이라는 점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고 들었다.
“몇몇 주변 분들이 우려를 하시긴 했어요. 왜 그런 걱정들을 할까요. 이제는 여자 연대장도 있고 군대의 각 분야 곳곳에 여성들이 자리를 잡고 있잖아요. 아직도 그런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적잖이 놀랐죠. 그래도 사령관님께서 저를 믿어주셔서 많이 고마웠어요.”

 


-이전에 진료를 주된 임무를 할 때와 병원장 업무상에 차이가 있다면.
“군의관일 때 좀 더 소속된 부서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면 병원장은 특정 부서에만 관심을 쏟을 수 없어요. 식당에서 조리가 잘 이뤄지는지부터 구급차가 운행을 나갔을 때 안전할지까지 전반적인 부분에 세심한 노력이 요구되죠. 생각할 점들이 훨씬 많아요.

 


-업무가 바쁠 것 같은데.
“병원장이 되기 전에는 이 일이 항상 한가해 보였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직접 병원장이 되어 보니까 전 병원장님이 경험이 많으셔서 일을 빨리 빨리 처리하신 거였어요.(웃음) 외부에 협조해야 할 것도 많고 주관해야 할 회의도 많아요. 항상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에 주말을 가리지 않고 출근하고 있어요.”

 


-책임감을 많이 느끼겠다.
“부대 구석에 망가진 울타리를 다시 세우는 것까지 전부 제 책임 하에 있어요. 어깨가 많이 무겁다고 느끼죠. 춘천국군병원이 병원장으로서 첫 부임지여서 그만큼 애정도 담겨 있어요. 마치 선생님들이 첫 담임을 맡았던 학급을 못 잊는 것처럼 이곳이 제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여성이라 좀 더 섬세하게 병원 운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병원장 업무에 있어 남성과 여성의 구분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여성이 더 꼼꼼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훨씬 더 세심한 남자 분들도 있잖아요. 저는 오히려 좀 덜렁거리는 기질이 있기 때문에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에요. 성별보다는 한 사람의 성격이 업무 스타일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권위의식이 없는 편이라고 하던데.
“기강이 해이해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하급자들이 편하게 느끼도록 노력하는 편이에요. 쓸 데 없이 군기를 잡는 건 좋지 않다고 봐요. 부하들로 하여금 상사에게 다가서기 어렵게 하면 소통이 어렵잖아요. 어떤 점이 어려운지 기탄없이 얘기를 나눠야 서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봐요.”

 


-병원장으로서 가장 역점을 두는 것은.
“병원장으로 취임하면서 회의를 통해 정한 병원 임무가 있어요. 양질의 진료,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것, 마지막으로 소통하는 행복한 병원을 만드는 것이 그 목표에요. 일단 직원들이 행복해져야 그 행복이 환자들에게도 전달이 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병원 일이 굉장히 많아 쉽지 않아요.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몸이 우선 편해야 하는데 일 자체를 줄일 수는 없으니 미안하죠.”

 


-직원들과 병사들에게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개인이 발전해야 궁극적으로 병원이 발전할 수 있잖아요. 직원들과 병사들이 자기계발을 하도록 최대한 장려하고 있어요. 그 방편으로 부대 안에 창고를 개조해 병사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병영도서관을 마련했어요. 병사들이 책과 친해지도록 무협지도 비치해 놓고 교양을 쌓을 수 있는 세계문학전집도 구입해뒀죠. 그밖에 군에서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지원하도록 장려하고 있어요.”

 


-여자 군의관 입대 정책을 개선하는 일에도 관여했다고.
“입대를 준비하던 시기에 관련 정보를 알고자 전화했지만 군의관과 통화를 못해봤어요. 여군 보병과의 상담이 전부였기 때문에 여자 군의관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했죠. 그래서 군의관 입대에 관한 상담 연락을 받으면 최대한 많은 정보를 가감 없이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또한 육군본부에 근무할 당시 여자 군의관의 입대를 장려하기 위해 의·치과대학 여학생들이 군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어요. 그 정도로 입대하겠느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감나무 밑에서 입이라도 벌려야 감이 떨어질 때 먹을 수 있잖아요. 제도를 준비해놓는 의미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본인에게 애국심이란 어떤 의미인가.
“군의관으로 활동한 10여년 동안 ‘내가 국가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곰곰이 해왔어요. 군의관은 민간 의사보다 돈도 훨씬 적게 받고 근무지 때문에 이사도 자주 다녀서 여건이 좋지 않아요. 그런데 왜 군인을 하냐고 묻는다면 세속적인 가치들을 목표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군의관으로서 나라에 충성하는 애국심을 삶의 목표로 삼고 싶어요. 그래야 제 삶이 좀 더 숭고해지고 가치 있지 않을까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젊은 세대들이 좀 더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서 정의로운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요즘 학생들은 취업 등으로 굉장히 힘들다면서요. 돈이나 직장, 혹은 편법에 연연해하는 사고방식이 만연한 것 같아 걱정이 돼요. 경주마처럼 너무 성공만을 위해 시야를 좁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에게 중앙대란?

“한 사람의 책임 있는 사회인이자 의사로서 자랄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어준 곳이에요. 우연히 선택한 곳이지만 좋은 교수님, 선후배,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거든요. 오랫동안 기억 저편에 존재했지만 가끔 학교 소식을 들으면 반가운 마음이 저절로 들더라고요. 중앙대 졸업생으로서 첫 여성 군병원장으로 취임했다고 축하의 말씀을 전해주신 학교 관계자 분들께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요. 졸업생과 학교는 서로의 발전을 바라는 그런 사이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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