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인터뷰는 2015년 10월 중대신문 인터뷰 '중대신문이 만난 사람'에서 전재하였습니다.]
스크린을 장식하고 있는 수많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TV를 통해 방영되는 영상물은 결코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수없이 많은 기획과 회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완성된 작품 뒤에는 연기자를 포함한 많은 스텝들의 노고가 숨어있다. 작품에 전면으로 등장하는 연기자가 아닌 이상, 스텝은 시청자에게 기억되기 힘들다. 하지만 백홍종 동문(신문방송학과 86학번)은 카메라 하나만으로 늘 대중과 소통하고 있다고 말한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들 뒤에서 묵묵히 카메라로 소통해온 그를 만났다.
테크닉과 노하우는 차후의 문제
사람을 담아야 한다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어떤 이야기에서든, 우리는 이미 주인공이 행복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은 만인에게 선망받는 배역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번호에 만난 백홍종 동문은 행복한 주인공보다는 이름 없는 아웃사이더로 남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는 누군가에게 크게 집중 받고 싶어 하지도,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필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는 인터뷰 내내 그저 ‘조금 손해 볼 여유만 있다면 세상은 즐겁다’라는 말로 역지사지의 교훈을 재차 강조했다.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기자님의 전화를 받았어요. 인터뷰 요청을 받고 사실 좀 주저했죠. 제 이야기가 그리 훌륭한 사연도 아니고, 제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사람이 아닌 듯해서…. 그리 대단하지 않은 사람이지만 궁금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맛있는 밥을 사주고 싶었는데, 인터뷰 끝내고 식사나 같이합시다.(웃음)”
-귀한 시간 내주어 감사하다. 런던에는 무슨 일로 다녀오신 건가.
“‘명견만리’라는 강의 프로그램 준비를 위해 다녀왔어요. 강의 내용으로 한류의 활성화 및 확산을 위한 방안에 대해 이야기 할 예정이거든요. 프랑스의 파리, 영국의 런던으로 송승환 난타 기획자와 함께 다녀왔죠. 송승환 기획자는 지금까지 동남아 지역에서 공연을 하고 대학 강의도 하고 계신 분인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 백감독이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카메라를 뒤로 메고 직접 배우와 함께 뛰고 있다. |
“제 직업이 촬영감독이다 보니 촬영과 영상에 대한 부분에 집중을 해서 보게 되더라고요. PD와 연출가도 함께 다녀왔는데, 한류의 확산을 어떻게 영상에 담을 것인가 고민을 많이 하고 왔어요. 음악·영화·패션까지, 한류가 세계적으로 뻗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정확한 시각으로 지금의 한류 문화 트렌드를 짚고 싶은 마음에서요. 소득이 있었던 것 같아요.”
-현재 계획하고 있는 다큐멘터리도 있다고 들었는데.
“임진왜란에 대한 총 5부작의 다큐멘터리를 계획 중이에요. 제목은 변동 가능성이 있지만 ‘삼국 대전 임진왜란 1592’로 생각하고 있어요. 1,2부는 드라마처럼 찍고 3,4부는 중국에서 촬영할 예정이에요. 마지막 5부는 미처 담지 못한 촬영과정을 보여주려 해요. 2,3년 기획으로 준비하고 있는데 1부는 현재 촬영이 다 끝난 상태죠. 조금 있다가 또 회의를 가야 해요. 2부 콘티 회의가 있었는데 회의 도중 잠깐 나온 거라서.(웃음)”
-많이 바쁜 것 같다. 외국으로 자주 출국하는 편인가.
“지금까지 약 60개국을 방문했어요. 비행기를 많이 탔다고 저를 흔히 국제적인 촬영감독이라 부르지만, 제가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그저 제 일을 즐기며 열심히 일하다 보니 외국으로 나가는 촬영이 많아진 것뿐이고 큰 기획의 촬영까지 맡게 된 거라 생각하거든요.”
-상당히 겸손한 것 같다. 촬영을 할 때도 이런 자세로 임하나.
“그런 것 같아요. KBS 촬영감독이라는 위치에 있다고 자만하고 으스대기보다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즐겁게 일하기도 하죠.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면 즐거워지잖아요. 국내 메이저 방송사인 KBS에 있다 보면 다른 이들에 비해 좋은 프로그램을 접할 기회가 많아요. 그런 기회들을 잘 잡아 더 열심히 일하려고 노력하죠. 그러다 보니 2007년에는 ‘차마고도’로 상도 받게 됐던 것 같고요.”
-안 그래도 KBS 다큐멘터리 차마고도 이야기를 하려던 참이다. 촬영 당시 이야기를 들려 달라.
▲ ‘학교 가는 길’ 촬영 당시 혹한 속 동상으로 초췌한 백감독. |
-당시 영상미가 돋보였다는 평이 많았다. 국내외 내로라하는 상을 휩쓸었는데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차마고도는 말과 함께 스스로 길을 만들며 다니는 이 시대 마지막 히말라야의 마방에 대한 이야기에요. 방영된 이후에 다양한 상을 참 많이 받았어요. 상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막상 상을 받으니 죄송한 마음이 앞서더라고요. 과분한 상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현장을 즐기며 촬영하다 보니 아름다운 영상을 담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힘든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즐거웠다면 모를까.”
-위험한 촬영으로 가족들의 걱정이 많을 것 같다.
▲ ‘학교 가는 길’ 촬영 당시 혹한 속 동상으로 초췌한 백감독. |
-즐겁다는 말을 자주 쓰는데. 즐겁다고 표현하기엔 촬영지의 지형이 너무 험난하지 않나.
“외부 언론에서는 저를 오지 전문 촬영감독, 목숨 걸고 일하는 감독이라 말해요. 그런데 제가 촬영을 위해 다녀왔던 곳이 전부 오지는 아니었거든요. 히말라야, 티베트와 같이 험난한 곳들만 언론에 부각되어 한순간에 목숨 걸고 일하는 영웅이 되어 버렸어요.(웃음) 실제로 촬영을 하다 절벽에 미끄러지기도 했고, 묵고 있던 숙소를 빠져나온 다음 날 건물이 무너진 적도 있긴 하죠. 그래도 저는 비교적 편안한 환경에서 일한 편에 속해요.”
“솔직히 말하면 신문방송학과는 제가 세운 호구지책 중 하나였어요. 학력고사 점수에 맞춰 중앙대 신문방송학과에 들어갔죠. 학창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구류 3인’이라고 해서 학생운동을 했던 것이 생각나요. 그 외에는 저를 자극시키는 특별한 기억이 없어요. 3,4학년이 되면서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공부를 했고 저학년 때는 집이 부유한 편이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던 것이 다예요. 생각해 보면 장사, 막일, 세차 등을 했던 경험이 훗날 저에게 많은 도움을 준 것 같네요.”
-어떤 점이 도움이 됐다는 말인가. 자세히 알려 달라.
“궂은일을 해본 경험이 약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어요. 험난한 오지로 촬영을 나갈 일이 생겼을 때, 별다른 거부감이 들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인 것 같아요. 촬영현장에서 인분을 만지는 원주민들에게 마음을 열 수 있게 된 것은 염소와 소를 키우면서 접했던 환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만약 제가 있는 신분과 지위를 생각하며 상대를 하찮게 여겼더라면 그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 주지 않았을 텐데,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태도로 다가가니 서로 가까워질 수 있던 거예요.”
▲ 드라마 ‘브레인’ 촬영 당시 모습. |
“필요한 기술을 배우기 위해 6개월간 MBC 아카데미에 다녀 보기도 했지만 입사하고 현장에서 익힌 것이 더 많았어요. 전공수업에서는 배울 수 없는 내용을 실전에서 배웠죠. 촬영뿐만 아니라 어깨너머로 기획, 편집, 생방송 진행까지 다 해보았거든요. 이제 연차가 좀 쌓이니까 웬만한 기획에도 자신감이 생겨서 연출가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편이에요.”
-기획은 촬영감독의 영역이 아니라 연출자와 PD가 하는 일 아닌가. 차이점을 알려 달라.
“촬영감독이라고 해서 그대로 찍기만 하면 감독으로서의 자질이 없는 거죠. 그건 그냥 ‘찍사’ 아닌가요? 촬영감독은 영상에 색을 입히는 사람이에요. 20여년간 드라마, 다큐멘터리 촬영감독을 하다 보니 이제는 제가 경험한 것을 연출자에게 이야기해주게 되는 경우도 생기더라고요.”
-PD가 될 뻔한 적도 있었다고.
▲ 2013년 방영된 ‘의궤, 8일간의 축제’는 2014년 영화로 개봉되기도 했다. |
“전직시험을 통해 PD가 될 뻔했지만 결국 촬영감독으로 남았어요. 눈에 보이는 성과는 PD가 더 많이 낼 수 있겠지만, 현장에서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촬영감독이 훨씬 제 적성에 맞는 것 같아서요. 좀 잘난 척하는 말로 들릴까 봐 말하기 조심스러운데, 저는 저와 같이 일하면 결과물이 달라진다는 생각으로 일해요. 바둑으로 치면 훈수를 두는 사람이랄까. 비평가와 조력자의 역할을 동시에 하면서 촬영에 임하고 있죠.”
“기본적으로 영상의 프레임을 구성하는 것이 촬영감독의 역할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이상이죠. 현장에서 촬영감독이 작품을 어떻게 리드하느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죠. 촬영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다 보면 ‘갑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말을 조심해야 할 때도 있어요. 제가 맡은 프로그램들은 현장 분위기가 대부분 좋았어요. 현장 분위기를 매끄럽게 리드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노하우는 드라마를 하면서 알게 됐죠.”
-촬영이 없는 날에는 주로 무엇을 하며 지내나.
“영화도 많이 보고 주로 사진 정리를 하며 지내는 편이에요. 내년에는 책을 한 권 내려고 생각 중인데 글재주가 없어 고민이에요. 촬영감독으로서 겪었던 일들을 주제로 하면 재미가 없을까 봐 포토멘터리 형식으로 출판을 해볼까 고민하고 있어요.”
“기록은 기억에 우선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제껏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과의 기록을 남기고 싶어서요. 의도하지 않게 찍힌 사진이라도 보는 감정과 시간, 공간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사진인 것 같아요. 사진이나 카메라를 통해 앞으로도 다른 사람과 호흡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과의 호흡을 위해 어떤 촬영이라도 마다치 않겠다는 뜻인가.
“과거 KBS의 ‘암흑 속의 질주’라는 다큐멘터리가 생각나요. 4박 5일 동안 시각장애인이 250km의 거리를 뛰는 레이싱 프로그램이 저로 하여금 많은 것을 느끼게 했죠. 요즘 대학생들도 오지로 배낭여행을 가곤 하잖아요. 남들이 개인적인 시간을 들여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하는 경험을 저는 월급을 받으면서 공짜로 하고 있어요. 주어진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죠. 어떤 곳이든, 어떤 촬영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임할 예정이에요.”
-마지막으로 20여년간 촬영감독으로서 뷰파인더로 들여다본 세상은 어땠나.
“추상적이고 형식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저는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비춰올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어요. 영상을 본 이들마다 전달받는 내용들은 다 달랐겠지만, 제가 보여준 세계가 적어도 모든 사람에게 행복한 메시지로 다가갔길 진심으로 바라요.”
차마고도 1편 <마지막 마방>, 4편 <천년염정> ,2007년 생로병사의 비밀 <남자의 몸>,2007년 환경스페셜 <얼음왕국의 생존자>, 2008년 <아프리카의 심장, 빅토리아 폭포>, KBS 스페셜 <종달새의 비상>, 2012년 <학교가는 길>, 2014년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1990년 <태조왕건>, 2000년 <학교 4>, 2001년 <언제나 두근두근>, 2002년 <상두야 학교가자>, 2003년 <북경 내사랑>, 2004년 <오! 필승 봉순영>, 2004년 <천추태후>, 2009년 <구미호 여우누이뎐>, 2010년 <근초고왕>, 2010년 <브레인>,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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