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인터뷰는 2015년 11월 중대신문 인터뷰 '중대신문이 만난 사람'에서 전재하였습니다.]
지난해 드라마 ‘미생’의 등장으로 온 국민이 직장인의 비애에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면 요즘은 예쁜 배우 황정음의 통통 튀는 연기가 연일 검색어에 오르내린다. 지난주에 첫 방송을 마친 드라마 ‘풍선껌’은 시청자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지금 드라마에 푹 빠졌다. 집에서 눈으로 즐기는 드라마 한편이면 밖에서 즐기는 문화생활이 부럽지 않다. 주찬옥 작가(문예창작학과 76학번)는 이런 시대에 시청자들의 문화생활에 톡톡히 기여했다. MBC 드라마 베스트셀러극장 ‘매혹’으로 데뷔해 28년간 작품 활동을 해온 그녀를 만나봤다.
우연히 시작한 일
열심히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다영한 장르와
소재를 지닌 드라마가
공존하는 방송이 되길
소재를 지닌 드라마가
공존하는 방송이 되길
계략에 휘말려 우연히 하룻밤을 보낸 남녀가 임신이라는 후폭풍을 맡게 되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운널사)’. 초입부터 엔딩까지 우연적인 사건전개로 두 사람이 운명적인 관계임을 강조하지만, 정작 해당 드라마를 탄생시킨 주찬옥 작가는 운명이라는 것이 그리 거창한 것도, 대단한 것도 아니라 말한다. 어찌 보면 운명은 우연성이 모인 한 다발일 뿐이라는 그녀. 자신의 드라마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드라마를 쓰게 된 것도 말야…. 사실은 우연적인 계기에 의해서였지. 우연히 다가온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그 일이 내 천직이 되고 운명이라고 생각해 지금까지 하고 있는 것 같거든….”
‘운명이란 거, 거창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거 같아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이면 괜찮다. 그 사람 아니면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마음이 운명인 거 같아요.’
-드라마 운널사 여주인공 미영의 대사 中-
-드라마 운널사 여주인공 미영의 대사 中-
-학교 근처에서 보자고 했다. 자주 모교에 방문하는 편인가.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문창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안성캠에서도 수업하고 서울캠에서도 대학원 수업을 맡고 있죠.”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문창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안성캠에서도 수업하고 서울캠에서도 대학원 수업을 맡고 있죠.”
-최근 종영한 ‘운널사’ 잘 보았다. 긴 호흡의 작품을 쓰려면 차분한 성격과 인내심이 필요할 것 같다. 원래부터 그런 성격인가.
“어릴 적부터 내성적이고 말주변이 없던 저는 굳이 나서서 의견을 드러내지 않아요. 지금은 교수도 하고 작가도 하고 저를 남에게 드러내야 할 때가 많아 성격이 좀 변하긴 했어도, 뒤에 서서 차분히 다른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좋아요. 이게 나름 장점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을 많이 보게 된다고 해야 하나? 이야기를 주도하게 되면 ‘내’가 강해져 주변의 캐릭터들과 상황을 볼 수 없게 되거든요.”
-분석력과 관찰력이 좋은 드라마를 쓰는데 일조했겠다.
“그렇다고 봐야 하나요?(웃음) 그냥 나랑 성향이 잘 맞았던 거지.”
-문창과에서의 수업도 적성에 잘 맞았나.
“적성에 맞았죠. 중앙대 문창과는 유명한 문학인을 많이 배출한 독보적인 학과였거든요. 수업에서 주로 독서와 창작활동을 했었는데 아주 재미있었어요. UBS 방송국에서도 활동했었어요. 학교 수업에서 문학적인 소양을 길렀다면 UBS 방송국에서는 음악적인 지식이나 감성을 배운 것 같아요. 작가에게 필요한 기본 자질을 그곳에서 길렀죠.”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아주 대견해. 그때는 내가 인생의 마지막 배터리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에 미친 듯이 매달렸던 것 같아. 친구 집에 놀러 가서도 귀퉁이에 앉아 정신없이 원고를 썼지.” 대학교 3학년 시절 라디오 구성작가로 방송 일에 첫걸음을 뗀 그녀. 학교수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졸업 논문까지 써가면서도 일을 계속했다. 지금처럼 일이 세분화되어 막내 작가가 따로 있지 않았던 시절, 그녀는 프로그램 전체 대본을 혼자 원고지에 손으로 작성했다고.
-구성작가는 업무 강도가 높다고 들었다. 일을 그만둘 생각을 한 적은 없었나.
“제가 87년도부터 일을 시작했거든요. 꽤 어린 나이지만 책임감이 강한 편이라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정해진 양을 다 했죠. 문학과는 다른 낯선 장르였는데도 저에게는 방송일이 재밌게 다가왔어요.”
“제가 87년도부터 일을 시작했거든요. 꽤 어린 나이지만 책임감이 강한 편이라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정해진 양을 다 했죠. 문학과는 다른 낯선 장르였는데도 저에게는 방송일이 재밌게 다가왔어요.”
-일만 하느라 대학생 시절의 낭만이라고는 못 느꼈겠다. 연애는 잘했나.
“못했죠. 당연히.(웃음)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하고 학교를 열심히 다녔어요. 시간이 부족했던 와중에도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있어 신춘문예에도 몇 번 투고했었죠. 그때 쓴 작품이 최종심까지도 올라갔었는데. 생각해 보면 제가 소설을 좀 썼던 것 같기도 하고.(웃음)”
-졸업하면서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다. 우연적인 힘에 의해서였나.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결국 우연이 운명이 된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 겸 구성작가 일을 시작했는데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자연스레 드라마를 쓰게 됐거든요. 대학교 시절에는 글에 대한 갈증이 항상 있었어요. 드라마를 쓰다 보니 이 일이 저에게 맞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드라마 작가는 프리랜서다. 일이 없어 불안했던 적은 없었나.
“일정이 계획적이지 못하고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프리랜서라고 해서 불안했던 적은 없었어요. 일을 시작한 초창기에도 라디오 일과 드라마 일을 병행했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고요. 오히려 남들보다 수입이 많았다면 많았지. 항상 좋은 대본을 쓰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은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시간들이 결국은 일하는 것이었으니까.”
-80년대만 해도 시와 소설의 시대 아니었나. 드라마는 생소한 개념이었을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연속극 형태의 드라마는 식모들이 보는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어요. 드라마 작가 지망생들이 넘쳐나는 지금과 달리 당시 드라마 작가는 낯선 직업이었거든요. 80년대 후반부터 대중문화가 발전하면서 덩달아 방송환경도 좋아졌죠. 한국문화가 빠른 속도로 세련되어지기 시작하면서 미니시리즈들도 많이 생겼어요.”
-첫 드라마 ‘매혹’이 방영된 후 어떤 기분이었나.
“학교에서 배운 거라곤 시와 소설이 다였던 저라, 일을 시작한 초기에는 방송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어요. 연고도 없는 방송계에서 대본 쓰는 방법이나 장면을 구분하는 방법조차 몰랐던 거죠. 지문에 쓴 소품들을 스텝들이 정확하게 찾아서 갖다 두는 것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어요. 유명한 감독,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도 굉장히 신기했었고.”
-90년대에는 여성주의 작가라는 말도 들었다.
“제가 다룬 작품들 중 여성을 다루는 작품이 많았기 때문에 페미니스트나 여성주의 작가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은 것 같아요. 특별히 여자로서 억압을 받았다거나 투철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작품들을 쓴 것은 아니에요. 딸 많은 집에서 자랐지만, 꽤 똘똘한 딸이라 사랑도 많이 받았었고, 학교나 직장에서도 여자라고 차별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죠. 그저 성향 자체가 독립적인 스타일인 데다가 딸이 많은 가정환경에서 자라 여자 이야기가 익숙했어요. 익숙한 여성상을 드라마에 반영하다 보니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가 나온 것 같아요.”
-스스로도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이라 생각하는가.
“네, 제가 조금 당당하고 그런 편이죠?(웃음)”
-작가 지망생들이 워낙 많아진 것 같다. 누구나 한번쯤 인기 작가를 꿈꿔 보곤 한다.
“정말 그렇더라고요. 그만큼 좋은 인재들이 많이 몰리고 있다는 뜻이에요. 이 직업은 전문성을 지닌 직업이에요. 활자 시대가 지나고 영상의 시대가 오고 있는 지금, 앞으로 계속 발전하고 문화의 중심을 차지해 나가겠죠. 중앙대 문창과에서는 교수진의 확보와 양질의 수업개설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유능한 교수를 초빙해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해 주려고도 하고 있고요. 서울캠에서도 문창과 수업들이 많이 개설되면 참 좋을 텐데.”
김치 싸대기, 사랑하는 남자가 알고 보니 친오빠. 점 하나 찍으니 전혀 다른 사람. 요즘 드라마를 보고 있자니 ‘이건 진짜 그냥 드라마구나’ 하게 된다. “막장…? 그런 드라마의 등장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 아버지를 죽이고 엄마와 결혼한 오이디푸스는 어찌할 것이며, 남편이 죽자 시동생과 결혼한 햄릿은 어찌할 거야. 자극적인 소재가 들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막장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 그 소재를 통해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느냐, 심리와 감정을 다루고 있느냐가 중요한 거야.”
-요즘 드라마가 시청률 전쟁 때문에 이상해진 것 같다.
“막장이라는 단어가 언제 나온 건지 알아요? IMF 이후에 등장한 거라고요 이 단어가. 그전 드라마들은 사는 이야기를 담는 고유의 향기가 있었어요. IMF 이후에 기업들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방송에서 광고가 빠지게 되었죠. 시청률 높은 드라마에만 광고가 몰리다 보니 자연스레 시청률 전쟁이 시작되었고 방송은 시청률 제조기로 전락해 버리고. 진짜 막장 드라마는 자극적인 설정으로 목소리만 높은 드라마, 단편적인 인간묘사로 충돌만 보여주는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근데 또 요즘은 막장이 줄어드는 추세 같던데.”
“막장이라는 단어가 언제 나온 건지 알아요? IMF 이후에 등장한 거라고요 이 단어가. 그전 드라마들은 사는 이야기를 담는 고유의 향기가 있었어요. IMF 이후에 기업들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방송에서 광고가 빠지게 되었죠. 시청률 높은 드라마에만 광고가 몰리다 보니 자연스레 시청률 전쟁이 시작되었고 방송은 시청률 제조기로 전락해 버리고. 진짜 막장 드라마는 자극적인 설정으로 목소리만 높은 드라마, 단편적인 인간묘사로 충돌만 보여주는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근데 또 요즘은 막장이 줄어드는 추세 같던데.”
-줄어드는 추세라니. 불과 어제 본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돌연 불치병 판정을 받아 무척 당황스러웠는데.
“점차 상황이 나아지겠죠. 장르도 다양해지고 계속 변화하는 추세니까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올 거예요. 요즘은 오락적인 기능이 많아진 것 같아요. <암살>이나 <베테랑>과 같은 영화들도 사회적인 문제를 재밌게 그려내잖아요. 재벌 3세를 무찌르고 과거의 독립군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들을 소재로 결국은 ‘재미’를 이야기하고 있다고요. 이런 움직임이 나쁘다고 보지 않아요.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로 시청자를 분노에 떨게 하는 것보다 가벼운 느낌으로 주제를 던져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잖아요.”
-이런 철학 덕분인지 주찬옥 표 드라마에서는 잔잔한 분위기와 감성이 묻어나는 것 같다. 대본 쓸 때 주안점을 두는 부분은.
“소재와 장르의 다양성이요. 제가 지금껏 써왔던 드라마들의 소재도 다양한 편이에요. 드라마 ‘환생’에서는 윤회문제까지 다뤄보기도 했으니까. 잘하는 장르만 계속 쓰면 그건 자기복제라고 생각해요. 실력이 늘 수 없죠.”
-작업할 때 받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소하는 편인가.
“원고가 나오지 않아 끙끙거릴 때 가장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가요. 그런데 엄청 스트레스를 받다가도 대본을 넘기게 되는 순간 자연스럽게 배출이 되더라고요. 문학용어로 카타르시스라고 하죠? 대본의 장이 넘어갈 때 느껴지는 그 순간의 후련하고 시원한 감정이 저에게는 스트레스 해소법이에요. 술을 마신다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작품은 주로 작업실에서 쓰는 편인데 현재 작업실은 용산에 있어요.”
-드라마를 쓸 때 어떤 흥행요소를 생각하면서 쓰는지 궁금하다.
“최근 트렌드가 어떤 것인지 끊임없이 생각해요. 작가가 쓰는 것에 시청자를 맞추고 시청자가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시청자가 보고 싶어 하는 것, 원하는 것을 공부하면서 완성도 높고 다양한 캐릭터도 보여줄 수 있어야 해요.”
-그런 고민의 결과물로 드라마 운널사의 떡방아 찧는 장면이 탄생한 것인가.
“남녀가 하룻밤을 보내는 장면을 재미있게 표현하려고 했던 건데 이슈가 됐더라고요. 그 아이디어는 사실 연출이 낸 것이었어요. 보기에 많이 우스꽝스러웠나요? 좀 재미있게 다가가고 싶었던 건데.(웃음)”
-당시 멜로드라마를 쓰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멜로코드인데, 그래서인지 참신하고 재미있게 쓰기가 참 어려웠죠. 연애심리도 잘 알아야 하고. 많은 작가 지망생이 멜로물에 도전하지만 그만큼 눈에 띄게 잘 쓰기도 힘든 것 같아요.”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예전처럼 드라마로 사람들을 교화시킬 필요는 없어요. 가르치지 않아도 요즘 사람들은 수준이 높아 다 알고 있거든요. 그냥 드라마의 행간에 ‘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짝 던져주면 돼요. 앞으로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막장도 있고 오락도 있고 문학적인 향기도 있는 드라마의 공존. 입맛에 따라 골라 보는 재미가 있어야죠. 무료하고 메마른 현대인들에게 드라마가 소소한 활력소를 주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람입니다.”
-본인의 작품 중 가장 잘 썼다고 생각되는 작품 하나 알려주세요.
“아이쿠, 그런 질문은 하지 말자고요. 그냥 쓸 때 최선을 다해 써요. 결과와 상관없이 끝나면 후련하고 아쉬운 감정이 남아요. 드라마의 흥행은 운과 하늘에 달려 있는 거라서.”
“아이쿠, 그런 질문은 하지 말자고요. 그냥 쓸 때 최선을 다해 써요. 결과와 상관없이 끝나면 후련하고 아쉬운 감정이 남아요. 드라마의 흥행은 운과 하늘에 달려 있는 거라서.”
-최근 보는 드라마가 있나.
“최근 종영한 작품 중 ‘오 나의 귀신님(오나귀)’과 ‘미생’을 재밌게 봤어요. 특히 오나귀는 익숙하지 않은 소재를 재밌게 잘 풀어냈더라고요. 저도 다양한 작품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요즘은 판타지와 SF에 관심이 있죠.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에는 중년 부부의 이야기가 담길 것 같아요. 학교 수업도 계속할 생각이고 종종 강연에 나가 학생들에게 아낌없는 조언도 해주고 싶어요.”
-당신에게 중앙대란?
“중앙대는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곳이에요.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교수도 하고 있으니까 인생의 상당 부분을 함께했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더 애정이 생기는 학교고요. 현재 제가 기획하고 있는 드라마에 2명의 중앙대 출신 보조작가를 두고 있어요. 나중에는 드라마 작가를 지망하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제자들을 모아 드라마 팀을 만들어 운영해보고 싶어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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