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인터뷰는 2015년 12월 중대신문 인터뷰 '중대신문이 만난 사람'에서 전재하였습니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이 힘든 직업인 이유는 아마도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데뷔한 이민호 동문(연극전공 12학번)은 배우로서의 이민호와 20대 청년 이민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며 한층 성숙해져 왔다. 배우의 길에 들어선 지 어느덧 18년. 드라마 <순풍산부인과>로 시작해 <마법전사 미르가온>, <구미호-여우누이뎐>을 거쳐 <해를 품은 달>, <옥탑방 왕세자>, 최근 종영한 <화정>까지. 영화와 뮤지컬을 합하면 크고 작게 활약한 작품이 40편이 넘는다. 타인의 시선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진, 차근차근 꾸밈없는 모습으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는 23살 청년 이민호를 만나보았다.   
 

이민호 동문.jpg

 사진 고다은 기자

 

브라운관 활보하던 다섯 살 정배
눈빛 살아있는 성숙한 배우로 거듭나다
“믿고 보는 배우로 시청자들과 오래 호흡하고 싶다”

 

 

‘맙소사’를 외치던 정배, 연우를 지켜주던 꽃도령 양명. 대중의 머릿속 이민호는 어떤 모습일까. 사실 이민호에게 그건 중요치 않아 보였다. 한적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대중의 시선을 넘어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솔직담백하게 마주하고 있었다.

 

 

“촬영 현장의 아역 배우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어릴 때 제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해서….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잘 알기에 저도 모르게 부모의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같아요. 추운 겨울에 덜덜 떨며 대기하고 잠도 못 자며 고생하는 모습을 보아도 하지 말라고 말릴 수 없어 안쓰럽죠.”

 

 

  -현재 중앙대 12학번이다. 대학생활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
  “흑석에는 수요일과 목요일에만 오고 있어요. 동기들과 어울려 다니며 학교 근처 카페도 가고 가끔 점심으로 학식도 먹고요.”

 

  -1998년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순풍산부인과>의 정배 역으로 데뷔했다. 데뷔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주변의 권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부모님의 뜻이 컸어요. 할아버지의 반대로 배우의 꿈을 이루지 못한 아버지가 제 등을 떠밀었죠. 저를 통해서 못다 한 꿈을 이루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은 ‘끼’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직업 아닌가.
  “끼가 좀 있었던 것 같아요. <순풍산부인과>에 출연할 수 있게 된 계기도 감독님 눈에 띄어서였죠. 원래 저는 미달이, 의찬이의 친구 역할로 출연할 예정이었는데 감독님이 저를 보시고 정배 역할을 만들어 ‘순풍 아역 3인방’이 탄생하게 됐어요.”

 

  -순풍 아역 3인방에 그런 비화가 있는지 몰랐다.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좋게 봐주신 덕분에 출연 기회를 얻어 감사했죠.”

 

  -당시 정배는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지 않았나. 그때 이야기를 더 해달라.

   
 

  “<순풍산부인과>는 3년 동안 촬영한 작품이에요. 게다가 첫 작품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저에게는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작품이죠. 당시는 촬영장에 연기하러 간다는 생각보다 형, 누나들과 장난칠 생각에 즐거웠던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촬영 현장에서 제 역할을 다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힘들었던 점을 꼽자면.
  “잠을 많이 못 잤던 것이 힘들었어요. 주로 선배님들이 나오시는 중요한 장면을 먼저 찍다 보니 아역 배우들은 새벽까지 기다려야 했죠. 자다가도 저를 부르면 졸음을 참으며 촬영해야 했어요. 졸린 눈을 비비다가 혼나기도 하고요. 그 와중에 학업과 연기를 병행해야 했으니 바쁜 나날을 보냈던 것 같아요.”

 

  -지친 적은 없었나. 연기자라는 직업에 회의감이 들었던 시기도 있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사춘기가 되면서 고민이 많아졌어요. 어린 나이에 부모님 손에 이끌려 연기를 시작했던 터라 내가 진정으로 선택한 길이 아닌 것 같았어요. ‘정말 내가 원하는 길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죠.”

 

  -그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나.
  “나 자신에게 더욱 집중했어요.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생각해 봤죠. 그래서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 때는 축구 선수를 꿈꾸기도 했어요.”

 

  -안그래도 특이한 이력을 발견했다. 2008년 FC 서울컵 주니어챔피언십에서 득점 선두를 기록했던데.
  “축구를 되게 좋아해요. 잠시 연기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하던 중학교 때는 축구부가 있는 학교에 진학해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죠. 그때 잠깐 나갔던 대회 기록이 훗날 기사화되어 괜히 민망하더라고요. 돌이켜보면 결국 그런 과정을 거쳐 배우의 길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선 것 같아요.”

 

 

어느덧 23살의 청년이 된 어린 정배는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성장해왔다. 어린 나이에 인기를 얻었지만 더욱 학업과 연기를 충실히 병행하며 매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아역 배우들이 방송 활동으로 인해 학교생활을 못하거나 그 연령대의 소소한 추억을 쌓지 못하는 것이 가장 걱정돼요. 저는 그런 점이 싫어서 오히려 더 활발히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고 많은 추억을 쌓으려고 노력한 편이었어요. 아역배우들이 그 나이에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학교생활에 충실한 학생이었나 보다.
  “무엇이든 열심히 노력하는 편이었어요. 축구부 주장을 맡아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했죠. 교내 수련회나 수학여행도 꼬박꼬박 가려고 했고요. 덕분에 저는 연예인 친구들보다 학교에서 사귄 일반인 친구들이 더 많죠. 장기자랑 때 친한 친구들과 아이돌 그룹 춤을 춰서 1등을 했는데 <해를 품은 달> 이후로 그 동영상이 새삼 다시 뜨더라고요.”

 

  -친화력이 좋은 것 같다. 남에게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인가.
  “사실 제가 소심한 A형이라 남들에게 다가가는 걸 망설이는 편이에요. 맘에 드는 이성이 있어도 어려워하는 편이죠. 하지만 학교생활을 할 때는 친구들이 먼저 다가오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제가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요. 그 결과 지금은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있죠.”

 

  -남과 친해지는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가식 없이 행동해요. 대중 앞에서는 항상 바르면서도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잖아요. 친구들 앞에서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더라고요. 평소 술을 좋아하는 편이라 친구들과는 술자리에서 즐겁게 어울려 놀아요.”

 

  -본인 말대로 밝고 활기찬 이민호 본연의 모습이 느껴지는 것 같다.
  “성격이 많이 변했어요.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때만 해도 남을 많이 의식하는 편이었거든요. 친한 사람들 앞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어딜 가든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노력했죠. 그런데 어른들께서 ‘너는 네 나이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다’며 ‘그렇게 행동하면 결국 너한테도 독이 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본래 모습을 감추고 의젓해 보이려고만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지금은 20대를 즐기며 저만의 매력을 솔직하게 보여주려고 해요.”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 같아요. 어릴 때는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즐거운 마음에 연기를 했지만 <해를 품은 달> 이후로는 마음가짐이 달라졌어요. 더 진지해졌다고 해야 하나. 참여하는 작품마다 새롭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배우로서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 어린 양명 역을 맡아 꽃도령의 면모를 뽐낸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성인이 되며 이미지 변신에 대한 부담감이 컸을 것 같다.
  “아무래도 아역 출신이다 보니 어떻게 하면 성인 연기자로 자연스럽게 안착할 수 있을까 고민이 컸어요. 그 고민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고요. 처음에는 아역 티를 벗으려고 일부러 어른스러운 척도 했는데 노력한다고 노련미가 생기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어른스러움은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것임을 깨달았죠.”

 

  -맞다. 지금 23살이니 성숙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그런데 아직 미필이다. 한국 남자라면 입대에 대한 고민을 피할 수 없을 텐데.
  “정곡을 찌르시네요.(웃음) 언제쯤이 좋을지 시기를 보고 있어요. 하지만 아직은 연기에 대한 갈증이 커서 배우로서 좀 더 성장하고 입지를 다진 뒤에 입대하고 싶어요. 학교도 더 다녀야 하고요.”

 

  -배우로서 큰 성공을 하겠다는 마음에 조급해지지는 않나.
  “이대로 제 길을 걸어 나가다 보면 언젠가 사람들의 인정을 받을 날도 올 거라 믿고 있어요. 아직 나이도 어리니까요. 다양한 작품을 하다 보니 아역 배우 이미지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고요. 저 자신이 성숙해지면서 노련미도 점점 생기는 것 같아요.”

 

  -지금껏 가장 기억에 남는 출연작은 무엇인가.
  “<해를 품은 달>이죠. 그 작품을 계기로 연기의 재미를 다시 깨우치게 됐어요. 성실하고 착실하게 연기에 임해 배우로서 한층 성장하는 기회가 된 것 같아요. 사실 기억에 남는 작품이 한두 개가 아니라 하나만 꼽기 어렵네요.(웃음)” 

 

 -출연작이 정말 많다. 인상 깊은 작품을 더 말해달라.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와 영화 <런닝맨>도 기억에 남는 작품이에요. <옥탑방 왕세자>는 다시 돌아가서 찍고 싶을 정도로 너무도 즐겁게 촬영했어요. 코믹한 내용이다 보니 서로의 애드리브에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형들과 현장에서 만드는 에너지가 굉장했어요. 영화 <런닝맨>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데 제게 아쉬운 작품이라 그런 것 같아요.”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한 번에 외우는 능력자 송만보 역을 맡았다.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무엇인가.
  “20살이 되어 신하균 선배님과 함께한 작품인데 주연 역할에 대한 부담감이 컸어요. 당시 뮤지컬 등 다른 활동을 병행하고 있을 때였거든요. 스케줄은 바쁘고 연기는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아 마음고생을 했어요. 불과 3년 전이지만 좀 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작품에 임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하는 좋은 연기란 무엇인가.

   
▲ 배우 신하균(차종우 역)의 아들 차기혁 역을 맡아 함께 호흡을 맞춘 영화 <런닝맨> 의 한 장면.

  “좋은 연기란 무엇보다도 거짓 없는 진실한 연기라고 생각해요. 진실성 하나만으로 승부하는 그런 연기요. 많은 선배님들도 연기는 기술이 아니라 진실성 하나면 된다고 말씀하시죠.”

 

  -진실한 연기라니. 참 어렵게 느껴진다.
  “사실 저도 아직 어려워요. 나름대로 진심을 담아 연기했는데 거짓된 연기를 했다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혼란스럽죠. 언젠가 오정세 형한테 연기를 잘하는 건 어떤 거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정세 형은 좋은 연기를 ‘연기를 하는 것인지, 원래 성격인 것인지 구분이 안가는 경지’라고 정의하더라고요. 저도 그런 경지에 오르고 싶어요. 아직 멀었지만.”

 

  -닮고 싶은 배우가 있나.
  “가만히 있어도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송강호 선배님, 하정우 선배님, 이병헌 선배님의 연기를 본받고 싶어요. 진지하고 묵직한 아우라를 풍기면서도 멜로, 코미디 가릴 것 없이 모든 장르를 잘 소화하시잖아요. 그리고 이번에 함께 촬영하며 친해진 조정석 형도 인간적으로도 훌륭하고 정말 배울 점이 많은 배우라고 느꼈어요.”

 

  -앞으로 맡고 싶은 배역이 있다면.
  “아직 못한 역할이 많지만 특히 영화 <추격자>에서 하정우 선배님이 연기하셨던 사이코패스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그동안 도령, 모범생 등 주로 반듯한 역할을 해왔는데 정반대로 완전히 악랄한 인물을 훌륭하게 소화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그리고 워낙 운동과 몸 쓰는 것을 좋아해서 액션물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제가 연기 욕심이 많죠?(웃음)”

 

  -얼마 전에는 중국에서 촬영을 마치고 돌아왔다고 들었다.
  “좋은 제의가 들어와 중국에서 영화 두 편을 찍게 되었어요, 한중합작 영화 촬영을 위해 중국에 다녀온 것이죠. 다음 달 말에 또 다른 중국 영화를 준비할 예정이에요. 한국에서 잠시 안보이더라도 작품 활동은 꾸준히 하고 있으니 기대해주시길 바라요.”

 

  -중국 진출이라니. 새로운 도전 아닌가.
  “도전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힘들기도 하지만 즐거운 마음이 더 커요. 앞으로 뮤지컬, 예능, 연극 등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이러한 도전들이 쌓여서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될 테니까요.”

 

  -조만간 영화 개봉도 앞두고 있다고 들었는데.
  “영화 <시간이탈자>가 내년 상반기에 개봉해요. 과거와 현재의 두 남자가 꿈을 통해 우연히 서로의 일상을 보기 시작하고, 공통으로 얽힌 한 여자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과거를 추적하는 이야기죠. 저는 강승범 역을 맡았어요.”

 

  -최근 중앙대 홍보대사로도 임명되지 않았나.
  “중앙대에 입학하게 된 것도 큰 영광이었는데 홍보대사 제안이 들어와 깜짝 놀랐어요. ‘내가 과연 홍보대사를 할 만한 자격이 될까’라는 생각도 들었죠. 그간 소녀시대, 김수현, 박신혜 등 굉장한 선배님들이 홍보대사를 맡았잖아요. 그래서 설레고 기대되는 반면 부담감도 커요. 홍보대사로서 열심히 활동하려고 합니다.”

 

  -배우로서 아직 남은 날이 많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은지 말해달라.
  “롱런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를 얻는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겠죠. 어떤 작품이든 무슨 역할이든 제 연기를 믿고 봐주신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당신에게 중앙대란?

  “중앙대는 배우의 길을 함께 걷는 동반자 같은 존재에요. 정말 오고 싶던 곳이었기에 열심히 준비했고 운 좋게 합격했죠. 중앙대에서 저는 지금도 꿈을 키워나가는 중이에요. 아직 2학년이라 학교생활을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 중앙대와 함께 발전하고 성장하면 좋겠어요. 앞으로 학교에서 자주 만나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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