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인터뷰는 2016년 12월 중대신문 인터뷰 '중대신문이 만난 사람'에서 전재하였습니다.]

 

 

대한민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허재다. 드리블, 컨트롤, 절묘한 패스, 리바운드, 어시스트까지 모두 완벽했던 선수. 이런 선수가 또 있을까. 농구 천재의 신화는 1975년, 다소 왜소했던 초등학교 4학년 소년이 어느 특별활동 시간에 처음 농구공을 들게 된 뒤로부터 시작됐다. 김유택(54) 전 중앙대 감독은 그를 ‘고등학교 때부터 모든 포지션을 소화했다’고 기억한다. 당시 체격은 왜소했으나 실력만큼은 그를 이길 자가 없었던 것이다. 이후 중앙대를 거쳐 강동희, 한기범, 김유택 등 최고의 동료 선수들과 ‘기아 왕조’를 구축하고 불혹이 되도록 경기장에서 발로뛰었던 그는 프로농구팀과 TG삼보를 거쳐 비로소 감독으로 돌아왔다. 그의 등번호 9는 결번처리되어 영원히 남겨졌다. 그렇다면 수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농구 대통령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중대신문이 ‘인간 허재’를 만나봤다.

 

연습, 연습
또 연습

30년 농구 외길
 
 
선수에서 감독으로
천재는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허재 동문1.jpg

 

 

이곳은 310관(100주년기념관 및 경영경제관) 앞 농구장. 공강시간 짬을 내어 삼삼오오 농구시합을 하던 학생들 사이로 진짜 농구 대통령이 나타났다. 큰 키로 성큼성큼 다가와 무심하니 슛을 던져버리는 허재에게선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마저 풍겼다.
 
  -오랜만에 모교에 들렀나.
  “아뇨, 가끔 와요. 딱히 일이 있어서 온다기보단 가끔 와서 한번 둘러보고 갈 때도 있고 그러죠.”

  -반갑다. 요즘은 뭐 하고 지내나.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있어요. 요즘은 경기가 없어서 KBL 리그 게임도 보고 선수들도 틈틈이 보러 다니면서 쉬고 있죠. 아 참, 지난달엔 두 아들과 함께 ‘마리텔’에도 출연했는데 혹시 보셨나요?”
 
   
왼쪽 허재, 가운데 둘째아들 허훈, 오른쪽 첫째아들 허웅.
  -안 그래도 방송 재밌게 봤다. 두 아들 다 잘 컸던데.
  “쑥스럽네요. 둘 다 훌륭한 농구선수예요. 애들이 나름 자기들의 위치에서 잘하고 있어서 만족하고 있답니다. 딱히 가르치지는 않았는데 자기네들이 알아서 잘 컸죠.”

  -아무래도 아버지에게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유전자가 그렇다 보니 뭐, 그런가 봐요.(웃음) 자기들도 굉장히 열심히 하고요. 첫째는 아주 정석적으로 하고 둘째는 욕심이 좀 있는 것 같은데 둘이 플레이 스타일은 비슷한 것 같아요. 어쨌거나 두 녀석이 자기 포지션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는 게 제 바람이죠.”

  -본인은 원래 그렇게 농구를 잘했나.
  “제 입으로 이야기하자니 좀 웃긴 것 같고, 주변에선 다들 유망주라고 불렀어요.”

  -대학 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
  “사실 84년도에 입학하자마자 국가대표에 선발돼서 학업보단 운동을 주로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학교생활을 제대로 즐기진 못했던 것 같아요. 세월이 지나고 나니까 우리 과 친구들이나 다른 과 친구들과 좀 더 오래 지내지 못한 부분은 좀 아쉽네요.”

  -국가대표가 됐을 땐 어떤 심정이었는지.
  “굉장히 설레었죠. 어린 나이에 남들이 모두 원하는 국가대표가 됐으니 얼마나 설레었겠어요. 운동선수의 최고 목표는 국가대표였으니까요. 그렇지만 대표팀에 선발된 만큼 실력도 꽤나 쌓아야 해서 벅차기도 했어요.”

  -어떻게 그렇게 잘했던 건가.
  “그건 제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네요.(웃음) 그저 남들보다 더 노력했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다른 선수들이 노력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내 나름대로는 정말 최선을 다했죠. 그러다 보니까 주위에서 인정도 해주고 좋은 실력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대단히 많은 연습량을 소화해야 했을 텐데.
  “네. 정말 많이 했어요. 어렸을 땐 정말 힘들면 관둘 생각도 하고 그랬어요. 그렇지만 그건 순간적인 감정이죠. 전 선수이기 때문에 학업보단 운동이 1순위였잖아요. 그러니까 농구 연습은 제겐 당연한 일이죠. 그날 부족한 부분은 바로 보강하고 그랬어요.”

  -어떤 연습을 주로 했나.
  “그때그때 부족한 부분을 연습하는 거죠. 주로 슈팅 연습을 했어요. 슛이 약하면 슛 연습을 하는 거고 드리블이 약하면 드리블을 하는 거고요.”

  -많은 사람들이 허재를 ‘천재’라 한다.
  “글쎄요, 타고난 재능이 있어도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재능이 발현되는 것이죠. 노력하지 않고 좋은 결과를 바라는 것은 마치 학생이 시험 전날 공부도 안 했으면서 시험은 잘 보길 바라는 거랑 똑같아요. 공부를 안 하는데 어떻게 시험을 잘 보겠어요. 시험을 잘 보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내일 어떤 문제가 나올지 예상도 할 수 있잖아요. 농구도 똑같아요. 당장 내일 시합을 잘 해내려면 연습을 열심히 하는 등 자신이 노력해야죠. 연습도 안 하고 ‘나 시합 잘해야지’만 생각하고 가서는 결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없어요.”

  -농구의 매력이 뭐길래.
  “구기 종목 중에선 농구가 좀 터프한 축에 속하잖아요. 배구는 네트를 가운데 둬야 하고, 축구는 코트가 굉장히 넓고, 야구는 자기 포지션에서 몸싸움 없이 하는 건데 농구는 좁은 코트 안에서 열 명이 치고받고 몸싸움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격렬하면서도 파이트가 있지 않나 싶어요. 그런 걸 좋아하는 팬들도 많고요. 그런 점에서 농구가 좋죠.”

  -선수 시절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면과 아쉬웠던 경기는.
  “85년도에 있었던 종합선수권대회를 대신해서 생긴 농구대잔치요. 거기서 가장 처음 우승했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첫 우승이라 정말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뻤거든요. 아쉬운 경기는 수없이 많죠. 농구를 30년 했는데 아쉬운 경기가 한둘이겠어요?”

  -선수 때와 감독이 된 이후 농구를 바라보는 입장이 다를 것 같다.
  “선수 땐 혼자 한다고 생각하고 마냥 열심히 하면 되지만 감독은 한 팀의 선봉자로서 선수 관리, 전략, 연습 등을 총괄해야 하죠. 감독도 감독 나름의 매력이 있고 선수 때도 선수 나름의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선수 시절과 지금 감독을 할 때랑 어떤 때가 더 좋나.
  “굳이 따지자면 선수 때요. 사람이란 게 나이 들면 괜히 옛날 생각하게 되고 그러잖아요. 아버지가 ‘옛날 젊었을 때가 좋았다~’고 하시는 것처럼요.”

  -감독을 하면서 화가 났던 경기가 있다면.
  “아우, 그거야 비일비재하죠. 감독도 10년 넘게 했는데 화나는 경기가 한두 개겠어요.”

  -중국 기자들에게 화를 낸 기자회견 영상이 회자됐었다.
  “인터뷰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죠. 아니, 게임에서 진 것에 대해 분석하고 그에 맞는 질문을 해야 할 텐데 엉뚱하게 한국 농구가 어쩌고저쩌고 비아냥거리기만 했잖아요. 그래서 그냥 박차고 나갔어요.”

  -분명 중국 기자들이 잘못했지만 요즘 한국 농구를 보면 미흡한 부분이 존재하는 것 같긴 하다. 개선점이 뭐라 생각하나.
  “아직 세계 농구의 벽이 높긴 해요. 그렇지만 벽이 높다고 종일 벽만 쳐다볼 순 없잖아요. 어쨌거나 아시아권에서라도 진전이 있어야 하겠죠. 앞으로도 많은 선수 및 감독들이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에요. 그리고 아무리 감독이 가르쳐도 선수들이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다 같이 열심히 해야죠. 그리고 옛날보단 농구 인재가 많이 줄어든 건 사실이에요. 이는 농구인들이 모두 반성해야 할 일이죠. 선수들도 실력을 더 쌓고 각성해서 팬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평소 대학농구에도 관심을 두는 편인가.
  “대충 반 정도는 보는 것 같아요. 안성캠에서 게임이 있을 때도 웬만하면 가보죠. 얼마 전 대학농구리그 땐 외국에 전지훈련 나가 있는 바람에 못 봤지만 시간 되면 보러 다니려고 해요.”

  -과거 중앙대가 성적을 잘 낼 때에 비해 요즘은 다소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이 든다.
  “계속 한 대학만 우승하면 농구가 재밌겠어요? 연세대가 좋을 땐 고려대가 안 좋고 고려대가 좋을 땐 연세대가 안 좋을 수밖에 없듯이 그런 흐름들이 있어요. 다만 침체되는 기간이 길면 안 되겠죠. 제가 듣기론 예비 선수들이 좋아서 아마 내년부턴 중앙대도 좋은 성적이 나올 거예요.”

  -요즘에 주목해서 보는 선수가 있다면.
  “능력 좋은 선수들이야 많죠, 뭐. 각 팀마다 있는 2,3년 차 젊은 선수들이나 갓 졸업한 대학생들을 눈여겨 보고 있죠. 그중에 신장도 좋고 다 좋은데 기량만 좀 더 빨리 올라갔으면 하는 선수도 있어요. 갓 졸업한 이종현 선수 등등이요. 중앙대 선수들 중에서는 앞선 가드 세 명이 좋은 것 같아요. 그리고 올해 입학 예정자들도 좋은 것 같고요. 아마 올해보다 더 좋지 않을까 예상해봅니다.”

  -선수들의 기량을 향상시키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 것 같나.
  “일단 많은 경험이 필요해요. 기량이 향상되려면 많은 대회에 나가야 하고 시합을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기량이 발전되는 것 같아요.”

  -본인은 어떤 감독으로 남고 싶은지.
  “기억에 남는 감독이요. 선수들이 ‘허재 감독 밑에 있을 땐 그래도 뭘 하나 얻었지’라는 소리를 듣는 감독이 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계속 농구계에 남아 후배들을 육성시키는 데 주력을 다하려고 합니다.”
 
   
 
 
  -당신에게 중앙대란?
  “한마디로 할게요.  내 인생의 반환점이요.(웃음)” 출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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