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2년 남기고 고향으로 돌아와 미니사과나무 심고 가꿔
끝도없는 농사일 직접 경험해보니 얼마나 힘든지 비로소 절감
그래도 하루하루 행복 ‘싱글벙글’
“10년쯤 현장에서 일하고 배운 후 한국농업 문제 해결안 제시하고파”
강원 양양군 강현면의 시골로 주소 이전, 농지원부 보유, 농업경영체 등록, 강현농협 조합원, 무농약 인증, 양양친환경농업연구회원…
윤석원(농업경제74) 전 중앙대 교수가 “나는 농민이다”라며 제시한 증거들이다. 거기다 1818㎡(550평)의 밭 중에서 1157㎡(350평)에 직접 심은 미니사과나무까지 보여주는 그는 정말 영락없는 농민이었다.
윤씨는 올 2월 학교를 그만뒀다. 정년인 만 65세보다 2년 이른 셈이다. 6~7년 전에 산업경제학과가 경제학과와 통합되면서 윤씨의 학과가 없어지자 은퇴를 염두에 뒀다. 그리고 땅을 구하러 서해안과 제주 등지를 돌아다니며 귀농을 준비했다. 무엇보다 ‘조금이라도 덜 늙었을 때 농사지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결국 지난해 5월경 고향인 양양에 농지를 구입했고, 전세로 농가주택까지 얻었다. 그리고 올 3월 나무를 심고 본격적인 영농에 돌입했다.
“그냥 땅 파서 묘목을 심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깊이 1m로 구덩이를 파야지, 안에다 유기질비료와 유황 등을 넣어 흙과 섞어 구덩이를 덮어야지, 그 위에 두둑을 만들어 심어야지, 그뿐 아니라 풀이 나지 못하게 두둑에 부직포 씌우기까지 정말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윤씨가 엄살떠는 건 결코 아니었다. 초생재배를 위해 풀을 베었던 경험까지 이어져 나왔다. 전에는 예초기를 메고 그저 왔다갔다만 하면 풀을 다 베는 줄 알았단다. 하지만 여름에 집중되는 예초작업은 힘들었다. 작업할 때마다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여름이 지나니 허리띠 구멍이 두칸이나 줄었더란다. 농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절감하고도 남았다.
그는 몰랐던 사실도 경험했다. 정부의 보조사업에 선정되면 새로운 농협통장을 개설해야 한다. 이 사업과 관련된 모든 입출금은 이 통장으로만 가능하고, 사업이 종료되면 통장은 폐기된다는 것. ‘제도가 이처럼 까다로운데도 비리가 생기는 이유가 뭘까?’ 결국 ‘사람이 문제’가 아닐까. 윤씨가 시골에서 얻은 의문과 그에 대한 대답 가운데 하나였다.
“시골에 살면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교수를 할 때보다 더 바빠요. 그런데 누가 그러더군요. ‘농사일은 내가 시간을 내지 않으면 절대 시간이 나지 않는다’라고요. 맞는 말입니다. 인생 후반부에 내가 농민들한테서 인생철학과 삶의 자세를 배우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이랴. 주위 귀농인들은 윤씨에게 농산물 판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첫해 수확한 농산물이라고 공짜로 주지 말아라. 그렇다고 고객이 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팔아라. 돈 주고 사먹어봐야 고객이 된다.’ 윤씨도 내후년 사과가 열리면 공짜로 나눠줄 요량이었다. 하지만 이 말을 듣고 생각을 바꿨다.
“농민들이 판매를 참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동원해 팔려고 노력하죠. 나도 그러려고 교수 때는 하지 않던 페이스북을 지금 하고 있어요. 앞으로 블로그도 운영하려고요. 내년부터는 ‘윤 교수의 농사일기’라는 제목의 전자우편을 정기적으로 지인 등에게 보낼 계획입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팔아야 할지 직접 겪어볼 작정입니다.”
무엇보다 윤씨에게는 필생의 목표가 하나 있다. 한국농업의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싶다는 것이다. 교수로서 평생 농업정책과 농업경제를 다뤘으니, 앞으로 한 10년 열심히 농사지으며 현장에서 느끼고 깨닫는다면 가능하겠다는 믿음이 그 힘이다.
“제대로 농민이 되려고 내려왔고, 아직도 퇴비 20㎏짜리 한포대는 거뜬히 들고도 남습니다. 농사짓는 하루하루가 너무 행복해요. 이젠 잘 보여야 할 데가 마누라밖에 없으니 또 좋고요. 요즘이 내 인생의 최고 절정기입니다.”
그러자 옆에서 듣던 부인 박미숙씨(60)가 한마디 거들었다.
“시골 가고 싶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했어도 그렇게 덜컥 학교를 그만두고 가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내려와 옆에서 보면 뭐가 그리 행복한지 내내 싱글벙글이에요,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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