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모르는 학자는 반쪽일 뿐”
“일을 하고 싶었어요.” “왜 박사까지 마친 후 기업체로 왔느냐”는 질문에 삼성SDS 윤심(41) 웹서비스추진 사업단장은 명쾌하게 답했다. 윤 단장은 현재 삼성의 여성박사 출신 중 대표주자다. 중앙대 전산학과를 거쳐 LG소프트웨어에서 5년 동안 근무한 후 일을 그만두고 1990년 프랑스로 공부를 하러 떠났다. 프랑스 제6대학에서 전산학 석사·박사 과정을 마치던 해인 1996년 삼성 SDS에 채용되었다. 윤 단장은 “삼성의 인재채용 방식에 놀랐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프랑스에서 석ㆍ박사 과정의 유학생들을 모아놓고 삼성에서 기업설명회를 했어요. 상당히 적극적이었죠. 거기서 이력서를 내고 채용됐습니다. 삼성기술원, 삼성전자, 삼성SDS에서 따로 임원들이 나와서 유학생들과 면접을 했습니다. 전공과 기술 부분도 물어보고, 업계의 동향이 이러한데 와서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물었습니다.”
경력과 학위를 인정받아 특채된 후 윤 단장은 1996년부터 삼성 인터넷 태스크포스(인터넷 신규사업 개발), 국내 최초 지식관리 시스템 패키지 KWave 개발 총괄, 이노베이션팀(신기술 기반 IT 서비스 사업 발굴)을 거쳐 현재까지 새로운 사업영역과 사업모델을 창출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박사들은 기존에 남들이 해놓은 논문을 찾아서 다 공부해야 하고,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해야 하잖아요. 그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사업에서도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아요. 고객들과 만날 때에도 박사 출신이라고 하면 훨씬 더 큰 믿음을 줄 수 있죠.”
“업무나 승진 등에서 박사 출신으로서의 프리미엄이 있느냐”는 질문에 윤 단장은 “암묵적으로 있겠지만 그게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다”라며 “성실성과 지식수준에서 검증됐다는 기본 점수일 뿐”이라고 단정했다.
다이내믹한 현장이 좋아
윤 단장은 “좋아하는 키워드가 ‘이노베이션(Innovation)’이라며 “회사의 숨통을 틔워주고 끊임없이 샘물을 찾아내는 일을 계속하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25명의 부서직원들에게도 “다 함께 정글을 헤쳐나가자”며 독려한다고 했다.
하지만 여성 박사들은 대부분 대학교쪽을 선호하는 편이라 기업체에는 드물다. 2003년 말 현재 삼성SDS의 박사 인력 130명 가량 중 여성 박사는 8% 정도다. 윤 단장은 이에 대해 “학교쪽 일은 상당히 지루한데 반해 다이내믹한 현장이 개인적인 성향에 맞다”고 밝혔다.
대부분의 기업에서는 소위 ‘나이 많고 머리에 먹물이 든’ 여성 박사의 경우, 일을 시키기 힘들다는 이유로 꺼려한다는 게 사실이었다.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했다. 윤 단장은 “여성 박사라는 편견은 별로 없었고 오히려 점점 직급이 높아질수록 남성들 위주의 클로즈드(Closed) 커뮤니티에 신경이 많이 쓰인다”고 말했다.
가족들의 외조는 필수적이다. 윤 단장의 경우 남편 권혁인(44ㆍ중앙대 교수)씨와 아들 권휘(7)군이 밤 11시, 12시에 퇴근하는 엄마를 적극 배려해준다고 한다. 다행히 삼성SDS에는 15%인 여성 자원을 좀더 활용하고 회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원요청을 할 수 있는 ‘여성위원회’가 있다고 한다.
윤 단장은 “점점 박사가 많아져서인지 박사 수당도 없어지고, 특별대우도 사라져가고 있다”며 “아무리 박사 출신이라도 현장경험을 쌓지 않으면 적응하기 힘들다”고 후배여성들에게 충고했다.
“주위에서 보면 박사이면서 현장경험이 있는 분들은 괜찮지만 공부만 하고 들어온 사람들은 ‘아카데믹한’ 성향을 보입니다. 계속 현장경험을 보완해 쌓아줘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기 포지션을 잡지 못한 이들은 견디지 못해서 회사를 나가기도 하지요.”
박란희 주간조선 기자(rhpark@chosun.com)
http://weekly.chosun.com/wdata/html/news/200402/200402230000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