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인터뷰는 2016년 3월 중대신문 인터뷰 '중대신문이 만난 사람'에서 전재하였습니다.]

 

패션 디자이너 신정숙(의생활학과 83학번)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학생들의 미래를 디자인하다

 

'불가능이란 없다.’ 치열한 패션계 현장에서 신정숙 동문(의생활학과 83학번)이 늘 잊지 않던 인생 모토다. 어떤 일을 시작하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긍정적으로 나아간다는 그녀. 유난히 옷을 좋아하던 소녀가 패션학교 교장이 되기까지. 패션을 향한 순수한 열정은 그녀를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다. 부드러운 미소 뒤에 굴하지 않는 도전 정신과 추진력을 가진 신정숙 동문을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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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다면
불가능은 없다

fashion(패션)을 만드는 것은
순수한 passion(열정)이다

 

 

에스모드 서울 교장으로 취임한 그녀를 처음 만난 날. 멀리서 검정 플레어 치마 차림으로 걸어오는 그녀의 모습은 한눈에 봐도 근엄한 교장 선생님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진정한 교육은 지치지 않고 제자들의 성장을 기다리는 것’이라 말하는 그녀. 패션을 사랑하는 디자이너이자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제자들의 앞날을 비추는 교육자인 제5대 에스모드 서울 교장 신정숙 동문의 열정을 들여다보았다.

 

 

-올해 에스모드 서울 제5대 교장으로 취임했다. 교장이라고 하기엔 젊어 보이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아요.(웃음) 학업을 마친 후로 현장에서 10년 넘게 일하고 에스모드 서울에서 교직을 맡은 지도 벌써 16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죠. 교장으로 취임하게 되어 뿌듯하지만 어깨가 무겁네요.”

 

-에스모드 서울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세계적인 패션스쿨인 에스모드 파리의 한국 분교에요. 지난 1989년 개교한 이후로 남성복 ‘준지’의 정욱준 디자이너 등 실력 있는 졸업생들을 배출했죠. 빡빡한 커리큘럼 덕분에 학생들 사이에서는 ‘데스(death)모드’라는 이름으로 통한답니다. 진심으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곳이라고 자부해요.”

 

 

 

청청 패션, 배기바지,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들어간 어깨 뽕…. 80년대를 풍미한 패션이다. 다양한 패션이 거리를 수놓던 그때 그 시절 그녀는 디자이너의 꿈을 품고 중앙대에 첫발을 내디뎠다.

 

 

-83학번 의생활학과 초창기 입학생이다.
“학과가 생긴 지 2년째 됐을 때 입학했어요. 저희끼리는 80년대를 디자이너의 르네상스 시기라고 말하곤 해요. 경제적 호황기를 누리던 80년대는 패션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향상되면서 관련 학과의 인기도 높아지던 시기거든요.”

 

-어릴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나.
“옷에 관심이 워낙 많았었죠.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해야겠다고 일찍 마음먹었어요. 비록 학과가 생긴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당시 인기 있던 중앙대에 지원했죠.”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굉장히 적극적인 학생이었어요. 학과 대표도 맡고 공부도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성적 장학금을 받은 적도 있어요.”

 

-교장 선생님다운 모범적인 이력이다.
“그런가요.(웃음) 디자인 분야에서만큼은 모범적인 학생이었던 것 같아요. 남들과 똑같이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죠. 예를 들어 재킷 하나를 만들 때도 남들과 다르게 만들기 위해 어깨 한 치수 크게 한다든지, 그림을 그릴 땐 붓 뒤를 잘라 칼집을 내서 그린다든지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했어요. 남들보다 특이한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이라 교수님께서도 좋게 평가해주셨던 것 같아요.”

 

 

 

“꿈이 있는 자는 늘 아름답습니다. 깨어있는 열정으로 늘 도전하세요.”

꿈을 그저 꿈이라 생각하는 이의 꿈은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다. 꿈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한 발자국씩 다가갈 때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졸업을 앞두고 86년 ‘제4회 한국패션협회 대한민국 패션대전’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큰 대회인 만큼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어요. 졸업 작품과 시기가 겹쳤지만 패션대전에 몰두했죠.”

 

-당시 어떤 작품을 선보였나.
“두 작품을 준비했는데 모두 우리나라 고유의 원단과 염료를 사용한 것이었어요. 하나는 천연 실크 소재에 치자로 18단계의 천연 염색을 했죠. 다른 하나는 한산 모시 소재에 천연 먹을 염색한 작품이었어요.”

 

-모두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다.
“한약재 시장에 들러 직접 천연 원료를 사고 집 마당에 말리는 과정부터 정말 손이 많이 갔죠. 천연 방식으로 염색하기 위해 큰 가마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옷을 삶았어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죠. 제 졸업 작품보다 이 두 작품에 들인 공이 더 커요.(웃음) 운이 좋게도 출품한 두 작품 모두 본선에 올랐고 우수상을 받아 에스모드 파리에 갈 수 있었죠.”

 

-디자이너로서 좋은 기회였겠다.
“패션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유학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거예요. 특히 당시는 해외여행이 흔치 않을 때였죠. 운 좋게 기회를 잡았어요.”

 

-유학 생활은 어땠나.
“에스모드 파리의 커리큘럼은 굉장히 엄격했어요. 덕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죠. 작품집을 제출하는 시기에는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마감에만 매달리던 때가 기억나네요. 유학 생활을 하며 시간 관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배웠죠.”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다면.
“에스모드 파리 과정을 마친 뒤 프랑스에서 몇 달간 더 머무를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파리 도매시장에 가서 제가 디자인한 스케치를 직접 팔았죠. 시장에 나가 사람들의 평가를 받아본 좋은 경험이었어요.”

 

-수입은 좋은 편이었나.
“그때 당시로 한 장에 30프랑 정도를 주고 팔았는데 운이 나쁘면 하루에 3개, 운이 좋으면 6개 정도 팔렸어요.”

 

-직접 발품을 팔아가며 본인의 작품을 선보인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꿈과 열정이 있으면 직접 부딪히면서 경험하는 게 제일 좋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상황을 두려워하지 말고 직접 겪어야 발전할 수 있으니까요. 뭐든 자신이 직접 해봐야죠.”

 

 

 

‘제4회 한국패션협회 대한민국 패션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뒤 떠난 에스모드 파리로의 유학은 앞으로 펼쳐질 그녀와 에스모드의 기나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나이스 클럽’, ‘시엔느’, ‘닉스’ 등의 패션업계에서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은 그녀는 99년부터 에스모드 서울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한다.

 

 

 

-한동안 패션업계에서 근무하다 교육자의 길로 들어섰다. 디자이너 양성에 뜻이 있던 건가.
“현장에 있을 때도 학생들을 지도하고 싶다는 꿈은 항상 있었어요. 일을 하면서 강의를 나가기도 했지만 두 가지를 병행하기란 쉽지 않았죠.”

 

-에스모드 서울에서 교직의 길을 걷게 된 이유가 있나.
“그 당시 우리나라 패션 교육계에는 실무형 교육 기관이 흔치 않았어요. 하지만 에스모드 파리의 분교인 에스모드 서울은 실무적인 패션 교육을 하고 있었죠. 여러모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어요. 이곳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한 지도 16년이 다 되어 가네요.”

 

-스틸리즘 전공 교수를 맡아 왔다. 스틸리즘이란 무엇인가.
“스틸리즘은 스타일을 창작하고 디자인하는 전체적인 과정이에요. 스틸리스트는 이러한 창작 과정 전반을 담당하는 사람을 뜻하죠. 디자인 발상부터 구성, 디자인의 모든 과정을 익히는 수업이에요.”

 

-현장에 몸 담아오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었을 텐데.
“그렇죠. 업계는 철저한 비즈니스인 반면 학교는 교육 기관이다 보니 많은 것들이 새로웠어요. 학생들이 성장하는 것을 보며 또 다른 보람을 느낄 수 있죠.”

 

-혹시 첫 수업 기억나나.
“그럼요. 처음 수업 맡았을 때 어찌나 두근거리던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설레던 기억이 나요. 학생들 앞에서 첫마디로 무슨 말을 꺼낼지, 내용 전달에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강의 내용을 미리 연습했죠.”

 

-어느덧 제자들을 가르친 지 약 16년이 되었다. 감회가 어떤가.
“아직도 제자들을 보면 설레요. 패션 업계는 학생마다 개성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이 친구들이 각자 어떤 디자인 세계를 펼칠까 항상 기대되는 매력이 있죠. 특히 확고한 꿈을 향해 노력하는 젊은 친구들과 함께 열정을 나눌 수 있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에요.”

 

-특히 기억에 남는 제자가 있다면.
“사실 한 사람만 꼽기 힘들어요. 워낙 많은 학생들이 있었고 국내 패션업계 곳곳에 진출한 제자들도 많죠. 사실 에스모드 서울에는 매년 다양한 사연을 가진 학생들이 와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는 학생, 다니던 대학을 포기하고 오는 학생 등 다들 패션에 대한 열정 하나로 이곳까지 온 친구들이죠. 잠도 안 자고 자기 작품에 매진하던 모든 제자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네요.”

 

-패션 디자인 교수로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
“제자가 마침내 졸업해서 자기 길을 찾아갈 때죠.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 성장해나가는 제자들을 보면 뿌듯하고요.”

 

-본인만의 교육 철학이 있다면.
“가르치는 사람은 지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 과정을 기다려주고 지켜봐 주는 스승이 있어야 하죠. 그런 의미에서 학생에 대한 열정도, 본인의 체력도 지치지 않아야 해요.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끊임없는 열정을 가지고 학생들을 대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끊임없는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이 있나.
“변화하는 시대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가장 좋은 건 학생들과 대화를 많이 하는 거예요. 젊은 친구들이 많이 가는 전시회를 보며 자극을 얻기도 하고 평소 SNS 활동도 많이 하는 편이죠.”

 

-매사 열정적인 것 같다. 지치지는 않나.
“그럴 틈이 없어요.(웃음) 패션계는 시즌에 앞서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슬럼프를 느낄 겨를이 없을 만큼 바쁘죠.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바빠도 행복하게 일할 수 있어요.”

 

-빠르게 돌아가는 패션계 특성이 성격과 잘 맞나 보다.
“사실 그렇진 않아요. 시즌에 맞춰 매일 새로운 것들을 예뻐해야 하는 패션계를 보며 때론 인간미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기도 했죠. 너무 빠르니까요.”

 

-의외다. 어떻게 패션계에 적응한 건가.
“적응했다기보다는 이 분야를 좋아하다 보니 조금은 나와 안 맞는 불편한 특성까지도 매력적으로 느끼게 됐어요. 즐기게 된 거죠.”

 

-패션계는 정말 빠르게 변화한다. 현실 감각을 잃지 않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정말 맞는 말이에요. 샤넬은 ‘패션은 사라져도 스타일은 살아있다’고 말했지만 오늘날 소비자와 소통하지 않는 디자인은 살아남을 수 없어요. 패션 디자인은 철저하게 소비자와 함께 소통하며 즐길 수 있어야 하죠.”

 

-세상과 동떨어진 디자인은 좋은 디자인이 될 수 없다는 건가.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항상 세상의 흐름에 민감해야 해요. 세태를 잘 읽을 줄 알아야 하죠. 미술, 음악, 문학 등 예술과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도 중요해요. 이러한 바탕이 없다면 좋은 디자인을 만들기 힘들죠.”

 

-가끔 패션쇼를 보면 난해한 옷들이 나와 당황스러울 때도 있는데.
“무대 의상 분야는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옷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입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에스모드 서울의 교육 방향도 실제로 입고 다닐 수 있는 옷을 디자인하는 거예요.”

 

-패션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패션 디자인에서는 재능도 중요하지만 노력이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자신의 열정이 중요하죠. 성실함과 체력을 바탕으로 한 철저한 스케줄 관리는 기본이고요.”

 

-왠지 패션업계는 자유로워 보이기도 하다.
“패션 디자인은 창작의 영역이지만 시즌에 맞춰 옷이 생산되기 때문에 철저한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해요. 디자이너도 생산 단계를 무시할 수는 없죠. 기본적인 시간 관리 능력을 기르기 위해 에스모드의 학사관리도 엄격해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에스모드 서울을 세계적인 패션학교로 키우는 거죠. 앞으로 패션계를 짊어질 졸업생을 배출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아요. 한국 패션의 미래뿐만 아니라 한국을 대표해 세계무대에서 활동할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제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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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19일 열린 에스모드 서울 제25회 졸업식에 참석한 신정숙 교장(앞 줄 우측에서 두 번째). 사진출처 에스모드 서울

 

당신에게 중앙대란?

“패션 디자이너로서 첫발을 디딘 곳이죠. 의생활학과 초창기에 입학해 마치 파트너로서 함께 성장해나간 것 같아요. 당시 열정적인 전공 교수님들의 지도를 받으며 패션 디자인을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죠. 파리 유학 후에는 중앙대에서 석·박사 통합 과정을 밟았어요. 이후로도 교수님들과 연락하며 지냈죠. 올해는 학창시절 저를 지도해주셨던 이혜주 교수님께서 퇴임하시며 오랜만에 동문끼리 모이기도 했어요. 중앙대라는 울타리 안에서 각자 꿈을 향해 열정적인 학창시절을 보낸 만큼 다 같이 잘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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