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과 동창회장이며 국립민속박물관장인 신광석(사학26) 동문이 오마이뉴스에 부여와 공주 일원에서 열리고 있는 '2010 세계대백제전' 행사의 하나인 '명사 신광섭 국립민속박물관장(전 부여박물관장)과 함께 하는 부여답사라는 코너에 기사가 게재되어 소개합니다.


백제 무왕이 백마강에서 음주를 즐긴 이유는?
[세계대백제전] 신광섭 민속박물관장과 함께 한 부여답사 ②
유혜준 (hjyu99) 기자

* 부여와 공주 일원에서 열리고 있는 '2010 세계대백제전' 행사의 하나인 '명사 신광섭 국립민속박물관장(전 부여박물관장)과 함께 하는 부여답사' 두 번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 행사는 부여문화원에서 주관했습니다.... 기자 주

  
신광섭 국립민속박물관장
ⓒ 유혜준
 

능산리 절터에는 백제금동대향로만 묻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이 향로 외에도 국보 288호로 지정된 유물이 하나 더 발굴되었다. 바로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이다. 백제 창왕은 위덕왕을 말한다. 위덕왕의 이름이 창이었다. 사리감 역시 신광섭 국립민속박물관장이 부여박물관장으로 재직할 때 발굴됐다.

유물이 처음부터 나 여기 있소, 하면서 모습을 드러내는 건 아니다. 신 관장은 사리감을 발굴할 때 목탑 아래를 넓게 파라고 했지만 현장에서는 처음에는 그의 말을 새겨듣지 않았다고 한다. 나올 게 없다고 여겼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신 관장을 고집을 부렸다. 돌덩어리를 땅에 묻을 때 돌덩어리 크기보다 넓게 파지 크기에 딱 맞춰서 땅을 팔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신 관장의 생각을 그대로 들어맞았다. 이런 경우, 고집을 부릴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리감은 여전히 땅속에 묻혀 있었을 테니까.

"보통 사리장치는 신초석의 중앙을 파서 넣고 뚜껑을 닫고 신주를 바로 세워서 손을 못 대게 하는데 여기는 별도로 만들었습니다. 발굴하다 보니 우체통처럼 삐쭉하게 누워 있는 거예요."

  
백제문화단지에 복원된 능산리 능사에 모셔진 부처님
ⓒ 유혜준
 

현장에서 발굴 작업이 한창일 때 신 관장은 박물관에서 회의 중이었다. 능사 목탑지에서 발견된 돌덩어리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는 보고를 전화로 받은 신 관장은 물었다, 그게 뭐냐고. 잘 모른다는 답변이 돌아오자 신 관장은 옥편과 연표 그리고 삼국사기를 들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현장에서 돌덩어리에 새겨진 글귀를 보고 삼국사기와 대조하고 위덕왕의 이름이 창이라는 것을 확인한 신 관장은 온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고 당시를 회고했다.

발굴 현장이 절터인 것은 알았지만 언제, 무슨 목적으로 세워진 절인지 확인이 되는 상황이기도 했고, 국보급 유물을 발견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백제가 수도를 웅진(공주)에서 사비(부여)로 옮긴 것은 성왕 16년(538년). 백제 중흥의 큰 뜻을 품고 천도를 했으나, 성왕은 관산성 전투에서 신라에 패해 목숨을 잃었다. 장수왕의 고구려 남하정책을 막고자 백제와 신라는 나제동맹을 맺었으나, 그만 신라가 배신을 하고 말았다. 백제는 신라와 손잡고 고구려에게 빼앗아간 영토를 회복했는데 신라가 그 땅을 차지해 버린 것이다.

졸지에 영토를 빼앗긴 성왕은 군사를 이끌고 신라의 관산성을 공격한다. 하지만 먼저 싸움을 건다고 이기는 것은 아니었다. 전투에서 패하면서 성왕은 전사했고, 백제는 임금을 비롯한 관평 넷과 3만의 군사를 잃었다. 이 정도라면 나라가 망할 지경에 이르렀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 신 관장의 설명이었다.

사직을 온전하게 지키려면 새 왕이 등극을 해야 하는데, 위덕왕은 등극을 거부했다. 전쟁터에서 아버지를 죽게 하고 엄청난 군사를 잃은 패전 장군이 무슨 면목으로 왕이 되겠느냐, 며 왕위에 오르기를 사양했다는 것이다. 왕이 되지 않겠다는 위덕왕을 설득해서 왕으로 옹립한 사람들은 바로 왕의 형제들이었다고 한다.

  
부여 백제문화단지에 복원된 사비성
ⓒ 유혜준
 

전쟁에서 패하고 돌아와 임금이 된 위덕왕은 힘이 없는 군주가 될 수밖에 없었다. 왕권이 약해지고, 집권층들의 권력이 강화되던 시기였다. 13년 동안 묵묵히 그러한 상황을 견딘  위덕왕은 관산성 전투에서 목숨을 잃고 목이 잘린 채 몸만 돌아온 성왕의 혼을 달래기 위해 절을 세운다. 바로 능산리사지에. 절을 창건한 것을 계기로 위덕왕은 왕권을 강화하면서 백제 문화를 꽃피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능산리사지에서 발굴된 사리감은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유적지에서 백제의 국보급 유물을 직접 발굴한 당사자에게 듣는 역사 이야기는 아무래도 더 재미있고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백제창왕십삼년태세재 정해매형공주공양사리(百濟昌王十三年太歲在 丁亥妹兄公主供養舍利)

  
신광섭 국립박물관장
ⓒ 유혜준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에 새겨진 글귀다. 이 중에 입구 자 밑에 으뜸 원자가 사용된 글자가 있었다. 신 관장은 이 글자를 몰라서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중에 형(兄) 자의 별자(別子)로 밝혀지긴 했는데, 왜 그 글자를 사용했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학계 일부에서는 매형공주(妹兄公主)라고 하니 매형과 공주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매형과 공주가 발원사리해서 사리감에 사리를 넣었다는 것인데, 신 관장을 그게 이상했다는 것이다. 공주와 공주의 남편이라면 공주부부라고 해야 하고, 실제로 그런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왜 매형을 앞에 썼을까, 신 관장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결국 신 관장은 자신이 사리감에 쓰인 형(兄)자의 의미를 밝혀냈다고 설명했다.

신 관장은 형(兄)이라는 말에 주목했다. 중국에서는 임금의 누이동생 중에서 맏누이동생이나, 맏누님을 장공주라 부르고 왕의 칭호를 주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공주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兄)자는 성왕의 따님이자 위덕왕의 여자 형제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신 과장은 성왕의 맏따님이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므로 이 사리감은 백제 성왕의 아들인 창왕(위덕왕)이 567년에 만들어졌으며, 성왕의 따님이자 창왕의 여자 형제인 공주가 사리를 공양했다는 것이다. 그 시대에는 공주의 권력도 막강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관장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해봤다.

능산리 절터와 고분들을 둘러본 뒤 간 곳은 부소산성이었다. 부소산성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길에도 신 관장의 백제 이야기는 이어졌다. 이번에는 백제 무왕에 관한 내용이었다. 백마강에 배를 띄우고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무왕을 두고 훗날 삼국사기에서는 왕이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고 비난을 하는데 사실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무왕은 이름 그대로 전쟁을 좋아하고 전역을 많이 일으키다보니 백성들이 불안해 합니다. 그래서 태평성대를 정치적으로 연출한 거예요. 기화이초가 피어난 경치 좋은 곳에서 여유롭게 풍류를 즐기는 모습을 백성들에게 보여, 지금 우리가 태평성대를 살고 있다는 정치적인 제스처를 취한 거죠."

백제가 망한 뒤에 역사서는 무왕의 이러한 정치적 제스처를 정치적인 문란으로 몰아 백성을 돌보지 않았다면서 비판했다고 한다. 그래야 백제라는 나라는 망할 수밖에 없었다, 는 논리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망한 나라의 역사는 그런 식으로 합리화의 단계를 거치는 것이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옛 부여박물관 자리 앞을 지나면서 신 관장은 지금 진행 중인 세계대백제전에 관한 설명을 덧붙였다. 광복 이후 부여에서는 백제의 충신인 계백, 흥수, 성충을 기리기 위해 삼충사라는 사당을 지어놓고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백마강에 설치된 부교
ⓒ 유혜준
 

"삼충사에 제사 지내고 능산리 왕릉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 '대백제전'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때는 돈이 없어서 부여 유지들이 보리도 내고 쌀도 내고 해서 시작한 백제문화제가 지금은 세계적인 축제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햇수를 거슬러 올라가니 올해로 세계대백제전은 56회가 되는 셈이라고 한다. 옛 백제의 땅에 사는 사람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나라 백제를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면서 오래도록 기억하고 되새기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복사지 표지석
ⓒ 유혜준
 

부소산성에 올라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서복사지. 서복사, 라는 절이 있었던 자리가 아니라 서쪽에 있는 절터라는 의미로 발굴 뒤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름이나 유래가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 관장은 절터 앞에서 서복사지의 가람배치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곳에 있었던 절 역시 왕궁과 가까운 거리에 있고, 일반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부소산성 안에 있었던 점들로 미뤄보건대 왕실을 위한 기원사찰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절터 역시 신 관장이 부여박물관에 재직할 때 발굴한 곳이다. 서복사지에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을 뿐, 절이 있었다는 흔적을 찾기 어렵고고 너른 풀밭만이 펼쳐져 있었다.

부소산성에는 볼거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삼천 궁녀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는 낙화암을 비롯해서 고란사와 군창지, 소정방이 용을 낚았다는 조룡대 등.

낙화암에는 백화정이라는 작은 정자가 자리 잡고 있다. 그곳에 오르면 백마강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황포돛대라 이름 붙인 배가 백마강 위를 한가롭게 오가는 모습 또한 볼 수 있다. 옥에 티라면 그 배에서 구성진 노래가 끊임없이 들려온다는 것. 스피커를 통해서 웅웅 울려대는 노랫소리는 두어 번쯤 들으면 그럭저럭 듣는 맛이 나지만, 열 번을 넘어서면 소음으로 변한다. 그렇더라도 백마강에서 듣는 백마강 노래는 색다른 맛을 자아내기는 한다.

낙화암 아래쪽으로 내려가면 백마강을 오가는 황포돛대를 탈 수 있는 선착장이 있다. 이곳에서 출발한 배는 구드래 나루터까지 운행된다.

  
벡마강을 오가는 황포돛대
ⓒ 유혜준
 

구드래 나루터에는 부교가 설치되어 있어 걸어서 백마강을 건널 수 있다. 이 부교는 배가 지나갈 때는 뱃길을 열어주기도 한다. 세계대백제전을 보러 온 관람객들은 걸을 때마다 강 위에서 출렁거리는 부교를 건너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었다. 이 부교는 세계백제전이 열리는 동안만 설치되어 있을 예정이라니, 걸어서 백마강을 건너고 싶다면 서둘러야 할 것 같다.

답사의 마지막 순서는 황포돛대를 타고 선착장에서 구드래 나루터까지 가는 것이었다. 신 관장과 함께 황포돛대를 타고 백마강을 둘러보면서 무왕이 음주가무를 즐겼다는 북포를 돌아보는 느낌은 각별했다. 무왕은 백성들에게 태평성대를 보여주기 위해 강 위에 배를 띄웠다지만, 무왕이 백성들에게 보여주고 싶어했던 태평성대는 오래 가지 못하고 백제라는 나라가 아예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코스모스 꽃길
ⓒ 유혜준
 

그렇게 사라진 나라 백제가 부여에서 새롭게 살아나고 있는 중이다. 물론 '2010 세계대백제전'이라는 축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부여의 곳곳에서 부여의 유적지들이 발굴·복원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백제문화단지에 새롭게 복원된 사비성과 능사를 보면 과거 백제의 문화가 얼마나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는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왕흥사지로 가는 길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코스모스 꽃길을 걸으면서 백제문화를 맛보러 부여로 가는 건 어떨까? '2010 세계대백제전'은 오는 17일까지 부여와 공주 일원에서 다양한 행사와 함께 펼쳐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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