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6.01 통권 597호(p320~327)
두산의 ‘중앙대 실험’ 1년 관전기
“1라운드는 두산 勝, 2라운드는 이제 시작?”
구가인│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comedy9@donga.com
● 입학성적 1% 상승 부른 두산효과
● 성과급형 연봉제, 총장임명제 도입… 술렁이는 교수들
● “예술가도 대차대조표는 볼 수 있어야” 전체학생 교양회계 의무화
● “긍정 7, 우려 3” 두산베어스 응원 가는 학생들
● 하남캠퍼스 이전, 교육단위 구조조정 둘러싸고 2라운드 시작
“내 발목을 잡는 놈이 있으면 그놈 손목을 자르겠다. 그래도 잡는다면 내 발목을 자르고라도 가야 할 길을 가겠다.” 지난해 여름 중앙대 교수들은 두산중공업 본사 및 두산계열사 공장이 있는 창원에 내려가 ‘주인 없던 집에 들어온 새 주인’과 1박2일을 보냈다. 박용성(69) 두산중공업 회장(이하 이사장으로 통일)은 지난해 6월 이사장 취임 직후 3개월간 교수 및 교직원들과 20여 차례만났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시절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표현해 ‘Mr. 쓴소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던 박 이사장은 중앙대 개혁계획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발언하며 초반 기선을 제압했다. 파격 발언은 일부 언론에 몇 차례 소개된 바 있다. “대학평의회에 학생들이 포함되는 건 좀 재고했으면 한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지 왜 대학 경영에 대해 간섭을 하려 하나. (중략) 마치 기업 이사회에 노조위원장이 들어와 감 내놔라 하는 것과 같다.” - 2008년 10월 2일 기자간담회 “솔직히 말해 자본주의 논리가 어디 가나 통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 2008년 11월호 월간조선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판매가 되듯 대학도 사회가 원하는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 2009년 5월 4일 중대신문 그 발언의 파격만큼은 아니더라도 두산그룹 법인 참여 후 지난 1년간 중앙대는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다. 더불어 그 변화에 대한 평가와 반응도 제각각이다. 기업의 대학 경영을 바라보는 시선 참고로 기자는 중앙대 출신이다.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대학을 다니는 동안 선배와 동문 교수, 재학생들 사이에서 “우리 학교가 옛날엔 A, B대학 못지않았다” “요즘 들어오는 애들 점수가 정말 아니더라” 식의 이야기를 적잖게 들었다. 학교의 위상이 떨어지고 있다, 학교 발전이 더디다는 것은 중앙대 내부에서 오랫동안 공유해온 위기 혹은 패배의식 같은 것이었다. 일부에서는 대학에 투자하지 않는 김희수 전 재단을 ‘1000원 재단’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특기할 점은 ‘돈 없는’ 재단이 문제라는 인식은 공통적이었지만 기업의 대학 경영 참여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이 더 우세했다는 사실이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는 “어떤 명문사학도 기업이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는 없다”는 대화가 오갔다. 기업에 대한 견제는 비단 중앙대뿐 아니라 당시 대학사회의 분위기이기도 했다. 1996년 삼성이 성균관대 법인에 참여할 초기 일부 재학생들과 교수의 반대로 진통을 겪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10년 남짓 흐른 지금 분위기는 역전됐다. 많은 대학은 투자해줄 기업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대학 경영에 관심을 갖는 기업 역시 늘고 있다. 신입생 백분위 1% 높인 두산효과 두산의 중앙대 법인 참여는 최근 일고 있는 대학과 대기업의 ‘만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사실 중앙대의 대기업 인수설 역시 2007년경부터 돌았다. 현 박범훈 총장이 SK와 롯데 등 몇몇 대기업을 찾아가 법인 참여를 권유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 때문에 두산그룹이 “(전 중앙대 재단인) 수림재단에 현금 1200억원을 지원하고 재단이사회 운영에 참여한다”고 발표한 직후 학교 분위기는 “기대에 부풀었다”는 편이 적절했다. 학교 게시판에는 ‘두산효과’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졌다. 실제로 올해 2009년 대학입시 정시모집에서 중앙대는 2008년 입시보다 높은 5.93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중앙대 측은 비단 경쟁률만 상승한 게 아니라 전반적인 입학 평균성적이 올랐다는 점을 강조한다. 박상규 중앙대 입학처장(통계학과 교수)은 “백분위 점수에서 평균적으로 1% 정도 상승했다”면서 “특히 하남캠퍼스 이전설로 인해 안성의 상경학부는 5% 정도 점수가 올랐다”고 밝혔다. 편입생 모집을 포함한 전체 입시 지원자 수 역시 전년 대비 2만명 정도 증가한 7만5000명으로 연간 지원자 규모에서는 사상 최대수치다. 박 처장은 “특히 고무적인 것은 대학 위상을 보여주는 특목고 출신 지원자 수가 전년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입시 결과를 보면 학교 위상이 눈에 바로 보이고 성과를 알 수 있다. 특히 두산 거점지역인 영남 쪽에서 선호도가 높아진 걸 피부로 느낀다.”(박상규 교수); 두산의 법인 참여로 인한 후광효과에 그 누구보다 높은 기대감을 가졌던 것은 중앙대 내부구성원들이었다. ‘중대신문’이 2008년 6월 두산그룹 법인 참여에 관해 재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92%가 법인 교체에 긍정적으로 응답했으며, 교수 및 재학생 등 전 구성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8년 9월 여론조사에서도 81.5%가 새로운 법인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정경대의 A교수는 “재벌기업 인수에 대해 우려가 없던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학교가 발전해야 한다는 것, 어떤 방향으로든 변화가 필요하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여기에 딴죽을 걸기 어려웠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기업식 경영시스템 도입 본격화 학교법인에는 박 이사장을 포함해 박 이사장의 형제인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 박용현 두산건설 회장, 그리고 두산 관리본부 부사장이던 이태희 두산 사장, 전 두산기계 사장이던 이병수 이수테크 대표이사 등 5명의 ‘두산 사람’이 이사진으로 참여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초기 소비재 중심의 기업이던 두산은 M&A를 통해 중공업 중심으로 체질을 바꾸며 성장한 그룹이다. 박 이사장은 현재의 두산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추진력이 강한 박 이사장의 스타일이 중앙대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그중 ‘기업식 경영시스템 도입’은 지난 1년 중앙대의 대표적인 변화다. 중앙대는 국내 대학 최초로 교수 및 교직원 연봉제를 도입했다. 중앙대 교수들은 2010년부터 교수 개인의 연구업적과 교육실적, 봉사 등에 대한 평가에 따라 S, A, B, C 등급으로 나뉘고, 연봉을 차등 지급받는다. 최하 등급인 C를 제외하고 평가는 상대평가로 이뤄지는데 S는 5%, A는 20%, B는 65% C는 10% 정도로 분포된다. 평가는 연구, 교육, 예체능 그룹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연구논문의 수가 중요하다. 윤경현 기획처장(컴퓨터공학부 교수)은 “최하 C등급을 피하기 위해서는 요구조건에 맞는 논문을 2년에 한 편 이상은 무조건 써야 한다”면서 “C급을 받을 경우 임금인상이나 호봉승급이 전혀 없으며 B는 일반적인 교직원의 기본 인상률을 적용한다. 나머지는 인상률을 얼마나 할 것인지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지만 몇 년이 지나면 지금은 비슷한 조건인 교수들도 크게는 수천만원 정도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평가 기준 자체가 강화됐다. 논문의 편수뿐 아니라 인용도 같은 질적인 면도 고려할 예정이다. 예컨대 이공계의 경우 사이언스나 네이처의 주 저자가 되면 무조건 S급을 준다.”(윤경현 교수); 학교가 전문 컨설팅회사에 컨설팅을 받게 된 것도 최근 일어난 변화다. 두산은 2008년 중앙대 법인 참여 초 매쿼리에 컨설팅을 받았으며, 인사 컨설팅회사인 머서에 교직원 평가와 교수 연봉제, 연구평가 지표에 대한 컨설팅도 맡긴 바 있다. 채용시스템도 기업식으로 바뀌었다. 기존의 교수임용은 학과에서 모집인원의 6배수를 추천하면 교원인사위원회가 그중 절반인 3배수를 뽑고, 최종적으로 총장단이 면접을 한 후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른바 학과에서 ‘미는’ 지원자가 임용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올 상반기 채용부터는 학과에서 추천한 3배수 인원에 대해 법인이 외부전문가들에게 평가받은 결과를 참고해 최종 결정을 내리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신임교수 채용의 경우 외부 헤드헌팅업체를 통해 전문가 평가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대 한 관계자는 “이번 교수임용에서는 전례 없이 각 학과에서 올린 지원자 중의 40% 이상이 탈락했다”고 귀띔했다. “개혁해서 학교를 발전시킨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니다.” 이 같은 변화에 대한 교수들의 눈길은 곱지 않다. 교수들은 특히 새로운 재단이 대학구성원들의 의견에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는 점을 지적했다. 진보적인 성향의 문과대 B교수는 “재단 바뀐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노골적으로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대학과 기업이 다르다는 데 대한 인식이 없다.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든다”고 비판했다. 머서案과 총장 임기연장… 교수들이 뿔났다 박 이사장은 취임 후 80일이 채 되지 않은 지난해 8월말 강원 평창에서 열린 전체 교수회의에서 학과 운영의 ‘선택과 집중’을 통한 교육단위구조조정 계획과 성과급형 연봉제 도입, 총장 직선제 폐지 등 파격적인 개혁을 예고한 바 있다. 이후 그는 즉시 실천에 들어갔다. 기업가의 이러한 속도감은 교수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 8월 박 이사장의 발표 이후 일부 교수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긴장감이 형성된 것은 9월 연봉제에 대한 컨설팅업체 머서의 교수평가제도 개선안이 발표된 뒤부터다. 교수협의회와 문과대를 비롯한 몇몇 단과대 교수가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일방적인 개혁안’에 대한 비난성명을 잇달아 발표했다. 결국 다시 교수가 참여하는 개편위원회가 열렸고 연봉제에서 최하 등급인 C급을 절대평가로 바꾸고 시행시기를 1년 늦추는 등 일정부분 조절하는 선에서 도입하기로 했다. 당시 개편위원회에 참여한 한 교수는 “성과급제를 보는 시각은 교수마다 달랐기 때문에 폭넓은 의견수렴 과정이 필요했는데 워낙 다급하게 진행됐기 때문에 그럴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이사장이 ‘다른 것은 양보할 수 있지만 성과급제 무력화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 받아들여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이사장의 총장 선임 방식도 논란거리였다. 이전까지 총장은 교수 직선제로 3배수 뽑은 뒤 재단이 선발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취임 당시 ‘총장 및 교수 인사권 행사’를 강조했던 박 이사장은 기존 박범훈 총장의 임기를 연장하는 방식으로 연임시켰다(총장임기는 4년). 중앙대 홍보실 측은 임기연장에 대해 “(박 총장이) 법인 교체 이후 하남캠퍼스 이전 등 여러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라는 이사회의 판단에 따라 새 법인의 효과가 드러날 때까지 임기를 연장하기로 한 것”이라며 “임명장의 만기일자가 2년이지만,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일부 교수들은 그동안 정치참여와 부적절한 발언으로 문제가 된 바 있는 박 총장이 연임된 데 대해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경영대의 한 교수는 “이사장의 총장 직선제 폐지 발표 당시, 모 대학의 유명 총장을 데려온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더불어 이사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교수도 있었기 때문에 마냥 재단을 비판하기도 곤란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2008년 11월 중대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 총장의 지난 4년 임기활동에 대한 학내 여론은 부정적이다. 교수 43%, 학생 51%가 ‘못함’이라고 평가했다. 또 2009년 3월8일자 중대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실명비판이 등장하기도 했다. “작년 6월 신재단이 들어온 이후 대학에 불어닥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재자로서의 총장’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총장은 ‘현대사회 최고기관’의 수장으로서 자긍심과 품격을 가지고 대학과 기업의 차이를 신재단에 납득시키지 못했고, 연봉제 도입 등과 관련하여 갈등이 불거졌을 때에도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다. (중략) 오히려 부적절한 정치적 언행을 거듭함으로써 지식인의 권위를 훼손시켰다.(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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