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훈 총장 또 정치권 줄대기 ‘도마’

최재영 | 조회 수 1355 | 2009.06.01. 08:55


박범훈 총장 또 정치권 줄대기 ‘도마’
여당 의원 후원회장 수락, 여권 실세에 ‘강단 정치’ 허용

지난 대통령선거 캠프에 합류해 논란을 빚은 바 있는 박범훈 중앙대 총장이 최근 여당 국회의원 후원회장을 수락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 전망이다.

28일 한나라당과 중앙대에 따르면, 박범훈 총장은 지난 2월 한나라당 임태희 의원(정책위 의장)의 후원회장직을 수락했다.

박 총장은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 대선후보 취임준비위원장을 맡으면서 당시 이 대통령 비서실장이던 임 의원과 개인적 친분을 쌓아왔으며, 후원회장 수락은 임 의원측이 요청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 평교수들의 정치인 후원회 참여는 간혹 있는 일이지만, 고도의 공정성을 갖춰야 할 대학 총장이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후원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지난 2004년 박찬석 전 경북대 총장이 민주당 이인제 의원의 후원회장을 수락했다가 파문을 일으키며 후원회장직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당시 경북대 구성원과 동문들로부터는 ‘경북대를 대표하는 어른이 특정 정치인의 후원회장을 맡는 것은 옳지 않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차기 교육부장관이나 국회의원을 노린 정치적 선택’이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대학 교수들은 박 총장의 이번 국회의원 후원회장 수락에 대해 총장으로서 부적절한 행위라는 반응이다.

중앙대 모 교수는 “박 총장이 이번에는 후원회장을 맡아 또 정치권에 줄을 대고 있다”면서 “한 대학을 대표하는 총장으로서 특정 정당의 정치인을 돕는다는 게 문제가 없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수도권 모 사립대 법대 교수도 “대학 총장이 국회의원 후원회장을 맡는다는 소린 처음 듣는다”면서 “만약 우리 대학이라면 교수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간혹 평교수라면 후배 국회의원이 요청해 이름을 올려주는 정도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중립적이어야 할 대학의 총장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모양새는 부적절한 처신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총장은 특히 이재오 전 한나라당 최고의원을 지난 4월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로 임용해 ‘강단 정치’를 허용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 전 의원이 지난 3월 귀국하면서 사실상 정치를 재개했기 때문이다.

이 전 의원은 지난해 4월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뒤 한나라당 친 박근혜 의원측과 갈등을 빚다 5월 도미한 뒤 10개월 만에 귀국했으며 당분간 저술활동과 강의를 하면서 정치 재계 시점을 조율하고 있는 상황이다.

중앙대 인문대 다른 교수는 “여권 실세 정치인을 우리 대학에 모셔온다는 것은 우리 대학 사회로서는 참혹한 일”이라며 “정치인이 정치권에서 놀아야지 왜 대학에 오느냐 말이에요. 우리 대학이 불러서 모양을 갖춰주는 방식은 품위 있는 대학인이 할 일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초빙교수 감투를 쓴 이 전 의원이 대학생들 앞에서 어떤 강연을 할까. 지난 27일 오후 중앙대에서 열린 ‘글로벌 사회에서 한국의 국가 경쟁력’ 주제 강연에서 이 전 의원은 정치 연설을 연상케 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이 전의원은 이날 강연에서 “자원이 많은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4국과 달리 자원없는 우리나라가 이들 나라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정의와 공평과 행복이 통용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의와 공평과 행복이 통용되는 나라를 만드는 것, 이게 내가 말하는 ‘공동체 자유민주주의’다”면서 “밖으로는 세계 비전라인을 통해 우리 동포가 있는 국가와 그 국가의 지하자원을 중심으로 경제.문화적 영토를 넓혀야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고 역설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정치 연설로 들릴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강의를 듣고 난 모 학생은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말하셨지만, 어쩔 수 없이 그 분의 정치색과 선전 문구가 강연에 녹아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대 대학원신문은 이 전 의원을 지목해 아예 ‘폴리페서(polifessor)’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지난 5월 6일자에 실은 ‘본교가 폴리페서의 휴식처?’ 제하의 사설에서 “본교는 차기 집권을 노리는 정치인들의 휴식처나 선거캠프가 아니다”면서 “정치권력과의 연줄을 이용하려는 낮 뜨거운 행태로 본교의 명예를 훼손시키지 말라”고 비판했다.

박 총장은 앞서 지난 2007년 말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선거 후보자의 문화.예술 선거대책위원장과 한나라당 문화정책위원장을 맡아 대학 총장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교내외 비판과 함께 총장직 사퇴 촉구에 직면하기도 했다.

특히 김희수 당시 재단 이사장까지 나서 정치 활동 중단을 공개적으로 촉구하자, 위원장직 자진 사퇴를 발표한 이후에도 문화정책위원장직을 계속 맡고 있던 사실이 드러나 위선적인 행동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당시 문화정책위원으로 위촉돼 회의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문화정책위원장직에서 자진 사퇴한 줄 알았던 박 총장이 1시간여 지속된 회의 진행을 주도했고, 참석한 사람들 대두수가 박 총장의 회의 진행을 의아해했다”고 전했다.

잇따른 정치 행보로 학내외로부터 비판과 사퇴 압박을 받아온 박 총장이 이번 정치 행보를 통해 어떤 상황에 직면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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