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터널에서 ‘기업의 등불’ 만나다 어준선 안국약품·제약협회 회장
“도전하고 자아실현 도우니 노조가 할 일 없는 회사 되더라”
Profile / 중앙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어준선 회장은 서울대 경영대학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했다. 1969년 안국약품 대표로 취임한 이후 대한약품공업협동조합 이사장,제15대 국회의원, 자민련 충북도지부 위원장, 한국제약협회 이사장 등으로 활동했다. 올 2월말부터는 제약협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
70대 초반임에도 그는 스스로 아직 젊어서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 젊은 직원들과 대화하고 그들의 일을 도와주며 격려하는 것을 가장 큰 즐거움으로 생각하고 있다.
매일 아침 일찍 컴퓨터 앞에서 필요한 자료를 검토하는 것도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다.
사훈(社訓)과 사가(社歌)를 직접 만들었으며 한때는 김장철이 되면 직원들과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김장을 할 만큼 임직원들과 호흡을 같이하는 일에 열정적인 경영자다.
안국약품이 노조가 할 일이 없는 회사가 된 이유도 그런 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평생을 신념과 신의, 신용을 좌우명으로 기업을 이끌어온 그의 이력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자산일 수도 있다.
어 회장을 통해 불황의 터널을 좀 더 쉽게 통과하는 지혜를 얻어보고자 협회 사무실을 찾았다.
어준선 한국제약협회 회장과 본지 권대우 회장이 서울 방배동 제약회관 앞뜰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어 회장은 늘 위기가 따르는 제약업계지만 그럴수록 기회도 많은 법이라며 우리 손으로 글로벌 신약을 만드는 날이 머지않았다고 강조했다. |
창업 초 어려울때 기운 바지 입은 걸 본 은행직원
“저렇게 검소한데 돈 떼먹겠느냐” 운영자금 대출
Q. 어 회장님을 뵈면 눈 건강을 먼저 연상하게 됩니다. 안국약품이 진해거담제나 고혈압치료제 등 여러 종류의 의약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안약인 토비콤이 머릿속에 박힌 때문일까요? 하고많은 의약품 중에 눈의 건강을 염두에 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처음부터 제약업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첫 출근한 직장이 무역회사였지요. 그 회사에서 제약업계에 필요한 원료를 수입 대행하는 일도 했습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30대 초반에 이사로 승진할 수 있었고 거래하던 제약회사가 부도를 내자 저는 관리담당 상무로 파견됐습니다.
그것이 제약업과 인연이 된 셈입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저로선 새로운 인생을 여는 계기를 마련했던 것 같습니다.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의학자들은 신체의 각 부분 중에서 눈이 가장 정교하고 가장 분화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합니다.
그래서 눈은 아름다움이나 건강의 척도나 다름없습니다. 안국약품은 국민의 눈과 함께 성장했고 앞으로도 국민의 눈 역할을 하는 기업이 될 것입니다.
Q. 눈은 몸과 마음의 등불이나 다름없습니다. 눈이 몸의 건강상태를 알려준다고 하지요. 그런 점에서 안국약품이 눈 건강뿐 아니라 국민의 눈 역할을 하는 등불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기업이 나름대로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는 생명력을 갖는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시장의 변화를 읽고 미래에 대비하는 CEO의 역량은 그래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작은 개울을 건너고 큰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때로 엎어지며 좌절의 순간을 피할 수 없습니다. 또 험하고 높은 산을 넘어야 비로소 넓은 바다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처음 회사를 시작할 당시 저의 입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종업원들에게 월급 주는 날은 바로 ‘두려운 날’이었지요.
부족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은행 문턱을 수시로 드나들어야 했고, 살던 집을 담보로 저당 잡혀도 자금은 항상 부족할 수밖에 없었지요.
Q. 기업이 창업돼서 긴 세월을 한결같이 순탄한 길로 갈 수만은 없습니다. 과거에는 평균수명을 30년 정도로 봤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고 진화하지 못하면 바로 도태되는 것이 요즘 기업의 수명입니다. 기술 발전속도나 기업환경이 그만큼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죠.
제약업계의 경우 바이오기술의 빠른 진화 등으로 부침이 앞으로 더욱 심해지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어느 산업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제약산업의 경우 특히 성장과 위기를 반복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지요.
제약산업의 시장규모나 관련 기업들의 매출규모를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거대 글로벌 제약 1개사의 매출액이 국내 전체 시장 규모와 맞먹는 현실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서 생각해 보십시오. 글로벌 제약회사를 보면 우리의 성장잠재력도 그만큼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는 차세대 동력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위기가 늘 뒤따르는 제약업계이지만 그만큼 기회도 많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도 글로벌 신약을 탄생시킬 수 있는 기업과 기술들이 앞으로 많이 나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내 가족 챙기는 마음으로 ‘국민건강 지킴이’ 될 것
Q. 제약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투명경영, 글로벌경영을 많이 강조하셨더군요. 우리의 현실로 볼 때 아직 이런 것을 논할 만큼 체력이 뒷받침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만.
물론 그런 측면도 없진 않습니다. 제가 회장이 된 후 하나는 꼭 해야겠다는 것이 있습니다. 신뢰 회복이 그것입니다. 신뢰가 전제돼야 글로벌경영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제약회사의 신뢰도가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리베이트 문제입니다.
외국 제약사들이 본격적으로 상륙하면서 한국 제약사들과 한판 경쟁이 붙게 됐습니다.
의사들은 같은 값이면 외국 제품을 쓰려는 의식이 강해 경쟁에서 이기려다 보니 리베이트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국내 회사들의 수준은 낮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리베이트 없이도 경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모든 회사들이 ‘이제는 이런 것 없애자’는 데 공감하고 있습니다.
Q. 외국 제약사들이 국내 제약사들의 우수한 인재를 빼간다고 불평을 한 적이 있지요? 이것은 노동시장의 자연스러운 현상 아니겠습니까?
외국 제약사가 더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임금 수준도 높으니 직원들 입장에선 그럴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의 속성은 이해하지만 젊은 인력을 교육시키고 사회에 적응하게 하는 것도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의 한 부분입니다.
국내 제약사들은 신입직원을 뽑아 막대한 돈을 들여 교육시켜 현장에 내보내는데 외국사들은 달라요. 쓸 만하면 직원을 빼가는 일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외국 제약사 단체 관계자들을 만나 이 같은 문제점을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Q. 다시 안국약품으로 화제를 돌려볼까 합니다. 사훈에 관심이 가는 대목이 있더군요. 제약회사에서 인류의 건강을 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미 1970년대에 ‘①인류의 건강과 건전한 세계 ②새 것에의 도전과 무한한 발전 ③자아의 개발과 사회에 대한 공헌’으로 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로서는 다소 생뚱맞은 사훈 같기도 합니다. 어떤 계기에서 이렇게 했나요?
고교 시절(대전고) 저는 문학청년이었습니다. 졸업반 때 단편소설 ‘여인’을 써 교지에 기고할 만큼 관심이 많았지요.
대학 4학년 때는 미국의 경제지 〈The American Economic Review〉에 실렸던 토마스 소웰(Thomas Sowell)이 쓴 칼 마르크스의
사훈을 직접 만든 것도 저의 이런 기행(?)을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시로 보면 새것에의 도전, 자아의 개발 등이 제약회사의 사훈으로는 적합하지 않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기업성장의 동력이 창의력과 도전에서 나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것이 지금의 안국약품을 있게 한 에너지가 된 것 같습니다.
Q. 좀 가슴 아픈 얘기를 꺼내 죄송합니다. 회장님은 유별나게 국민건강을 앞세우지 않나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물론 제약회사가 기업이념으로 건강을 표방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말입니다. 공식로고와 회사 이름 사이에도 ‘건강의 등불’이란 말을 오래전부터 넣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불행하게도 세 번씩이나 결혼을 해야 했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아내가 건강 때문에 일찍 떠났기 때문이죠.
제가 결혼한 때가 1962년입니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된 것은 당시 건강이 좋지 않은 부친을 위해 서둘러 결혼한 셈입니다. 그러나 결혼식 당일 고향에 계셨던 부친이 운명했다는 비보를 접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제가 우리 가정에서 실현하지 못한 가족 건강의 중요성을, 그걸 잃고 난 후 사회 속에서 실현해 보고자는 꿈이 반영된 것으로 봐주세요.
먼저 간 두 아내는 저에게 “국민들의 건강을 챙기라”는 소중한 유산을 물려주고 간 셈입니다. 일찍부터 장학사업에 관심을 둔 이유도 그런 데서 찾으면 될 것 같습니다.
Q. 이미 과거사가 돼버린 얘기를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만, 5월이 마침 가정의 달이라 가족 얘기 좀 더 들려주시면 불황의 터널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얘기 자꾸 하면 안 되는데…. 신입사원 시절 회사에서 가불한 20만원으로 캐비넷과 이불 한 채로 신혼생활을 시작했지요.
그런 상황에서도 첫 아내는 조그마한 약국을 지키며 가정을 잘 꾸려줬습니다. 그러나 회사가 채 안정되기도 전에 젊은 나이로 병사했습니다.
초창기 어려웠던 회사경영을 생각하면 아내 역시 자신의 건강을 제대로 돌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2년 후 재혼한 두 번째 아내마저 결혼 10년 만에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니 건강이 제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제약업을 하고 있으니 내 가족을 챙기는 마음으로 국민건강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Q. 고 조병화 시인의 묘비가 생각나는군요. 그의 묘비에는 “나는 어머님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왔습니다”라고 돼 있습니다.
건강해서 장수하시겠지만 먼 훗날 “여보, 나 당신 심부름 끝내고 돌아왔소”라는 얘기를 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노력해야지요.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때론 힘들 때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면 조병화 시인의 말처럼 인생이 잠깐 다녀가는 소풍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고 하는 일들이 한결 가볍게 느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건강해지는 비결이 아닐까요?
Q. 비통한 가족사가 결국 오늘의 회장님의 존재를 더욱 의미있게 한 것 같군요. 회사와 종업원들이 상생하는 독특한 기업문화 역시 그런 데서 뿌리를 찾아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첫 아내의 유지에 따라 직원 장학기금(1983년 만들 당시 2800만원)을 마련했습니다.
그 당시는 회사가 매월 빚을 얻어 급여를 해결할 정도였으니 이런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장학기금도 아내의 이름을 따 ‘혜정장학회’로 했었지요.
국민의 건강을 생각하면서 우선 저 주변부터 건강한 가족들이 많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회사가 안정되면서부터는 이를 확대해 복지카드(본인은 물론 가족들도 쓸 수 있는)까지 만들었으니까요.
Q. 회사규모로 볼 때 쉽지 않은 결단을 한 것 같습니다. 노조가 할 일이 없는 기업, 지금까지 직원들을 해고하지 않은 기업으로 존경받고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대기업도 아닌데 헬스클럽과 수영, 검도, 요가에서 헬스기구 구입까지 지원해 준다는 얘기를 듣고 저도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국 경제가 지금보다 업그레이드되기 위해서는 노사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를 거창한 데서 찾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러지 않지만 예전에 김장철이 되면 우리 회사에는 젓갈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임직원들이 함께 김장을 해서 먹었기 때문이죠. 한 가족 같은 기업문화를 일구기 위해서 그랬던 겁니다.
사훈 얘기를 했지만 심지어는 사가(社歌)의 가사까지 제 손으로 직접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기업에 대한 열정과 직원들에 대한 끊임없는 사랑이 밑천이 돼 직원들이 믿고 따랐던 것 같습니다.
꿈을 찾고 꿈을 향한 길을 여는 것도 자기 자신
모든 위기는 사소한 내부균열에서 시작되는 것
Q.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쉼 없이 질병과 투쟁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인간에게 소중한 것은 부나 명예보다 건강인 것 같습니다. 어 회장께서 거쳐온 인생역정은 소중한 우리의 자산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렇게 봐줘서 고맙습니다. 인간에게서 건강이 중요하듯이 기업의 건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몸에 이상이 생길 때 사소한 부주의에서 생기듯이 기업의 위기 역시 사소한 내부의 작은 균열에서 시작될 경우가 많습니다.
우매한 자는 지껄이지만 현명한 사람은 이야기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혼자 지껄이기보다는 항상 직원이나 고객들과 이야기한다는 자세로 살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될 소지는 그만큼 줄어들게 됩니다.
평소에 저는 해불양수(海不讓水)라는 사자성어를 좋아합니다. 바다는 모든 물을 사양하지 않는다(河海不擇細流)는 뜻이지요.
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입니다. 낮기 때문에 바다는 모든 물을 받아들입니다. 바다가 열심히 모든 물을 받아들이듯 내 일을 열심히 하되 주위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조직도 함께 발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Q. 회장님 말씀 듣고 보니 개인이든 기업이든 스스로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겠습니다. 권위의식보다는 소통을 중시하는 문화가 뿌리내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요. 거울을 봤는데 자신의 머리카락이 지저분하다고 합시다. 그럴 때 거울을 닦아서 되겠습니까? 거울에게 야단쳐 봐야 소용이 없지요. 내 머리카락을 손질해야 합니다.
사업 초창기 운영자금이 모자라 은행을 찾아갔습니다. 지점장도 만나지 못한 채 차장과 융자상담을 했지만 대답을 듣지 못한 채 회사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대출승인이 떨어졌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직원이 지점장실에 들어가서 “사장이라는 사람이 헤진 바지를 재봉틀로 기워 입을 만큼 검소한 모습을 보니 은행돈 떼먹을 것 같지 않아 대출해 주자”는 건의를 했다더군요.
비즈니스도 그렇고 기업도 그렇고,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의 언행에서 성공과 실패가 나눠지기 마련입니다.
Q. 자제분이 35세 되던 해 경영을 맡겼던가요? 대부분의 경우 경영권을 맡겨놓고도 간섭하는 경우가 많던데 일찍부터 너무 많은 권한을 주지 않았느냐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잘하고 있는데 굳이 간섭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매달 초 한 번만 임원회의에 참석하여 매출의 흐름을 보고받고, 회사 전체의 운영 방향을 확인하고 잡아주는 것으로서 회장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회장이 모든 일을 다 보고받다 보면, 오히려 사장이 책임경영을 하지 못하고 눈치를 보게 되어 경영에 간섭하는 모양새가 됩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가급적 보고를 하지 말도록 합니다.
궁금하면 회사 전산망을 통해서 경영 현황을 다 파악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올해의 경우는 감성경영, 생산성 향상 이 두가지 화두만 던져줬습니다.
회사의 나이가 50년이 되다 보니 이젠 큰 방향만 제시해 주면 시스템에 의해 잘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가끔씩 마음에 와닿는 책을 읽으면 넌지시 전해주면서 참고하라는 말을 할 뿐입니다.
정리=아시아경제신문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사진=아시아경제신문 윤동주 기자 (doso7@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