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2009년 03월 09일(월) 오후 05:03
"원장님, 저랑도 하이파이브해 주셔야죠. 원장님 최고!" "밤샘 근무했는데도 김 간호사 얼굴이 환하네. 최고예요, 최고!"
새벽 6시 반, 밤 근무를 한 직원들이 교대할 무렵 하권익 중앙대 의료원장이 응급실로 들어서니 간호사들이 환한 얼굴로 양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하 원장을 맞이한다.
하 원장도 환한 웃음과 엄지손가락 치켜들기로 답하며 밤새 수고 많았고 좋은 하루 맞이하라고 기분 좋은 인사를 건넨다.
응급실을 나와 원장실로 들어선 하 원장은 오늘 생일을 맞은 직원들의 명단을 받아든다. 한 명씩 전화를 걸어 '생일 축하합니다'라며 노래를 불러준다.
"나한테는 우리 병원 직원들이 VIP다. 직원들이 행복해야 절로 환자들을 미소로 대하고 정성으로 대할 수 있다."
너털웃음과 함께 건넨 이 한마디에 삼성서울병원, 을지대병원 등을 거쳐 이번에 8번째로 중앙대 의료원장을 역임하며 화제를 모은 하 원장의 병원 경영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말로만 그치는 철학이 아니라는 듯 하 원장은 간호부장과 더불어 금세 원장실을 나서 꼭대기 15층으로 향한다. 15층 간호사와 의사들의 환대도 응급실 못지않게 대단하다.
15층에서부터 쭉 내려가며 하 원장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직원 가족들에게 일일이 인사한다. 한 병실의 직원 가족은 하 원장의 새벽 방문을 기다리며 일부러 잠을 물리친다. 병원의 한 간호사가 근무가 없는 때를 이용해 어머니를 돌보고 있는 병실을 찾은 하 원장은 너무 좋은 사람을 저희 병원 인재로 보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건넨다. 병실 복도를 청소하고 있는 청소부에게도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최고라고 말을 건다.
하 원장은 "병원 조직은 오케스트라와 비슷하다. 모든 구성원이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지만 지휘자가 그걸 일깨워 주지 않으면 보람도 못 느끼고 재미도 없다. 병원 원장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가 구성원들이 스스로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하 원장은 "직원들이 병원을 단순한 일터가 아니라 보람과 재미가 있는 삶터라고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딱딱하게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던 직원들이 한 번이라도 더 환자들의 손과 등을 어루만지고 눈을 마주치려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부임 한 달 만에 직원들이 원장에게 먼저 다가서 하이파이브를 청하고 서로서로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변화된 모습에 하 원장은 만족스런 모습이다.
하 원장은 "보통 석 달 정도 걸려야 변화가 보이는데 중앙대병원은 한 달 만에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며 "직원들이 이렇게 바뀌어 나간다면 곧 중앙대병원이 국내에서 가장 친절한 병원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이 병원에서 일하는 데 보람을 느끼고 진심으로 환자들을 따뜻하게 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하 원장의 원칙은 그의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하 원장은 "나는 내가 의사라는 게 가장 큰 행복으로 여겨진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는데 실제로 당시 제주도 촌에서 서울로 건너와 의사가 된 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회상했다.
또 하 원장은 "어머니께서 내가 의사가 될 때 환자들 손을 한번이라도 더 잡아주고 눈을 마주치는 의사가 돼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 당부가 지금까지 내 병원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원들을 존중하는 부드러운 리더십이 혹 병원에서만 통하는 건 아니냐는 의문에 하 원장은 오히려 성공한 많은 경영인들이 비슷한 리더십을 갖고 있지 않냐고 반문한다. 하 원장은 "경영(Management)이라는 건 사람(Man) 사이의 일들을 조절(Arrangement)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모임에 참석해 보면 성공한 경영인들 중 상당수가 사람을 대할 때 진심을 갖고 대하는 게 느껴진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중앙대병원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하 원장은 우리나라 스포츠의학을 개척한 대표적인 인물로 서울의대를 졸업한 후 대한정형외과학회장, 대한스포츠의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삼성서울병원 2~3대 원장, 서울보훈병원 원장 등을 역임하며 전문 병원경영인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아 왔다.
[김제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