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한국 중심 넘어 세계로] - 개혁 청사진

최재영 | 조회 수 1142 | 2009.03.02. 14:34


커버스토리

기업 마인드 이식… ‘경쟁과 효율’ 강조
개혁 청사진
중앙대는 두산그룹의 경영 참여 이후 미뤄 왔던 시설 확충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2월 18일 졸업식을 맞은 중앙대는 사각모와 가운을 입고 꽃다발을 든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기념 촬영이 한창이었다. 그렇지만 이들 졸업생들이 사진을 찍을 만한 장소는 그리 많지 않았다. 정문 입구에서부터 약대·자연대의 연구·개발(R&D)센터 신축 공사가 한창이어서 자동차들은 100m 떨어진 쪽문을 통해 드나들어야 했다.

흑석동의 뉴타운 개발로 집값이 상승하면서 학생들이 방을 구하지 못하게 되자 필요성이 제기된 기숙사 신축도 한창이다. 공학관과 도서관도 리뉴얼을 위해 비계(철 구조물)로 둘러싸여 있었다. 도서관은 완공 후 열람실이 두 배로 늘어날 예정이다. 이 공사 현장들은 그동안 중앙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공사를 미뤄 오다 지난해부터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두산그룹이 중앙대 경영에 참여하면서 맞은 변화다.

기존의 재단에서는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았지만 두산그룹은 중앙대를 키우기 위해 지속적인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동시다발적인 공사가 하드웨어에 대한 투자라면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도 아끼지 않고 있다. 올해 첫 도입되는 릴레이 장학금은 장학금 수혜자인 학생이 졸업 후 받은 장학금만큼 되갚아 이를 다시 다른 학생의 장학금으로 쓰는 것이다.

받은 장학금을 다시 되갚아야 한다는 점에서 학자금 대출과 차이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자가 없는 만큼 부담이 줄어든다. 또 장학금은 대개 원금을 재원으로 하고 이자를 장학금으로 지급하지만 이 제도는 전액 장학금으로 집행할 수 있어 수혜자들이 많다는 장점이 있다. 장학금과 학자금 대출의 중간 성격으로 새롭게 선보이는 장학제도인 것이다. 중앙대 측은 “학생과 학교, 선배와 후배 간의 연대감을 더욱 돈독히 하기 위한 효과가 있다”고 도입 취지를 밝혔다.

전문 컨설팅 회사 통해 조직 진단 받아

2000년 이후 중앙대가 대학들 간의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졌던 것은 사실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대학 신설이 쉬워지면서 우후죽순처럼 대학이 생겼지만 최근 수험생들의 숫자가 점차 줄어들면서 대학들 간의 학생 유치 경쟁이 시작됐다. 김태성 중앙대 홍보팀장은 “지금의 초등학교 3학년이 대입을 치르는 10년 뒤면 수험생 수가 현재 60만 명 수준에서 40만 명선으로 크게 줄어든다. 이제 대학은 공급자 중심 시장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고 대학의 무한 경쟁이 시작됐다”며 “그간 침체됐던 중앙대가 두산그룹의 경영 참여로 새로운 스타트를 하고 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두산그룹의 개혁 의지는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의 행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취임한 박 이사장은 두산그룹 회장과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지냈고 최근 대한체육회장에 당선됐다.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키워낼 수 있는 대학의 개혁에 적임자라는 평이다.

박 이사장은 이사장 취임 직후 “이름 빼고 모두 바꾸겠다는 각오로 개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대학교의 경영 진단 경험이 풍부한 컨설팅 업체 ‘머서’를 통해 조직 진단을 받았다. 동시에 박 이사장은 두 달에 걸쳐 창원의 두산중공업 사업장에 교수·교직원 770명을 초청해 순차적으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교수·교직원들은 두산그룹의 사업장을 둘러보며 기업적 마인드를 이해할 수 있었고 박 이사장은 학교의 현황과 구성원들의 요구 사항을 이해하게 됐다.

‘창원세션’으로 불리는 이 간담회에서 대학 개혁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졌다. 중앙대 측은 “밀어붙이기식 개혁이 아니라 상호 소통을 전제로 한 개혁이 시작됐다”고 의의를 설명한다. 재단 이사장이 교원들과 적극적인 대화의 자리를 마련한 것은 중앙대 역사에서 상당히 드문 일이다. 게다가 박 이사장은 취임 후 각종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학내 구성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학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도 적극적이다. 교내 홈페이지와 연동된 ‘CAU(Chung-Ang University)人’ 커뮤니티를 학생들과의 의사소통의 장으로 삼고 있다. 커뮤니티에서 “7개 사립대 공동 입시 설명회에서 이사장님이 학교를 직접 소개하는 동영상을 틀었으면 좋겠다”는 한 학생의 요구에 기꺼이 응했다. 이미 재계의 유명인인 박 이사장이 동영상을 통해 “학생을 보내주시면 책임지고 가르쳐 드리겠다”고 얘기한 것이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2009학년도 입시에서 중앙대는 사상 최대의 지원자가 몰렸고 특목고 출신이 대거 지원하는 등 큰 성과를 낳았다.
박용성 재단 이사장은 "이름만 빼고 다 바꾸겠다"며 경쟁과 효율을 강조한 대학 혁신을 주문했다.

재투자 가능한 ‘선순환 구조’로 혁신

두산그룹 측이 중앙대 개혁에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선순환 구조’다. 김태성 팀장은 “연세대 고려대가 꼭 돈이 많아서 운영이 잘 되는 것만은 아니다.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잘 굴러가는 것”이라고 배경을 제시했다.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핵심은 대학 자체의 역량을 키워 이익을 낼 수 있는 구조로 만드는 것이다.

대학이 영리를 추구하는 곳은 아니지만 자본이 있어야 재투자가 가능해지고, 돈이 없으면 건물을 세우지 못하고 교수를 임용할 수 없어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의미다. 김 팀장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재단이 계속 돈을 쏟아 부을 수는 없다. 다만 재정 구조를 선순환 구조를 만들 때까지는 아낌없이 투자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중앙대의 개혁은 기업식 마인드를 대학에 접목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올해부터 모든 교수·교직원에 대해 연봉 계약제가 실시됐다. 연공 서열제와 성과급제를 병행하고 있는 대학들은 있지만 전면적으로 연봉제를 실시하는 것은 중앙대가 처음이다. 교수의 경우 논문·강의·발표 등을 종합한 평가 트랙을 완성해 놓은 상태다. S, A, B, C의 네 등급으로 결과가 나오는데, S와 C등급은 최대 5000만 원의 연봉차이가 날 수 있다. 학교 측은 “특히 젊은 교수들의 의욕이 강하다. 연공 서열제라면 열심히 해도 보상이 별로였지만 지금은 뭔가 해볼만하다고 얘기한다. 나이 든 교수들도 함께 긴장감을 갖고 노력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행력 강화를 위해 총장 직선제를 폐지하고 임명제로 바꿨다. 총장 직선제가 별다른 효과도 없이 교수들 간의 반목과 대립을 낳고 총장도 선거 후 선거 공신들에게 보직을 배정하느라 적절한 인재 등용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 때문이다. 선거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업무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교수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이제는 ‘고3 때 죽어라 공부하고, 대학 와서는 실컷 노는’ 것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공부하도록 만들 계획이다. 일단 ‘회계원리’를 모든 학생들의 교양필수 과목으로 지정한 것이 눈에 띈다. 취업을 하든, 창업을 하든 실무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실용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와 함께 복수 전공을 의무화해 융합형 인재를 길러내고 졸업 인증, 학사경고 등을 지금보다 더 깐깐하게 관리할 계획이다.

교직원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일단 학생들을 많이 접하는 민원 부서는 관공서 같은 분위기에서 은행 창구처럼 밝고 세련된 분위기로 바뀌었다. 직원들의 업무 스피드도 빠르게 변신했다. “이래저래 학교 안팎으로 혁신에 대한 분위기가 넘쳐나고 있어 지금이 개혁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김 팀장은 전하고 있다.

조직 컨설팅과 창원 세션을 통해 중앙대는 지난해 ‘CAU 2018 ’를 최종적으로 완성했다. 이는 2018년까지의 개혁 로드맵을 그린 것으로 학교 내부에서는 2018년까지 세계가 선호하는 명문 대학으로 자리 매김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우종국 기자 xyz@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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