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박용성 이사장님께 학부생이 드리는 글
박용성 중앙대학교 이사장님 안녕하십니까.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학교의 변화를 위해 동분서주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월간조선> 11월호에 실린 이사장님의 인터뷰를 본 후, 고심 끝에 펜을 들었습니다. 새 재단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학내에서 하나의 '성역'이 돼버린 이사장님께 일개 학부생이 편치 않은 글을 올린다는 것은 큰 담력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묻지 마'식 성장조급증에 걸린 듯한 학내 분위기에서 대학 본연의 가치를 논하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기에, 바른 방향의 발전과 절차적 민주성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지성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기에, 정신적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고언 한 말씀 올리려 합니다.
새 재단의 등장과 활약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한 지도 벌써 6개월째에 접어들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재벌기업이 대학을 인수해 운영하는 것이 마냥 편치만은 않습니다. 대학이 자발·비자발적으로 소수 대기업의 직속 직업훈련기관으로 전락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비대해진 경제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할 어떤 공간도 남아나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를 떨칠 수 없게 합니다. 따라서 종속현상의 가장 극단적 형태인 기업의 대학 인수를 편하게만 바라볼 수는 없었습니다. 둘 사이에는 적당한 긴장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대학간 경쟁이 극심한 우리 사회에서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대학'이라는 구호만으로는 학내 구성원들의 어떤 동의도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시장의 논리를 거슬러 대안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지평이 점차 좁아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고착화된 대학 서열 구조를 깨지 않는 한, 돈 많은 재단 말고 다른 대안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 것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두산의 중앙대 인수 자체를 여기서 반대할 생각은 없습니다. 대안 없는 반대를 하기엔, 대학과 학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모습이 제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속물인지라, '전입금 0원'짜리 재단 다음에 들어선 부자 재단에 대해 적잖은 기대를 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고요.
하지만 이사장님, 그럼에도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현실이 변했다고 해서 반드시 목적이 그에 따라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새 재단이 학교 순위를 수직 상승시켜줄 것이라며 많은 학우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는 지금, 맹목적인 환호 반대편에 드리우고 있는 어두운 단상이 우려되는 것은 저의 기우일까요?
상식과 가치가 사치가 된 세상 속에서도, 진실과 거짓이 뒤섞여 무엇이 진리인지조차 구별하기 어려운 시대에도, '최소한'이라는 것은 있어야 합니다. 인수 후 이사장님께서 보였던 야심 찬 행보는, '최소한의 독립성은 살아있는 대학'이라는 저의 소박한 기대마저 뒤흔들고 있습니다.
얼마 전 <월간조선> 11월호에 실린 이사장님 인터뷰 내용은 그 절정이었습니다.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돈으로 대학사회를 쉽게 좌지우지할 수 있고, 기업식 변혁만이 대학을 개혁하는 유일한 방향이라고 여기는 듯한 발언은 정말 큰 충격이었습니다. 아직은 대학을 시장과는 다른 곳으로 여기고 있는 제가 너무 순진한 것인지요?
중앙대는 주인 없던 집? 학생과 교수는 뭔가요
이사장님께서는 학교 인수 후, 학내 반응을 보며 "자본주의 논리가 어디 가나 통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섬뜩할 정도로 솔직하고도 무서운 표현이었습니다.
이런 조소 섞인 표현이 대학 구성원들의 자존심에 아무런 상처도 주지 않을 정도로 자본의 논리가 대학에 침투한 현실이 씁쓸하긴 합니다만, 저는 세상 모든 것이 자본의 논리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봅니다. 다양성과 공공성이 생명인 교육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사장님께서는 더 나아가 두산의 법인 참여를 "주인 없던 집에 주인이 생겼다는 생각이 더 강하다"고 하십니다. 행여나 거금을 들여 재단에 새로 들어온 두산이 학교의 주인이고, 해마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있는 '개미' 학생들이나 '의와 참'을 외치며 학생을 가르쳐온 교수들은 손님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됩니다.
더욱 우려가 되는 것은 다음입니다.
"대학평의회에 학생들이 포함되는 건 좀 재고했으면 한다. 학생은 공부를 해야지, 왜 대학 경영에 대해 간섭을 하려 하나."
'손님'인 학생들이 대학 운영에 왈가왈부할 처지가 아니라면 할 말이 없습니다만, 적어도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고 배워왔습니다. 더욱이 평의원회는 사립대라도 교육의 공공성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에서 설립됐습니다. 여기서 구성원의 핵심을 이루는 학생들의 참여를 배제하겠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대학 운영에서 철 모르는 학생들의 의견은 일언반구도 반영하지 않겠다'는 뜻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인성교육을 최대한 축소하고 경영학·회계학 등 실용적인 학문을 전공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일률적으로 강조하겠다는 말씀도 충격입니다.
"현재의 대학 교양과목은 구청 문화센터 수준인데, 이런 걸 대학이 가르칠 필요가 없다.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모두 없앨 생각이다. 심신의 교양을 쌓는 건 스스로 해야지 왜 대학에서 해주나? 실생활에 필요한 학문을 가르쳐야 한다."
"기업인들에게 '중대 애들 뽑아 놓으니 숫자는 좀 알더라'는 평가받는 게 내 목표다."
"내년 입학생부터는 내가 자신 있게 기업에 세일즈를 할 수 있도록 하겠다."
효율과 자본의 논리로 재단할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모든 학생들이 전부 기업에 '세일즈' 되기를 바라며 대학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이 목표라 할지라도, 대학에서는 '취업공장' 마냥 찍어내기식 교육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불현듯 미국 월가에서 터진 금융위기를 초래한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그들은 최고의 학위와 경쟁력을 갖춘, 이사장님의 말마따나 '숫자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탐욕이 전 세계에 끼친 해악은 그들이 평생 벌어들인 이윤보다 몇 배는 더 컸습니다. 인성에 대한 충분한 고찰 없이 오로지 실용만을 보고 달려갈 경우, 그들이 뽐내던 지식이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엄청난 해악으로 돌아오는 예가 많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인문교육의 중요성은 여기에 있습니다. 지식과 가치의 깊이와 영속성, 공동체에 대한 올바른 이상을 심어주는 교육은 결코 실용학문만으로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학창시절 내내 주입식 입시교육만 받아온 게 우리 젊은이들입니다. '대학생 만들기' 교육만을 강요받아온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대학에서조차 다양한 소양 교육을 포기하고, 기계적인 지식만을 연마케 하자는 것인지요. 두산의 신입사원에게 바라는 인재상을 사회의 최고 교육기관에 다니는 대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보이는 건 제 착각일런지요.
이사장님께서는 우리나라의 교육 정책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말을 이어가셨습니다.
"3불 정책 당연히 폐지돼야 한다. 대학의 자율성을 말살하는, 구시대적 발상이다. 기여입학제를 왜 금지하나. 아이비리그에도 있다. 받아서 투명하게 쓰면 될 것 아닌가?"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자녀만은 빚을 내서라도 교육을 시켜 가난한 삶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부모들의 심정을 이사장님께서는 아시는지요.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기약하며 책상에 앉아 교과서를 펴는 평범한 집안의 아이들 마음은 헤아려 보셨는지요. 그런데 마지막 보루라 믿었던 교육마저 돈으로 살 수 있게 되면 그들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있어야 합니다. 기여입학제는 미국을 제외한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기형적인 제도입니다. 입학 과정에서 학생 본인의 능력과 무관한 부모나 친지 등의 영향력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세계적인 상식입니다. 기회의 평등은 이념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보편적인 가치라는 것을 다시 살펴 주시기를 바랍니다.
비판 목소리도 떠안는 따뜻한 개혁 됐으면...
이제 학교는 이사장님께서 평생 기업에서 쌓으신 경영철학에 따른 대대적인 개편작업이 잇따를 예정입니다. 교내 언론에 따르면 총장께서도 2학기 교수 전체회의에서 "이사장님의 경영철학을 담은 새로운 발전 계획의 틀도 만들어졌다"고 말씀했다고 전해집니다.
학교의 변화와 발전은 모든 구성원이 바라는 바입니다. 단, 그것이 바른 방향으로 대학답게 이뤄진다는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대학은 한 주체가 일방적으로 끌어가는 조직이 아닙니다. 개혁은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함께 아우르는 방향 속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그렇기에, 재단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해 논란이 되고 있는 총장임명제·교수평가제 등은 대학이 가진 정체성을 좌우할 사안인 만큼 구성원들과 좀 더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대학 개혁에 기업식 효율의 잣대를 무조건적으로 들이대는 것도 재고해야 합니다. 물론 기업 시스템의 적용으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들은 도입해야 합니다만, 대학은 근본적으로 기업과는 다른 비영리 기관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기업식 기준으로 약간의 저효율을 문제삼아,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확 바꾸자는 논의는 교육과 연구의 공간인 대학에서는 지극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변화의 과정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르게 마련입니다. 지금처럼 효율성을 기준으로 바꿔나갈 경우 더욱 그럴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꿀 대상은 대학이기 때문에, 경쟁과 효율의 논리로 잘려나갈 대상들에 대한 폭넓은 배려가 절실합니다. 칼을 쥔 사람의 일방적인 추진보다, 비판의 목소리까지 함께 떠안고 가는 따뜻한 개혁이 돼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걸어갈 길은 거기에 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