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8일 재계 11위 기업인 두산과 사학명문 중앙대 사이의 인수 양해각서 체결이 전격 발표되었다. 김희수 현이사장이 고령이고 그 자녀들이 교육사업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 익히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결정이 날 것으로 예상은 되었지만 이번 발표는 매우 깜짝 놀랄만한 뉴스로 다가왔다. 소식통에 의하면 애초에는 롯데와 협상을 진행중이었으나 두산에서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여 두산으로 급선회 하였다는 것이다. 이번 발표를 접한 사람들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크게 두가지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지난 20여년간의 꾸준한 하락에 마침내 제동이 걸렸다는 안도감이고, 또 하나는 재계 10위권 밖의 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했다는 것에 대한 일말의 아쉬움(?)일 것이다. 결국 관심사는 지난 97년 삼성을 재단으로 영입함으로써 수년만에 연고대급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성균관대의 성공적인 전철을 과연 중앙대가 따를 수 있을까 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성균관대의 예를 통해 한껏 기대치가 높아진 동문과 재학생들의 눈높이를 과연 두산이 어느 정도까지 충족시켜줄 수 있을까?
현재까지 언론에 발표된 청사진은 장밋빛 일색이다. ‘초일류 의대 육성’, ‘한국의 MIT 육성’, ‘전반적 대학 발전’ 등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는 이야기는 오랜 기간 재정난에 허덕여온 중앙대로선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다(언론에 보도된 ‘1200억원+알파’ 현금 출연은 대학이 아니라 김희수 현이사장이 갖고 있는 일본 현지 학교법인에 지급하는 것이라고 한다). 두산은 이미지 업그레이드와 사회적 공헌을 위해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만도 없다. 사실 과거 김희수씨가 중앙대를 인수할 때도 역시 ‘고국에 공헌하고 싶어서’, ‘동양 최대의 사학 육성’ 등과 같은 화려한 공약을 내걸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두산과 중앙대의 만남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걸까? 그동안 삼성을 비롯한 여러 대기업과 꾸준히 물밑 접촉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인수가 성사되지 못했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협상을 하는데 있어 상대방의 입장에서 접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상대방이 중앙대에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를 따지기만 했을 뿐 중앙대가 이 회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수를 원하는 것은 대기업이 아니고 부채가 700억에 달하는 중앙대 쪽이었는데도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두산이 중앙대에 무엇을 원하고 중앙대는 두산에 무엇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진지한 탐색을 해볼 필요가 있다. 기업생리상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거래를 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무언가 얻고 싶은 것이 있어서 대학을 인수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두산이 어떤 기업이고 중앙대가 두산에 어떤 가치로 비춰지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두산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고 가족 기업이다. 과거 경영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형제의 난’과 같은 분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너의 영향력이 매우 크다. 또한 두산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과거 간판이었던 맥주 등 소비재 위주의 사업을 매각하고 적극적인 M&A를 통해 중공업, 건설 등의 기간재 중심기업으로 180도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두산의 성장 전략은 ‘선택’과 ‘집중’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분야는 그것이 비록 이전의 간판사업이었을지라도 과감하게 정리하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온 두산의 행보는 현재까지 매우 성공적인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그러한 두산이 그룹 숙원사업이자 미래 성장동력으로 기획중인 것이 바로 의료사업이다. 여기엔 서울대병원장 출신인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의 의사가 크게 작용했을 것이며 앞으로도 중앙대 행보를 좌우할 결정은 박용현 이사장이 내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중장비, 건설 인프라 부분의 R&D를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공대가 약한 중앙대를 인수한 배경 속에는 두산그룹의 중장기적인 계획에 큰 도움이 될수 있는 서울시내에 위치한 2개의 부속병원과 의대가 있다는 사실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거의 의대설립 하나만을 위해 성균관대를 ‘전반적으로 발전시키는 조건으로’ 통째로 사버린 삼성의 행보를 두산이 밟아나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두산이 중앙대에 투자하는 목적 가운데 가장 현실성 있는 것은 바로 병원과 의대, 약대 쪽의 분야가 될 것이다. 이것이 중앙대 내부에 차별을 낳고 부정적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의약계열분야 학문의 발전이 대부분의 사학에서 전반적인 대학 발전을 견인하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재벌의 지원을 받는 대학과 종합병원에 의해 설립된 대학들은 거의 예외없이 이러한 순서를 밟아나갔다. 만일 두산이 일류의대와 일류대학병원을 소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중앙대를 인수했다 할지라도 그 수혜를 모든 대학 구성원이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밖에 중앙대와 두산이 서로 윈-윈할수 있는 분야는 역시 두산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중공업 분야, 그리고 중앙대가 확보해놓은 로스쿨, 중앙대의 오랜 간판인 마케팅 쪽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간과해서 안될 것은 ‘한국의 MIT'라는 요구가 두산보다는 중앙대 쪽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중앙대에서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두산이 공대육성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소리다. 따라서 ’한국의 MIT'란 공약은 두산의 투자에 상응하는 결과를 내놓았을 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며 현 시점에서는 불투명하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중앙대가 앞으로 이공계통 학문의 발전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하였다는 것이다. 우수한 교수가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지 못해 타학교로 이직하는 일이 없어지게 되는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한편 중앙대가 두산으로부터 얻을수 있는 것은 단순히 재정적인 측면에 그치지 않는다. 어쩌면 가장 큰 기대는 그동안 중앙대를 지배해온 무사안일주의의 타파에 있을 것이다. 그동안 중앙대가 계속 하락해온 이유는 물론 빈곤한 재정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교수와 교직원 사이에 만연한 패배주의와 무사안일주의 탓도 크다. 로스쿨 정원과 지하철역명 문제 등에서 보여준 학교당국의 무능함에 실망해온 많은 동문들은 그동안 두산그룹이 M&A를 통해 보여준 혁신적인 경영기법을 대학행정에 접목해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대기업의 재단 영입은 중앙대를 포기와 안주로 점철된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게 하는 작용을 할 것이다.
중앙대와 두산의 관계는 아직까지 안개속에 있다. 전망을 불투명하게 만드는 가장 큰 걸림돌은 변화에 대한 저항이다. 두산의 영입이 반드시 중앙대에 긍정적인 영향만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기득권자들의 반발이 있을 것이고 경쟁 논리에 의해 불이익을 받는 구성원도 나올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이제 중앙대는 더이상 물러설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설립자의 부도로 인해 재일교포에게 소유권이 넘어간 지난 20여년간 중앙대는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대기업과 대학이 한 울타리 안에서 공존하는 것은 서로 윈-윈 할수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만일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언제든지 파기될 수 있는 관계인 것이다. 이번 두산과의 결합이 실패로 끝나게 되면 중앙대는 앞으로 다시는 기회를 잡지 못할 것이라고 봐야 한다. 대학 시장에서 떨이 매물처럼 돌아다니는 학교를 인수할 기업은 하나도 없으며 남는 것은 도산 뿐이다. 달콤한 환상 속에 빠져 과도한 기대를 하는 것도 금물이다. 아무래도 국내 11위권인 두산에게 세계 일류급인 삼성이 해주었던 정도의 지원을 바라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지금 중앙대가 해야할 일은 무엇보다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면서 현 상황에 충실하는 것이다. 사회는 비정하다. 가치가 있는 것에만 투자가 있게 마련이고 이제 중앙대는 20년만에 다시금 그 가치를 증명해야 할 시점에 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