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동문이나 그 가족은 누구라도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참석을 원하시는 동문이나 가족은 011ㅡ9730ㅡ9063(김건일, 행정학과 18회)으로 연락주시면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출발일시 : 2007년 11월 18일(일) 08:00 *우천불구
출발장소 : 용산 역전광장(조은여행사 버스 대기)
준 비 물 : 중식, 행동식, 겨울산행에 필요한 장비
회 비 : 20,000원
*등산가는 산의 법칙에 따라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며 언제나 배워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이다. -헤르만 후버-
오갑산(梧甲山, 609m) : 2개도(경기, 충북), 3개시군(음성, 여주, 충주)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오갑산은 산으로서의 구색을 두루 갖추었으며 여러 가지 특색을 가지고 있다. 바위가 거의 없는 흙산이면서 이상하리만큼 우뚝하다. 기름진 흙산이라서 숲이 울창하고 닭발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간 산줄기도 많다. 비탈도 산자락은 순하지만 머리 부분은 매우 가팔라서 고스락에 오를 때는 매우 힘이 들고 산행의 맛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흙산인데도 오랜 세월과 많은 비바람에 어떻게 그 우뚝함을 지키고 의연히 서있을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 오갑산이 자리 잡고 있는 여주 남부, 음성 북부, 충주 서부 지역은 이른바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니라는 비산비야(非山非野)라고 하기에는 산이 좀 높고 많으며 들이 적다. 그렇다고 산중이랄 수도 없다. 오갑산은 결코 낮은 산은 아니지만 또 높은 산이라 할 수도 없다. 이러한 고만고만한 산들이 오갑산 남쪽에 여러 개 자리 잡고 있다.
38번 국도 남쪽에 이 국도를 따라 보련산(765m), 국망산(770m), 승대산(567m), 원통산(645m)이 있고 원통산 남쪽으로 수리산(505m), 수레의산(679m), 가섭산(710m), 부용산(644m)이 있다.
오갑산 서쪽에는 이만한 큰 산들이 눈에 띄지 않고 북쪽으로도 여주 이천 위까지 겨우 200∼300m 대의 산들만이 깔려 있을 뿐이다. 동북에서 동쪽에 이르는 지역에도 가까이에 큰 산들이 없다. 그래서 안성, 용인, 이천, 여주 지방에서는 웬만하면 오갑산의 당돌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중부고속도로 일죽과 호법 사이, 3번 국도의 장호원과 이천 사이, 37번 국도의 장호원과 여주 사이에서는 어느 곳에서나 오갑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오압산(梧鴨山)’이라 되어 있으며, 충청북도 관광협회에서 발행한 아름다운 충북의 명산에는 오갑산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다. 거기에 삼국시대에 ‘오압산(梧壓山)’이라 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오갑산이 삼국시대에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지역으로 두 나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하려 치열한 싸움을 하면서 오갑산 고스락에 진을 치고 군대를 주둔시킨 뒤부터 오압산이라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조선조 병자호란 때의 전설 하나도 전하고 있는데. 정숙한 한씨부인은 나들이 한번 하지 않고 남편과 시부모 섬기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그러다 난리가 나자 호색한인 오랑캐 대장 빠오치가 한씨부인의 미색을 듣고 한씨부인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한씨부인은 낮에는 장독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나와서 시부모의 병을 구완하는 등 애를 썼다. 사정이 더 어려워지자 충주 앙성 영죽마을로 피신하기 위해 오갑산을 넘는 고개를 지나다 빠오치에게 붙잡혔다. 이 때 난데없이 파초선을 든 처녀가 나타나 강렬한 빛을 빠오치에게 비추자 빠오치의 칼이 자신의 목을 찔러 죽었다 한다. 그 처녀의 덕으로 한씨부인이 무사히 피신하게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으나 그 처녀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아마 산신령의 화신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