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CEO가 될 것인가, 실패한 CEO가 될 것인가. 많은 권한과 책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CEO에게 집중되는 요즘 회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CEO들이다. 이들의 결정 하나하나가 회사를 살리고 죽인다. 때문에 CEO들은 괴롭다. 언제 오늘의 찬사가 질책으로 바뀌어 자리를 내 놓아야 할 신세가 될지 알 수없기 때문이다. 대학사회마저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한 현실에서 대학 총장이란 자리 역시 예외일 수 없다.이 책은 CEO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명쾌하게 제시하고, 우화의 형식을 빌어 CEO 자신 깊숙이 내재된 약점들이 이들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자신의 본성에 내재한 유혹을 먼저 극복할 것, 문제가 생겼을 때 대부분의 CEO들이 체크하는 사항은 비슷하다. 비즈니스 전략이 잘못되었는지, 마케팅이 부적절했는지, 사용한 기술에 문제가 있었는지와 같은 것들이다. 초년생 CEO, 앤드류도 마찬가지.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트리니티사의 매출액이 계속 부진하자 마케팅 담당 부장을 교체했고, 그래도 나아지지 않자 교체된 그 부장을 해고했다. 하지만 지난해 실적을 보고해야 할 이사회를 하루 앞 둔 오늘, 자신이 일생 최대의 궁지에 빠져있음을 실감했다. 보고할 실적이라곤 잘 봐줘야 평년작 수준인 형편없는 수치뿐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 되었을까?
늦은 귀가길, 지하철 안에서 만난 신비한 경비원 노인과 나누는 한 밤의 대화를 통해 앤드류는 5가지 유혹에 대해 알게 되고 그것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신이 이끌고 있는 조직의 문제 해결은 바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 외의 문제들은 표면적인 증상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긴 하지만 이런 과정이 없이는 문제의 원인을 영원히 해결할 수가 없다.
첫번째 유혹은 많은 리더들이 자신의 우선순위로 회사의 경영실적이 아닌 무엇인가 다른 것을 설정하려는 경향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오류는 경영을 잘하려는 생각보다는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힐 때 생겨나며 그래서 '지위보다는 실적을 선택하라'고 충고하고 있다.그렇다면 박범훈 총장은 취임후 각종 경영평가나 운영지표들에 대해 어떠한 대응을 했는가? 2년전 사법고시가 극도로 부진한 결과를 접했을때 총장님이 하신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요즘 사법고시보다 행정고시가 대세입니다. 행정고시를 키워야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사법고시 결과에 대한 책임회피용인지 아니면 우회적으로 모인 동문들에게 위로를 하고자 하는 덕담이었는지 모르겠다.그 후에 행정고시가 발표되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 어떤 모임에서 "총장님 이번에 행정고시 몇명 합격한 줄 아시는지요?" 라고 질문했을때 답변을 하지 못하셨다.(주변 보직교수들 역시..) 이건 무슨 시츄에션인가? 그전에 행정고시의 중요성을 설파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당연히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거 아닌가? 그후에 우리학교 행정고시 결과는 어떠 했는가? 9명(04)->5명(05)->2명(06)으로 매년 감소하지 않았는가? 행정고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당연히 결과로 나타나야 하지 않는가? 또한 결과에 관심이 있어야 되는거 아닌가? 그외 BK21의 참혹한 결과 SCI 논문순위 추락, 중앙일보평가의 하락 등을 접했을때 총장님은 이러한 결과가 본인의 경영능력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안했단 말인가? 그렇다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두 번째 유혹은 리더가 측근이나 간부에게 인간적 호감을 얻으려는 태도이다. 대부분의 리더는 외로움 속에서 일하기 때문에 측근들과 인간적으로 가까워지게 마련이고 이들의 애로사항을 깊이 동정하게 된다. 그 결과 정작 맡긴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그들을 책망해야 할 때 우유부단한 입장을 취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인간보다는 책임을 선택하라'는 충고가 처방으로 제시된다. 이번 교무위원들이 학생들에게 보낸 메일을 보건데 총장 주변은 총장의 주변에 가신이자 홍위병들로 가득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다. 이러한 본인을 위한 홍위병과 가신과 같은 존재들에게 책망 할 수 있을까? 역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구도이다.
세 번째 분석적인 리더들에게서 자주 발생하는 경우로 리더가 결정을 자꾸 미루다가 해야 할 일을 제 때 분명히 정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리더는 자신의 결정에 오류가 없다는 평가를 원하는데,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이는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이 유혹을 예방하기 위해 '확실함보다는 명쾌함을 선택하라'는 처방이 제시된다. 직원들은 이런 리더가 과단성 있는 행동을 취할때 더욱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난 중앙대 직원들과 학교의 문제에 대해 개인적으로 많은 대화나 전화를 했었다. 적어도 내가 느낀 것은 직원들이나 동문들로부터 총장에 대한 존경심이나 경영능력에 대해 칭찬하는 경우를 많이 보질 못했고, 직원들 역시 학교일을 내일처럼 역동적으로 한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솔직히 답답만 했다.
네 번째로는 불화에 대한 두려움이다. 사람들은 조직원들 사이의 의견충돌을 피하려는 속성이 있고 또 그런 식으로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조화만을 추구하다 보면 생산적인 총돌이 없어져, 특정주제에 대한 열성적 의견교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고 그 결과 의사결정은 최선이 아닌 최적 수준에 머물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화보다는 생산적 의견충돌을 선택하라'는 충고가 뒤를 따른다. 불협화음을 이용하여 임원들 사이에 생각의 차이를 도출하도록 부추기라는 것이다. 한 예로 06년에 있었던 구조조정에 대해 학교교직원이나 총장님 양자 모두 성공적이었다고 자평을 하는 것을 봤다. 나름 많은 불협화음이 예상되는 구조조정이란 화두가 절대 쉽지 않음을 감안하면 만족한 자평을 하는 기분은 어느정도 이해는 됐다. 안성-서울의 유사학과 통폐합 등 일부 몇가지 구조조정에 대해 성공적인 영역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중앙대의 대의적 발전을 위해서 경쟁력과 시장 수요를 감안한 정원의 증감과 몇 개과의 폐과와 유망학과의 신설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하지 못한 것등에 대한 몇가지 아쉽고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임마다 성공적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는 말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총장님을 보면서 생산적 의견충돌을 선택하기보다 조화를 중시하는 유형의 CEO란 생각이 들었다. 취임후 모토도 하모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섯번째로 구성원이 리더에게 대드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리더에게 반박하며 대든다는 것은 부하로서도 결코 마음 편한 일이 아니다.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대드는 부하가 나온다면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지위약화 보다는 신뢰를 선택하라'는 충고가 의미를 갖는다. 임원들이 리더의 생각에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조직은 높은 조직을 뜻하기 때문이다. 각종 평가나 발표가 있을때마다 구성원들의 비판의 소리에 대해 학교측의 대응이란 것이 있었는가? 사과문 위로문이라도 있었는가? 신뢰를 쌓기위한 대화의 장이라도 있었는가? 동문회에서 요청해서 한것은 기억이 있다. 현재 중앙대는 재단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학교보다도 Pygmalion effect가 필요한 학교 아닌가? 그렇다면 더더욱 학교경영에 제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야 할때 아닌가? BK21발표때의 서강대의 손병두총장이나 이번 중앙일보평가때의 숙대의 이경숙총장이 어떻게 했는가.. 사과문과 위로문을 보내지 않았는가? 이들이 구성원들을 생각해 작은 수고를 아끼지 않은 것은 결과를 접하고 좌절한 제 구성원들에게 플라시보효과 이상의 무언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신뢰를 쌓게 된다는 것이다. 요즘 총장사퇴에 대한 학내 여론은 모럴해저드에 대한 외부의 비판 보다도 취임후 이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신뢰를 무너뜨려 온 것이 학내의 사퇴여론 형성의 근본적인 원인이라 생각한다. 모럴해저드는 마지막 기폭제가 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총장이 총장직을 수행 한다는 것은 실패가 명약관화하다.
지금 제 주체의 총장의 사퇴 요구는 총장에 대한 인신공격이 아니라 중앙대의 발전을 위해 책임있는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다. 개혁이 필요한 중앙대학교이고 그것의 출발은 최고책임자가 책임있는 행동을 보여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후배와 선배님들이라고 동문이자 그동안 나름대로 수고한 총장님의 사퇴를 언급하기가 마음 편하겠는가? 학교발전을 위해 온정주의를 벗어버리려고 나 자신과의 사투를 벌이며 어렵게 쓰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