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대홈페이지 '중앙인문학관' 임하연의 글방 <숲새네 노란벤치>의 작품들을 다시 정리하여 올립니다.
하늘에 빛 칠하는 불그림
임 하 연
버려진 장롱이 비에 젖고 있다
한때는 보송보송한 속살도 있었다
소중한 것들을 당연하게 품었다
잠결에 부끄러움의 빗장 떨어져 버렸다
소음과 먼지가 맘대로 드나들었다
빗물에 내어 불리면 씻어질까 싶었다
살이 된 묵은 때는 들에서 비를 맞는다
톡톡 우두두둑 툭탁 우당탕탕 탕탕탕
버려진 장롱에서 살 오른 슬픔이 나왔다
꾸무럭거리는 검고 털 난 아픔도 나왔다
말라 각질처럼 바수어진 희망도 나왔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긴 어둠도 나왔다
꼬깃꼬깃 구겨 박힌 무지개도 나왔다
땀과 피 흘리면 죽었던 우리가 살까
촛불이 파도 되면 언 가슴이 녹을까
뜨거운 눈물 강이 되면 어둠 씻어질까
쓰나미처럼 내달리는 꿈의 너울이 있다
바람 몰아쳐도 꺼지지 않는 촛불이 있다
하늘에 빛 칠하는 커다란 불그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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