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대홈페이지 '중앙인문학관' 임하연의 글방 <숲새네 노란벤치>의 작품들을 다시 정리하여 올립니다.
나의 아버지
임 하 연
고향을 떠나 내가 서울에서 산 지도 삼십 년이 넘었다. 자주 내려가지 못하니 추억마저 아득하다. 나는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글 쓰시는 모습을 늘 보면서 자랐는데, 그 모습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우며 존경스러웠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신 아버지는 장교 로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하시자 공직 생활을 시작하셨다. 장난기도 많으신 아버지는 부드럽고 따뜻한 성품이시기에 나는 친구처럼 편하고 좋았다. 아버지는 자식 중에서 특히 나를 예뻐하셨다고 한다. 내가 대학생이 된 후부터는 술을 즐기시던 아버지와 대작도 하고, 서투르나마 영어로 대화를 주고받기도 했다. 아버지는 영어를 잘하셨다.
아버지의 직무 처우에 따라 우리 가족은 관사에서 살았다. 지역 사람들이 아버지를 청렴하고 정직한 공직자라고 평했고, 그것은 아버지가 우리 가족에게 물려주신 가장 귀하고 값진 재산이다. 공직 생활 중 불의와 부정에는 과감히 저항하셨으며, 재물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는 분이셨는데 그런 점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기도 하셨다.
아버지는 퇴근길에 노숙자를 집에 데려오시곤 했는데, ‘아픈 사람들이 배까지 고프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일단 기운을 차려야 일을 하지.’라며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행려병자를 꺼리는 가족들을 설득하시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들이 우리 집에서 유숙하여 활력을 찾으면 일자리를 연결해 보내시던 기억들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상처 입은 동물들을 집에 데리고 오셔서 정성껏 보살피기도 하셨던 아버지는 항상 힘없고 약한 존재들의 편이었다. 그것은 위기와 고통에 처한 약한 생명을 감싸고 배려하는 아름다운 영혼의 숭고한 울림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부모님이 하늘로 돌아가신 이맘때가 되면, 스멀스멀 일어나는 그리움을 재울 수 없어 자꾸만 하늘을 쳐다본다. 한 가닥 잦아드는 심지마저도 자식을 위해 아낌없이 태우고 밑거름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으시며 생애의 마지막 시간을 서서히 사위어 가신 따를 수 없는 지극한 사랑 ! 우리는 부모님의 사랑을 하늘과 땅에 비교하면서도 가없는 그 깊이와 넓이를 진정으로 얼마나 느끼고 사는지?
며칠 전에는 오랜만에, 천국의 꽃밭을 거닐고 계실 사랑하는 아버지께 편지를 썼다. 언제든 부모님께 편지를 부칠 수 있는 내 가슴 깊은 곳의 천국행 빨강 우체통 ! 부모님과 한없이 정겹고 애틋했던 지난날의 추억들을 뒤적이며 또 한 철을 보내는 마음이 각별하다. 둥글게 퍼지는 물무늬처럼 영혼의 울림이 하늘을 채운다.
「나의 아버지」 임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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