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총 상임부회장

관리자 | 조회 수 2007 | 2007.07.25. 09:46
<경제인 산책>“노사 ‘게임 룰’ 흔들… 정부 ‘심판의지’도 흔들”
[문화일보] 2007년 07월 24일(화) 오후 02:55   가| 이메일| 프린트
‘이랜드·연세의료원 파업사태 악화’, ‘1년내내 적자 기업이 성과급 파업’…. 지난 19일자 문화일보 지면에 게재된 노동관련 주요 기사의 제목들이다. 이날 인터뷰를 위해 서울 마포구 서강로에 위치한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관으로 향하던 기자의 마음은 무언가에 짓눌린 듯 답답할 뿐이었다.

산별노조 문제와 기업별 임단협 파업, 비정규직 문제 등이 얽히고설킨 노사문제가, 오랜 부진의 터널을 지나 가까스로 회생 기미를 보이는 듯하는 한국 경제의 발목을 또다시 잡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노사문제는 한국 경제에 영원한 ’짐’일 수밖에 없는가. 노(勞)와 사(社)가 함께 웃고 더불어 아픔을 나누는 일은 실현불가능한 것인가. 어디에서부터 노사갈등 해소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나.

이날 기자와 마주한 김영배(51) 경총 상임부회장은 ‘할 말’이 무척 많은 듯했다. 2007년 7월 현재 펼쳐지고 있는 한국의 노사현실에 대한 그의 걱정과 근심은 넓고도 컸다.

#노동계 내부 혼선 정돈돼야
“한국의 노사문제는 현재 과도기적 상황입니다. 노동운동 자체도 양대 노총 간 경쟁은 물론이고, 민주노총 내부에서의 선명성 경쟁도 치열합니다. 대다수 노사관계 안정기업과 일부 강성노조 사업장 간의 노사관계 양극화도 최근 두드러지고 있어요.”
김 부회장은 “선진국 경험을 보면 노동운동 간 불필요한 경쟁이 없어지는 과정이 노사관계 안정의 과정이었다”며 “과도한 선명성 경쟁을 얼마나 빨리 없애느냐 하는 게 우리 노사관계 안정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산별노조 문제 역시 이 같은 노동계 내부의 ‘이중구조’를 해소하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 산별체제 노조는 일부 노동운동가들의 투쟁성 구호를 만족시키는 수단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최근 금속노조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파업 과정에서 불거졌던 지도부와 대중 근로자 간 갈등이 한 예이고요. 특정한 투쟁 대상을 놓고 기업별 체제를 선호하는 그룹과 산별체제를 선호하는 그룹 간 갈등이 매우 심한 상황이에요. 겉으로는 산별체제를 동조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기업 내 권한을 산별에 주는 걸 원치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김 부회장은 “산별체제에서 빚어지고 있는 중복교섭, 이중교섭, 이중파업 등의 문제를 근로자 스스로 정비해내지 못한다면 산별체제로 가기가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심판과 공정한 ‘게임의 룰’
김 부회장은 국내 노사문제가 ‘상생(相生)’보다는 ‘반목과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배경에 대해 “게임의 룰이 흔들리고 있는 게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축구시합에선 사이드라인과 골라인 역할이 있고, 심판의 역할이 있습니다. 사이드라인과 골라인 내에서 심판이 일관된 룰을 적용해 경기를 진행해줄 때 운동장에서 뛰는 선수들의 행위가 그 룰에 맞춰지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노사문제에 있어 엄정한 심판 역할을 해야할 정부의 법집행 의지가 흔들리는 게 문제입니다.”
그는 “정부가 노사문제와 관련해 너무 유연한 잣대를 들이대면 현행 법을 무력화시키려는 노동계의 기대심리를 높여줄 뿐”이라고 말했다. “노·사·정 간의 대화와 타협은 매우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 법과 원칙을 포기해선 안 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노사 양측이 엄정하게 룰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선 정부가 공정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야합니다. 정부가 법과 원칙을 실천해나가는 게 단기적 성과를 위해 법과 원칙을 양보하는 것보다 중장기적으로 보면 노사상생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아야 해요.”
#싸움 닭… 해불양수(海不讓水)
노동계 인사들은 김 부회장을 일컬어 ‘재계의 입’ 또는 ‘싸움 닭’이라고 부른다. 그는 경영계 내에서 노사관계에 관한 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이론가이자 전술가로 꼽힌다. 명쾌한 논리를 바탕으로 특유의 경상도 억양으로 노동계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해가는 그를 지켜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노동계 인사들이 많다.

지난 2004년 40대의 나이로 경제단체 수뇌부(경총 상임부회장)에 올라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그는 ‘토론회 스타’로도 유명하다. 토론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천하의(?) 노무현 대통령조차도 “토론회 때마다 김 부회장이 나오면 깜짝 놀라곤 했다”고 말했을 정도다.

그는 노동계에서 ‘공공의 적’으로 지목되고, 일부 비제도권 과격 노동단체로부터의 협박과 위협에 시달린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삶의 지침으로 삼는 게 있는지 넌지시 물어보자 그는 주저없이 ‘해불양수(海不讓水·바다는 물을 사양하지 않는다)’를 꼽았다.

“바다는 물을 가리지 않습니다. 때로는 그 물이 더러울 수도 있고 하수도물이나 공장폐수더라도 바다는 모두 받아들이고 하나의 물로 만들어내거든요. 저 스스로도 그런 도량을 키우고 싶습니다.”
#“웅덩이를 파야 물이 고인다”
현재의 한국경제 상황이 화제에 오르자 그는 ‘일자리’ 문제에 대해 큰 걱정을 내보였다.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이 외국은 20%를 밑도는데 우리나라는 35%에 육박합니다. 그마저도 이익을 남기는 이는 얼마 되지 않아요. 그렇다 보니 상당수 자영업자들은 일자리가 주어지면 현재 자영업을 포기할 준비가 돼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달라고 아우성이고요. 우리 사회가 취업자 중심의 분배에 너무 몰입해온 데 따른 결과입니다.”
그는 “앞으로 일자리 창출을 위한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그러기 위해선 기업투자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부회장은 “웅덩이를 파야 물이 고이듯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원활한 기업투자가 이뤄진다”며 “규제완화와 함께 기업투자를 미덕으로 봐줄 수 있는 친기업 환경이 조성될 때 투자라는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이랜드 사태 등으로 표출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서도 ‘일자리 중심’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즉 ‘아웃소싱’은 모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줄 형편이 안 되는 사업장에서 근로자 일자리 보호를 위해 대안으로 등장한 일종의 ‘고용보장 수단’이라는 것이다.

김 부회장은 “아웃소싱 근로자의 근로조건이 매우 악화되는 건 시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도 “같은 근로조건의 아웃소싱을 일자리 보호를 위한 대안으로 인정하지 않고 모두 정규직화하라고 압박하는 것은 자칫 비정규직 고용마저도 없애버리는 악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는 12월 새로 선출될 새 대통령이 어떤 경제정책을 펼칠지에 대해서도 ‘기대 반, 걱정 반’인 듯했다.

“투자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규제완화 등을 통한 활발한 경제여건 조성을 어떤 분이 잘 해줄 것인가 하는데 중점을 두고 후보들을 보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을 도외시하고 포퓰리즘에 영합하는 대선후보가 안 나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김영배는 누구
중앙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지난 1979년 경총에 입사한 김영배 경총 상임부회장은 입사 3년 만인 1982년 과감히 미국 유학길에 올라 노동시장과 실업 관련 논문으로 조지아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당시 이 결정을 “살아오면서 가장 잘했던 선택”으로 꼽았다. 이후 86년 귀국하자마자 곧바로 경총 조사부장으로 특채돼 현재 상임 부회장에 이르기까지 경총의 맏형 역할을 하고 있다.

머릿속이 늘 노사관련 문제로 채워져 있다보니 그의 삶의 일상은 한국 노동계 현실의 ‘처분(?)’에 좌우된다. 그의 흡연 습관도 이와 무관치 않다. 노동계 임단협이나 파업이 없는 10월부터 이듬해 2월 정도까지는 담배를 끊다가 임단투가 시작되는 3월부터 9월쯤까지는 다시 담배를 입에 대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 요즘은 산별노조와 비정규직 문제로 인해 담배가 더 늘었다고 한다.

노동계 인사들과도 술자리를 자주 한다는 그는 두주불사로도 유명하다. 요즘은 소주 2병 정도로 ‘자제(?)’하고 있지만 한때는 30분 동안 폭탄주 19잔을 들이켠 적도 있다.

▲1956년생 ▲부산사대부고·중앙대 경제학과·조지아대 경제학(박사) ▲경총 조사부장·상무이사 ▲중앙노동위원회 사용자위원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운용위원 ▲노사발전재단 이사
인터뷰 = 김병직 경제산업부 차장 bj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