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라면 당연히 지성인의 반열에 드는 줄 알았다.
헌데, 거기 물음표가 생겼다.
“외교적 교류가 끊겨서는 안 된다”며 금뺏지들이 중국을 방문했다.
‘인권의 옹호자’이자 ‘약자의 대변자’를 자처하던 그 야당의 떨거지들이 급기야 티베트를 방문하고 ‘엑스포’에 참석해 떨거지 대표자가 祝辭를 했다.
티베트 유린사태를 두고 “그건 1951년, 1959년에 있었던 일”이라고?
2009년 이후 승려를 비롯한 티베트인 159명이 焚身을 했는데, 그들이 몸을 불살라 가면서까지 전하려 했던 외침이 저들에게는 안 들린 겐가?
中共의 참혹한 티베트 침공, 달라이 라마의 망명 투쟁.
중고교생들도 뻔히 아는 저 참혹한 현실을 너희 떨거지들은 “70년 전 일이니” 무시해도 된다는 거여?
일제 침탈이 1905년부터 시작됐으니 “한 세기도 더 지난 일제의 조선 凌辱 쯤”은 아예 잊은 지 오래 됐겠구먼?
그러면서 “죽창가를 불러대는 건” 술 처먹고 노래방 가서 부르는 18번쯤이었나?
어이 거 떨거지 대표 ‘도 뭐시’.
中國 國花가 ‘모란’으로 정해질 듯하니 ‘모란꽃 당신’을 쓰면 어떻겠어?
‘접시꽃 --’으로 한국 금뺏지 달았것다, 중국에 일찌감치 ‘모란꽃 --’을 獻詩하면 중국이 최고훈장 ‘7.1훈장’을 주지 않을까?
내가 ‘시인의 품격’을 오해한 건가?
아니면, 시인도 뺏지 달면 저리 망가지는 겐가?
“기꺼이 살의 어느 부분도 떼어주고 가는 삶을
나도 살다 가고 싶습니다.“
저리 읊었던 자, 그 자에 대한 판단을 여러분께 맡기고자 합니다.
정치외교학과 72학번 김 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