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협 회장이 박범훈 총장님께 보냅니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글월을 올리는 것은 최근 우리 대학에서 교수들의 신분과 관련하여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사료되어 이에 대한 총장님의 입장을 알고자함입니다. 직접 찾아 뵙고 여쭐 수도 있으나 그동안 교협 회장으로서 본부와 접촉해본 결과, 그리고 교협의 활동 방식에 대한 동료 교수들의 여론을 수렴한 결과 이렇게 서신 형태로 문의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했습니다.
6월 17일에 우리 교수들은 안국신, 하성규 두 분 부총장으로부터 서신을 받았습니다. 이 서신에는 6월 15일 교협이 주최한 ‘교수업적평가 관련 조교수, 부교수 공청회’에 대한 두 분의 반응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두 부총장께서는 “교수 업적 평가제”에 관한 공청회에서 “제기된 중요한 문제점들 중 저희가 가장 가슴 아프게 받아들이는 사항”으로 “업적 평가기준이 매년 강화”되는 것은 “행정편의주의”라고 지적당한 점, “사회계열에서 교수 승진에 JCR 기준을 요구하면서 연간 책임시수가 15시간인 대학은 중앙대 밖에 없다”고 지적당한 점을 들고 있습니다. 교협 공청회에서 이런 사항에 대한 지적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두 분 부총장은 이번 서신에서 15일의 공청회에서 지적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교협 공청회가 열리게 된 중요한 이유가 최근 발표된 조선일보-QS 평가 결과와 그에 따른 본부 측의 교수업적평가 개정 시도라는 점은 인정하실 것입니다. 조선일보 평가가 나온 직후 총장께서는 우리 교수들에게 편지를 보내며 한편으로는 “우리 학교의 교육 및 연구 여건이 열악함”을 인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열악한 것이 교수님들의 연구실적”이라는 지적도 곁들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대학의 교육 및 연구 여건이 열악한 것도, 교수들의 연구실적이 열악한 것도 사실입니다. 교수들 역시 우리 대학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끼고 있었고, 과거보다 좋은 연구로 대학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자성과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부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우리 교수들이 연구실적을 향상시켜도 조선일보의 그것과 같은 외부 평가에서 우리 대학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있는데 이 점을 개선시킬 방안은 왜 말하지 않고 넘어가느냐는 것입니다. 명확히 드러난 학교의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 부총장들은 서신에서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대학구성원 전체가 자신의 몫을 다해 힘을 합쳐 헤쳐나아가야 할 상황인데, 왜 본부는 근본적인 문제는 피하고 있습니까?
교협 공청회에서 지적된 문제가 바로 그 구조적 문제였습니다. 지난번 조선일보 평가에서 우리 중앙대가 낮은 순위를 받은 가장 큰 이유는 교수들의 논문 수가 적고 논문의 인용 빈도수가 낮았던 것인데, 교협에서 구한 자료로 분석해보니 이는 전임교수(2008년 현재 907명)에 비해 시간강사 수(2300명)가 턱없이 많고, 그리고 그동안 우리 대학에서는 개인교수들의 논문 편수만 높이려고 했지 양질의 논문을 쓰도록 장려하는 제도가 없었다는 사실의 직접적 결과였습니다. 특히 중대한 문제가 과도한 시간강사 의존도로서 우리 대학의 시간강사 비율은 다른 대학들과 경쟁할 수 없을 만큼 높습니다. 우리대학에서 과도한 시간강사 비율은 전임교수 부족을 의미하는 것으로, ‘BK’ 대형 사업과 같은 중대한 프로젝트는 신청도 할 수 없었다는 지적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최근 평가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룬 대학들은 대부분 BK 대형사업단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대학들로서 이러한 대형사업 추진 자체가 충분한 교원 수가 확보되었을 때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현재 우리대학은 전임교원 부족, 과도한 시간강사 고용, 상대적 연구지표의 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총장께 질문합니다. 교수들의 연구실적을 높여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습니다. 공청회에서도 교수들 스스로 연구의 질을 높이고, 연구평가 시스템을 개선하고, 세계적으로 학계에서 인정받는 연구를 하자는 데 동의하는 교수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우리 대학이 지닌 연구 및 교육 여건의 구조적 열악함이 그대로 있는데 교수들의 연구실적을 높인다고 해서 외부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교수들의 연구실적은 한편으로는 논문 수로, 다른 한편으로는 논문의 인용 빈도로 평가받는데 전략적으로 이 두 마리의 토끼를 어떻게 좇아서 잡을 것인가요? 이런 질문을 드리는 것은 우리 교수들이 더 많은 논문과 더 좋은 논문을 쓰는 것이 중요한 과제임을 인정하면서 아울러 대학 본부는 이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전략을 세우고 있는지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서신에서 두 분 부총장께서는 독문학과와 사회학과가 열악한 상황에서도 훌륭한 성과를 거둔 것에 대해 상찬을 아끼지 않고 다른 학과도 두 학과의 노력을 본받을 것을 요청했습니다. 두 학과가 좋은 성과를 거둔 것은 우리 대학의 자랑이고 상찬을 받을 만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은 두 부총장께서, 그리고 우리 대학 본부가 예외적 사례를 일반적 사례로 만들고자 하는, 대학 발전에 대한 비과학적 접근을 하고 있지나 않은가 하는 점입니다. 두 학과, 특히 독문학과의 성공 사례는 ‘성공신화’에 해당합니다. ‘신화’의 세계는 신비로울지는 몰라도 현실에서는 나타나기 어려운 법입니다. 역시 대학 발전을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제도적으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훌륭한 성과를 거둔 두 학과에 대해서는 칭찬과 보상을 아끼지 않되 우리 대학 전반의 발전을 위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내용과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두 분 부총장께서는 교수들에 대한 연봉제 도입과 연계하여 총장께서 약속하신 2009년도 10% 봉급 인상은 올해에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도 언급하셨습니다. 두 분은 지금 몰아닥친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경제침체를 이유로 거론하셨는데, 전혀 근거 없는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교수님들도 있을 것이라 봅니다. 그런데 며칠 전 본부로부터 모든 교수님들께 연봉제 계약서에 서명을 하라는 요청이 왔습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어려운 상황을 교수들이 십분 이해하고 함께 극복하기로 한다고 했을 때 올해 10% 인상분이 다음해로 연기되어 보전된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하지도 않고, 현재 시행되는 연봉제 규정을 첨부하지도 않은 채로 계약서만 보내 서명할 것을 요구받았다는 점입니다. 이 연봉제 계약서가 어떤 구체적 함의를 지니는지, 연봉제와 관련한 규정의 내용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모르면서 서명을 요구받는 것은 기본적인 권리의 침해라고 여기는 교수님들이 많습니다. 대학 본부는 개별 교수와 계약을 하면 그만이라고 여길는지 모르나 아시다시피 연봉제는 우리 교수들의 신분과 관련하여 중대한 함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당연히 연봉제 제도의 내용을 개별 교수에게 ‘충분하게’ 알려 교수들에게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 중앙대 926명 전임교수를 대표하여 총장님께 공식적인 질의를 드렸습니다. 중앙대 운영을 책임지고 계신 분으로서 성실히 입장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총장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2009년 6월 22일
교수협의회 회장 강내희 교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