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대홈페이지 '중앙인문학관' 임하연의 글방 <숲새네 노란벤치>의 작품들을 다시 정리하여 올립니다. <숲새네 노란벤치>
빨강 깃발
임 하 연 ( 시인, 월간문학 수필 등단)
"가이드 생활 20년 동안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는군요!”
일행을 인솔하는 여행사 직원이 우리말로 번역을 해주며 하하 웃었다. 열대의 태양에 가무스름하게 탄, 무척이나 착해 뵈는 얼굴에 활짝 웃음을 지으며 태국 안내원이 우리의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내가 1990년대 들어 겪었던 첫 해외여행의 기억은 돌이켜보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항공사에 근무하던 한 친구의 권유 덕에 일사천리로 이루어진 그 여행은 태국과 싱가포르를 돌아보는 것이었다. 교사인 친구는 방학 중이었고, 나는 재직 중이던 연구소에서 휴가를 내었는데, 항공사 친구가 현지인솔 견습 차 동행하는, 가까운 친구끼리의 벼르던 여행이었다.
첫 해외 나들이라지만 든든하고 편안한 마음이 커, 걱정보다는 첫 외국 체험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으로 밤잠을 설쳤다. 분주했던 며칠 동안의 준비 일정이 정신없이 끝나고 드디어 첫 나들이에 임했다. 일행 셋은 김포공항에 모여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하여 이륙했다. 새삼스레 상기된 얼굴들을 마주 보며 수다를 떨다 보니 벌써인가 싶게 방콕공항에 도착했다. 방콕공항의 입국심사대를 나와서 이국에 대한 궁금증으로 두리번거리며 앞사람들을 따라 우리 관광버스로 가던 도중이었다. 교사친구와 나는 한 자리에 그만 발이 붙어버린 듯 멈춰 섰다. 공항청사의 넓은 유리창 밖으로 주기장(駐機場)에 쭉 늘어선 비행기들 가운데 한 대가 우리의 눈에 확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특별한 그 비행기는 왕실을 상징하는 듯 멋스러운 문양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다.
'우리가 온 날 마침 국왕이 여기에? 아니면 다른 나라 왕이 국빈으로…… ?’ 상상의 나래가 쉬지 않고 퍼덕였다. 그 화려한 비행기에 넋을 빼앗긴 채 손뼉까지 치며 호들갑을 피우던 우리는 문득 주변이 조용하단 느낌에 화들짝 고개를 돌려보았다. 앗! 함께 온 일행들의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진 게 아닌가? 깜짝 놀란 친구와 나는 손을 꼭 잡고 종달음질 치며 구석구석을 모두 찾아보았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더럭 위기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생소한 태양의 나라- 태국에서의 첫날이 어느새 저물어가고 있지 않은가! 난생처음 외국 땅을 밟은 두 여성은 낯선 외국 공항에서 졸지에 미아가 되어버린 것이다.
서투른 영어로 공항 안내대의 직원에게 물어도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입국장을 나와서 일행을 열심히 따라붙을 때 항공사 친구가 계속 우리 쪽을 돌아보며 확인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련히 잘 따라왔으랴 믿으며 마지막 점검을 안 한 채 몰려든 인파에 휩쓸려 나간 게 틀림없었다. 우리가 없단 것을 뒤늦게 알았더라도 일행을 마냥 기다리게 하며 우리만을 찾아 헤맬 수도 없는 일일 터였다. 게다가 시집만 안 갔을 뿐 어엿한 성인이고, 똘똘한 직장여성들이 아닐 것인가? ‘틀림없이 잘 찾아올 테니 걱정 안 해도 돼! 애들도 아닌데, 두고 봐요!’ 라고 누군가 말했을 것이다.
항공사 친구는 호텔에서 얼마나 걱정을 하고 있을까? 미안한 마음과 두려움이 무럭무럭 커지며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래도 침착하자고 서로 다독이며 진정하려고 애를 썼다. 길 잃은 내색을 하기도 어렵고, 쉽사리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공항 근처엔 여행객들의 주머니와 가방을 호시탐탐 노리는 불량배들이 많다는 말을 들어온 터였으니. 게다가 우리는 여행 경비 조로 적지 않은 돈과 제법 값나가는 외제 카메라 등 귀중품들도 조금은 지니고 있었다. 극도의 긴장감으로 머리는 지끈거리다 멍청해지고, 다리는 감각 없이 후들거렸다. 밤은 다가만 오는데, 이 위기 상황을 어떻게 탈출할 것인가. 친구와 심각하게 의논을 한 끝에 바깥에 나가지 말고 공항청사 안에서 해결책을 찾기로 했다.
달러를 바트 동전으로 바꾸고, 공중전화기를 찾아 한국에 있는 여행사에 전화를 걸기까지 모든 것이 불편하고 간단치 않았다. 우리나라에선 이미 보기 어려워진 다이얼 전화기부터 문제였다. 동전을 넣은 뒤 교환이 연결해 주어야 통화가 가능했고 그나마 제대로 연결이 안 되어 끊어지기 일쑤였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통화가 가능했는데, 전후 사정을 들은 한국의 여행사 직원은 ‘현지에 있는 가이드한테 연락을 취해보
고 알려줄 테니 잠시 후에 다시 전화해 달라’는 것이었다.
역시 여러 번 재시도 끝에 다시 연결된 통화에서 해결의 길이 보였다. ‘일행이 당신들을 찾다가 할 수 없이 파타야로 먼저 가 호텔에 투숙 중이다. 현지 가이드가 당신들이 있는 곳으로 갈 테니 7시에 OOO 신호등 아래에서 기다려라. 그런데 서로 얼굴을 모르니 상의 왼쪽 주머니에 빨강깃발을 꽂고 있는 남자를 찾아라. 키가 크고 얼굴이 검은 태국 중년 남성이다’ 라며 그 가이드 이름을 알려주었다. 마치 외국에서 활동 중인 간첩에게 본국에서 지령을 내리는 것 같았다. ‘아, 이젠 살았구나!’ 우리가 안도하며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찍어내는 장면을 누군가 보았다면 어떤 사연들을 상상했을까?
그때는 잊으면 큰일이기에 교사친구는 ‘가이드 이름을’, 나는 ‘빨강 깃발’을 나누어서 주문처럼 외우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구세주처럼 고마웠던 그 태국 아저씨의 이름은 미안하게도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행 기분에 취하여 들뜨고, 긴장과 두려움 속에서 허우적거리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던 부모님과 친구들, 한국의 정든 모든 것들이 하나둘씩 떠오르며 마치 오랫동안 헤어진 듯 그리움이 몰려왔다.
두 시간쯤 후, 우리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듯이 활짝 웃는 편안한 얼굴로 가이드를 만나기로 한 장소로 갔다. 횡단보도 건너편에 서서 신호등 아래 모인 사람들을 찬찬히 살펴보던 우리는 소리죽여 입을 맞춘 듯 환호성을 질렀다. “빨강 깃발!” 저만치 그림자처럼 검은 어느 사내의 가슴에 꽂혀 미풍에 온몸을 흔들며 팔랑대는 귀여운 몸짓! 그 조그만 빨강 깃발을 향해 우리는 돌격하는 군인처럼 힘껏 달렸다. 그것은 ‘고생 끝, 즐거움 시작!’ 의 ‘신호기’ 였다. 그리고 작은 일탈과 탈선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잊지 않게 하는 ‘경계기’ 였다.
나는 평소에 저녁 산책을 즐긴다. 폭신폭신한 흙길을 밟으며 걷는 길 위의 하늘이 항로여서인지 반짝이며 날고 있는 비행기를 보는 일이 드물지 않다. 꽃처럼 곱고 예쁜 색등을 깜빡이며 날아가는 밤하늘의 항공기를 보노라면 여행의 낭만이 설레던 그때의 일들이 영화의 장면들처럼 떠오른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나 자신의 미미함과 가슴 벅차도록 행복했던 짧은 시간을 돌아보면 왠지 눈물이 난다. 그리고 기쁨과 행복을 모르며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미안해진다. 내가 나누어 줄 수 있는 기쁨은, 행복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 작은 빨강깃발이 되어 안도를 느끼게 하고, 잊었던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하고, 행복에의 기대로 가슴 설레게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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