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의 작은 공인중개사 사무실에서 만난 이을우 중개사(67세)는 최근 동국대학교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법학박사 도전 7년만에 얻은 결실이었다.
중앙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이을우 박사는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중 갑작스러운 형님의 부고로 꿈을 접고,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됐다고 회고한다.
『중앙대학교 2학년 재학 당시 동기 5명과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고시공부를 시작했는데 3번 고배를 마셨다. 공부는 충분히 했는데 시험을 앞두면 왠일인지 3일전 부터 잠이 오지 않았다. 그 몸으로 가서 시험을 보니 좋은 결과가 나오지 못했었다』는 그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을 하려던 그때 30대 초반이었던 큰형님이 사고로 돌아가셨다. 3명의 조카와 어머니를 그냥 둘 수 없어 고시를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됐다』고 말한다.
당시 함께 사법고시를 준비했던 동기들은 이름만 들으면 아는 법조계 인사가 됐다.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던 그는 경찰간부 28기생으로 합격했으나 안정적인 생계유지를 위해 서울시청 7급 공무원으로 취업해 내무부를 거쳐 법무부에서 31년간의 공무원생활을 마치고 명예퇴직했다.
그 뒤 시작한 일이 연희동의 중앙공인중개사 사무소였다.
공직에 있으면서도 공부에 대한 아쉬움과 갈증이 항상 남았다는 그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사회복지사, 공인중개사, 법무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중앙대학교 사회복지대학원 석사, 동국대학교 법학석사를 거쳐 7년전에는 법학박사에 도전했다.
그가 생활현장에서 느꼈던 민사법 중에서도 「상가권리금 보호에 관한 연구」를 박사 논문의 주제로 채택했다. 소논문으로는 「환경권 침해 소송증명 책임에 관한 연구」를 완성하기도 했다.
『민사법은 법리가 장황하다. 생활과 가장 밀접한 데다 사례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형사법과 공법은 단순하지만, 공인중개 일을 하면서 느꼈던 상가 임대차법의 불합리힘과 부조리성을 법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제안을 하고 싶어 박사 논문의 주제로 선택하게 됐다』고 말하는 이을우 박사는 2012년 박사과정을 시작했지만, 10명 중 혼자만 논문이 통과될 만큼 치열하게 공부했다.
『요즘 박사학위는 학위 수여 이전에 저명학술지에 논문이 실려야 비로소 박사학위 논문을 쓸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박사 과정 10년차가 넘으면 논문 주제부터 다시 선정해 새로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올해 학위를 받을 수 있게 된 데 대해 기쁘고 감사하다』는 소감도 밝힌다.
『퇴직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영세 임차인이 된다. 50대에 명예퇴직을 하고 또다른 생활전선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많다. 높은 권리금을 주고 가게 문을 열지만, 운영이 잘되는 경우는 극히 드믈고 잘 되더라도 건물주와 갈등으로 손해만 보고 쫓겨나는 경우들이 많아서 영세상인을 보호할 수 있는 4가지 제안을 담은 논문을 발표하게 됐다』고 간단하게 논문을 소개한다.
그의 논문에는 ▲3개월간 임대료 연체시 임대인이 계약해지를 할 수 없도록 법적으로 보호하고 ▲권리금보호를 위해 보험제도를 도입해 안정적인 영업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 ▲계약 만기시 연장을 위한 대책, ▲계약 6개월 전부터 종료시까지 권리금에 대한 임차권을 임차인에게 양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등이 담겨 있다.
상가권리금은 부동산과 같으므로 민법에서 보호해야 하지만, 시설권리금에 대해 과연 임대인은 자유로울수 있는가에 대한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
앞으로 그는 영세임차인을 위한 법리적 상담사로 활동하고 싶다는 소감도 전한다.
『동대문이나 남대문 등 상가 밀집지역에 작은 사무실을 내고 시장 임차인을 대상으로 법리적 상담을 해주고 싶다』는 그는 그동안 공부만 하느라 남은 것은 자격증과 학위밖에 없지만, 연희동 주민들을 위해서도 공부한 경험을 나누고 싶다.
『평생 공부에만 전력하다 보니 돈은 못벌었다.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공부하는 남편, 아버지의 성실함을 전해주고 싶었다』는 이을우 박사는 『앞으로도 공부해서 남주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러려면 아마 공부는 계속 될 것 같다』
이을우 공인중개사의 3평짜리 사무소는 연희동에서 새로운 터전을 꿈꾸는 주민들을 위한 길잡이 역할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의 생활전선이자, 도서관이자, 꿈을 키워가는 공간이다.
(문의 02-333-8979)
<옥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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