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화가` 전준엽 씨 "오감으로 느끼는 `희망 정원` 그렸어요"
바람·물·흙냄새까지 살려…여행 통해 한국적 풍경 찾아
'빛의 화가'전준엽 씨는 "우리 미술, 한국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정동헌 기자 dhchung@hankyung.com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빛은 물리적인 광선이 아니라 희망의 상징이죠. 우리나라 민족성에 기반한 밝음의 표상이기도 하고요. 지난 30년 동안 붓 한 자루로 마음속에 ‘빛의 정원’을 만들어왔습니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 로비의 한경갤러리에서 13일부터 내달 2일까지 개인전을 펼치는 ‘빛의 화가’ 전준엽 씨(59). 그는 “현대인의 다양한 삶터에 내리 쬐는 빛을 포착해 존재에 대한 성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홍콩 스테이트 오브 아트갤러리와 미국 마이애미 카브크니나갤러리의 전속 작가인 전씨는 오는 10월 뉴욕 첼시 더케이갤러리 개관 기념전에 초대되는 등 국제 미술계로부터 연이어 러브콜을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에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렸던 ‘레드닷 마이애미’ 아트페어에 참가했고, 올초엔 홍콩의 소타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가졌다.
뉴욕 진출에 앞서 ‘빛의 정원에서-희망을 찾아서’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서양화의 아류를 뛰어넘어 동양적 사유와 감성을 화폭에 풀어낸 근작 20여점을 걸었다. 캔버스에 유화를 사용해 눈에 보이는 경치가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경치를 형상화한 ‘전준엽표 산수화’여서 이채롭다. 그의 표현처럼 ‘풍경에서 느낀 소리, 향기, 바람, 청량한 기분, 고즈넉한 정서, 장엄한 감성, 몽환적인 느낌’ 등이 은은한 빛을 발한다.
그는 “사물의 재현 같은 현대미술의 관념성보다 마음의 눈에 비친 심상을 작품에 풀어낸 것”이라며 “오감으로 느껴지는 ‘빛의 정원’을 되살리기 위해 사람과 새, 바위, 꽃, 강물, 소나무 등에 바람과 물, 흙냄새까지 담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중앙대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고교 교사, 일간지 문화부 기자, 미술관 큐레이터를 거치며 30년간 화필을 잡아온 작가는 이제야 예술세계에 눈을 떠가는 것 같다고 했다.
“이제서야 그림에 철이 드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요. 그림이 보이기 시작하니 할 게 많아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할 정도예요. 대문호 톨스토이가 죽기 얼마 전에 쓴 일기에 ‘이제 작품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다’고 적은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아요.”
그림이 슬슬 풀릴 땐 서울 홍은동의 작업실에서 날이 새도록 화폭에 매달린다. 아쉬움에 그림 손질을 하다 보면 날이 훤히 밝기 일쑤다.
그는 작가로서의 목표와 관련, “우리 미술, 한국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강조했다. “인기 작가보다는 ‘좋은 작가’로 남고 싶습니다. 변화하지 않는 작가는 도태되게 마련이죠.”
그는 여행을 자주 떠난다. 한국 사람들이 즐기는 풍경을 접하기 위해서다.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악다구니하는 해안 풍경’에서부터 ‘세월의 무게를 잔뜩 짊어진 산 풍경’까지 각양의 표정을 마음속에 스케치한다. 설중매의 변화무쌍한 표정을 포착하기 위해 석 달간 광양, 지리산, 설악산의 매화를 쫓아다닌 적도 있다. 이런 장면만을 모아 마음으로 편집해 낸 것이 그의 현대적 화풍의 ‘퓨전 산수화’다. 그는 풍경 이미지 부분을 과감히 생략해 사실과 추상의 조형적 긴장감을 유발한다.
그는 “작품을 그리기보다는 만들어간다고 하는 게 가깝다”고 했다. 칠하고 말리고 깎는 ‘발효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캔버스에 유화를 사용한 그림이지만 제작 과정에서는 동서양의 기법을 두루 활용한다.
“질감을 위해 캔버스에 흰색으로 다섯 차례 밑그림을 그린 후 사포로 수천 번 다듬어요. 그 위에 물감을 떨어뜨린 뒤 입으로 불거나 캔버스를 흔들어 색을 스며들게 하죠. 거기에 물감을 덮어 나이프로 긁어낸 다음 사물의 색을 촘촘하게 밀어넣습니다. 이 과정이 모두 끝나면 전체를 검정색으로 덮고 면도칼로 긁어내 질감을 살려내지요.” (02)360-4114
한국경제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